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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은 수상한 브누아 드 라 당스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장지영_공연칼럼니스트

 파리오페라발레의 박세은(29)이 지난 6월5일 ‘무용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를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강수진(1999), 김주원(2006), 김기민(2016)에 이어 네 번째 수상자다.
 브누아 드 라 당스는 매년 세계 각국 정상급 단체가 공연한 작품을 심사해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안무가, 남·녀 무용수, 작곡가,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를 선정한다. 지난해 파리오페라발레가 무대에 올린 조지 발란신의 <보석(Jewel)> 가운데 ‘다이아몬드’의 리딩롤로 최고 여성무용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던 박세은은 5명의 쟁쟁한 발레리나들을 물리치고 수상했다.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열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는 수상자 발표와 함께 이틀간 러시아의 은퇴 무용수 지원을 위한 자선 갈라공연을 연다. 시상식 직후 열리는 갈라공연엔 후보에 오른 무용수들이 출연하며, 다음날 갈라공연에는 이전에 수상했거나 후보였던 무용수들이 초청된다. 올해 첫날(5일) 갈라공연에서 박세은은 파트너의 부상 때문에 이번에 상을 안겨준 ‘다이아몬드’의 이인무가 아닌 ‘에메랄드’의 솔로춤을 선보였다. 그리고 둘째날(6일) 갈라공연에는 지난해 최고 남성무용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던 국립발레단의 이재우가 초청돼 마르시아 하이데 안무 <잠자는 미녀> 중 카라보스의 솔로춤을 선보였다.
 그런데, 박세은의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이후 국내 언론이 쏟아낸 기사들이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바로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u de la Danse)의 뜻이 ‘춤의 영예’이며, 발레 개혁자 장 조르주 노베르(1727~1810)를 기리기 위한 상이라고 설명한 부분이다. 브누아 드 라 당스의 홈페이지나 해외 기사 등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국내 기사를 찾아보면 우리나라에서 1999년 강수진의 수상 이후 이 상의 뜻이 ‘춤의 영예’라는 언급이 처음 나왔고, 2006년 김주원의 수상 이후 노베르를 기린다는 의미가 추가돼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 해외 발레계 소식에 밝지 않았던 국내 언론의 오보가 반복 및 재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브누아 드 라 당스는 1991년 모스크바에 기반을 둔 국제무용협회(지금의 국제무용연맹)를 이끌던 유리 그리고로비치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이듬해인 1992년부터 시상식이 열렸다. 그리고로비치는 대표 겸 매년 심사위원들을 선정하는 심사위원장이다. 시상식을 운영하는 비영리 사무국 브누아 센터가 만들어졌는데, 볼쇼이발레단에서 무용수와 발레마스터를 거친 레지나 니키포로바가 행정감독을 맡고 무용수와 레퍼토리 책임자를 거친 니나 쿠드리아브체바-루리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이들 세 사람은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창립 이후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3인방이다. 브누아 센터는 볼쇼이극장 안에 마련돼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리고로비치는 1964년부터 1995년까지 30년간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거장이다. 지금도 볼쇼이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 가운데 상당수는 그가 안무 또는 재안무한 것일 정도로 러시아 발레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 상이 만들어지던 당시는 그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는 것조차 어렵던 시절이었다.
 브누아 드 라 당스가 처음 생길 때 유럽 최고의 예술가 가문으로 꼽히는 브누아 가문이 후원하고 나섰다. 1회부터 수상자에게 주는 남녀 무용수 조각상은 모계 쪽으로 브누아 가문 출신인 프랑스 조각가 이고르 유스티노프(영국의 명배우 겸 극작가 피터 유스티노프 경의 아들)가 만든 것이기도 하다.
 브누아 가문은 19~20세기 건축 조각 회화 영화 발레 오페라 무대미술 음악 문학 그래픽 인테리어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예술가들을 수십여 명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여름궁전에는 브누아 가문의 예술작품을 기증받아 1988년 개관한 ‘브누아 가문 박물관’도 있다.
 브누아 가문은 프랑스혁명 당시 러시아로 이주한 요리사의 아들 니콜라스 브누아(1813~1898)가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후손들이 러시아는 물론 유럽 각국 예술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마린스키 극장의 미술감독을 역임한 큰아들 알렉상드르 브누아(1870~1960)는 20세기 초반 발레 뤼스의 핵심 멤버로서 현대 발레와 무대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이름은 바로 브누아 가문, 특히 알렉상드르 브누아에서 가져온 것이다. 즉 국내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춤의 영예’라는 뜻 자체가 아예 없다. 그런데, 어떤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춤의 영예’란 해석과 달리 프랑스 출신 안무가 노베르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노베르는 ‘무용계의 셰익스피어’로 불린 인물로 18세기에 발레 닥시옹(Ballet d’Action: 춤과 연기, 팬터마임 등을 통한 극적인 발레 형식)을 주창했다. 발레가 기교를 과시하는 장식적인 춤에 머무는 대신 극적 줄거리를 가진 종합예술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독립된 예술로서 발레를 가능하게 한 선구자다. 1982년 유네스코는 그가 태어난 4월 29일을 ‘세계 춤의 날’로 지정했다. 그리고 세계 각국 무용계에서는 이날 다양한 행사를 연다.
 브누아 드 라 당스는 1991년 러시아의 ‘세계 춤의 날’ 행사에서 시상식의 아이디어가 처음 공개됐다. 그리고 유네스코가 상을 공식적으로 후원하기로 나섰고, 1992년 1회 시상식 역시 ‘세계 춤의 날’에 열렸다. 이 때문에 2006년 김주원의 수상 소식을 처음 전한 한국 기자가 “브누아 드 라 당스가 노베르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쓴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노베르를 기린다는 언급은 브누아 드 라 당스 홈페이지나 관련 공식 자료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외 자료에는 시상식 날짜에 대해 알렉상드르 브누아의 생일이 5월 2일이기 때문에 그 즈음으로 결정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노베르를 기리는 것이었다면 매년 ‘세계 춤의 날’이나 그 즈음에 시상식이 열렸겠지만 늘 5~6월중 유동적으로 치러지고 있다.
 문제는 브누아 드 라 당스와 관련해 이런 정보들이 국내에서 처음 잘못 소개된 후 지금까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과 관련해서도 오랫동안 잘못된 정보가 유통돼 왔다. 바로 ‘동양인 최초 로잔 국제 콩쿠르 우승’ ‘동양인 최초·최연소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 ‘현역 최고령 발레리나’라는 것이다. 강수진 단장이 은퇴를 앞둔 지난 2015년 10월 이들 정보가 오류라는 기사가 나왔지만 워낙 오랫동안 잘못 알려진 탓에 대중은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

 그런데, 브누아 드 라 당스가 명실공히 무용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상으로 소개되지만 국내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심사의 공정성 문제로 잡음이 인 적도 종종 있었다. 심사위원장인 그리고로비치가 심사위원 선정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는데다 심사과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서다.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심사과정을 보면 우선 그리고로비치가 매년 2월쯤 세계 유명 발레단의 예술감독, 안무가, 스타 무용수 가운데 심사위원을 선발한다. 2018년 기준으로 심사위원은 그리고로비치를 포함해 8명이었다. 이들 심사위원은 1년간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는 작품을 대상으로 이듬해 2월쯤 후보자를 추천한다. 그리고 사무국은 1차 심사를 거쳐 부문별 최종 후보자들을 4월쯤 발표한 뒤 이들 동영상을 심사위원들에게 보낸다. 심사위원들은 이들 동영상을 모두 본 뒤 시상식 직전에 모여 회의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이 세계 각국 발레단이나 무용단에서 올라가는 수많은 작품을 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자신이 소속돼 있거나 함께 작업했던 단체를 중심으로 후보를 추천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06년 국립발레단의 김주원 김현웅과 안무가 안성수가 후보에 오른 것은 당시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이 심사위원이었던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국립발레단의 박슬기 이재우 강효형이 후보에 오른 것 역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심사위원이었던 덕분이다.
 사실 브누아 드 라 당스는 후보자나 수상자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국제적인 발레계 네트워킹 안에서 결정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한국의 경우 국립발레단이 2000년 그리고로비치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을 무대에 올린 이후 그리고로비치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것이 이런 네트워킹을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리고로비치의 두터운 호의나 지지가 때로는 논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 2002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 부문은 가장 유력해 보이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마린스키발레단)가 아니라 아나스타샤 볼로치코바(볼쇼이발레단)에 돌아가자 당시 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볼로치코바는 2003년 초 과체중을 이유로 볼쇼이 발레단에서 해고됐다가 약 1년간의 소송에서 이긴 것으로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지만 이미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전부터 사생활과 관련한 구설수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던 터였다. 따라서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던 자하로바가 아니라 하락세의 볼로치코바가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는다는 것은 심사가 불공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는 “객석에서 야유가 나온 것뿐만이 아니라 심사위원단의 한 명인 앙줄렝 프렐조카주가 심사의 편파성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시상식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볼로치코바의 수상을 둘러싼 논란이 워낙 컸던 탓인지 이후 브누아 드 라 당스는 공동 수상자를 자주 배출하고 있다. 심사위원단 사이에 의견이 최종적으로 조율되지 않을 경우 아예 2명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끝으로 박세은의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과 관련한 국내 언론의 기사에는 또 다른 오류가 나온다. 현재 프르미에 당쇠즈인 박세은의 에투왈(수석무용수) 승급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동안 파리오페라발레에서 프랑스인이 아닌 에투왈은 한 명도 없었다”는 부분이다. 물론 파리오페라발레가 순혈주의로 유명하지만 그동안 호세 마르티네즈(스페인) 등 비프랑스인 에투왈이 여럿 있었다. 다만 아시아 출신 에투왈은 없었다.
 참고로 1669년 설립된 세계 최고(最古)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에서 혼혈이 아닌 아시아 무용수가 프르미에에 오른 것은 박세은이 처음이다. 앞서 2015년 뉴질랜드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가진 한나 오닐(25)이 박세은보다 한발 앞서 프르미에가 된 데 이어 2016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상도 받았다. 오닐은 호주발레학교 출신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도쿄에서 발레를 배웠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자국 출신으로 간주한다. 두 사람은 파리오페라발레 역사상 첫 아시아 출신 에투왈을 놓고 경쟁중이다.

 

2018.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