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아크람 칸 〈Desh〉내한공연 리뷰 & 인터뷰

“무용수의 근육통으로 인해 공연이 예정시간보다 30분 정도 지연되겠습니다." 6월 15일 LG아트센터. 공연장에서는 좀처럼 맞닥뜨리기 어려운 이 상황은 로비에 모여 있던 관객들 사이에서도 단연 화제거리였다. 80분 동안의 솔로 춤 공연. ‘무모하다’는 우려는 하우스 매니저의 이 멘트 하나로 호기심으로 변했다. 공연 후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열연에 화답했다. 공연 리뷰와 함께 이 특별한 무용가와의 인터뷰를 함께 게재한다. (편집자 주)

 


(1) 공연 리뷰

결국, 자기 이야기를 담아내는 춤의 승리(勝利)

 

이지현_춤비평가


 “나는 영구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창조하기 위해 나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크람 칸의 이런 염원은 〈Desh〉(2011년 영국 세계초연/ 6월 14-15일, LG아트센터)에서 성공을 이루었다.
 그는 개념 있게도 어린 나이에 다른 춤보다 먼저 카탁(kathak)을 배우고 이후에 영국의 현대 춤교육을 받은 것처럼, 방글라데시 부모의 피를 받은 후 영국이라는 환경 속에서의 성장은 그에게 인종과 문화의 혼성(hybridity)속에서 뿌리와 가지가 두서(頭緖)를 잃지 않은 행운을 선사 받은 듯 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칸은 〈Desh〉에서 자신의 근원, 정체성의 문제를 정공법으로 맞부딪힌다. 

 

 



 춤과 이야기의 결합, 춤과 연기의 교차 

 그의 첫 장편 (휴식없이 80분) 솔로작 <Desh>는 엄마와 아버지로 상징되는 그의 조국에 다가가는 긴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작품의 끝에 아버지의 부고와 연결되는 이야기의 첫 장면은 등불 하나에 의지해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어둠 속의 길로 시작된다. 그 장면은 곧 그가 큰 햄머로 무대의 바닥을 내리 치는 충격적인 사실상의 첫 장면으로 이어지는 데, 이미 무대에 나와있는 엔진을 실은 카트에서 흘러 나오는 듯한 굉음과 모터소리를 배경으로 그의 강렬한 망치질은 desh가 땅을 의미하듯 마치 ‘대지’를 깨우는 의식(ritual)처럼 상징적이다.
 이 첫 장면은 그가 굉장한 춤꾼이기에 그가 마치 멋진 춤을 추며 등장할 것이라는 대다수의 기대를 날려버리는 동시에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이야기에 대한 그의 꾸밈없는 강력한 태도를 알 수 있게 하였다. 또 하나, 그의 행위(action/ 연기)와 춤(dance)은 이 작품에서 아무런 경계를 가지지 않고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협조적으로 배치될 뿐임을 암시하였다.
 핸드폰의 고객센터와의 전화내용이 음성으로 나오는 장면은 작품의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작품을 위해 방글라데시에 작품팀이 모두 머물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무대화시킨 것으로 현지의 통신사업의 발달과 어린 소년들의 첨단기계에 대한 관심과 보급의 묘한 충돌의 세태를 통화를 한 소년의 나이(12살)를 물으면서 리얼하게 담아내는 장면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장면은 핸드폰의 여러 기능이 작동하지 않다가 오류를 극복하고 다시 전파를 수신할 수 있어지면서 “내가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다”는 은유의 언사를 통해 그의 정체성이 작품의 말미에 가서 안정감 있게 완수되었음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자신의 민머리 정수리에 스스로 눈, 코, 입을 그려 넣고 앉은 자세에서 손의 제스처를 사용하는 아이디어 넘치는 ‘아버지 장면’은 이 작품의 주요 스토리인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의 갈등, 아버지가 요리사가 된 역사적 배경, 아버지가 땅을 구해놓고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권유하는 등의 이야기 전달을 통해 맥을 잡아 나가는데, 얼굴과 손동작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하나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창출해 냄으로써 작품전체를 안정감 있게 하였다.
 조카와의 대화 역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아이들과의 이야기의 속성을 활용하여 점차 동화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 이후에 영상으로 펼쳐지는 숲 속과 나무의 꼭대기, 꿀벌, 코끼리의 등장 등 마치 영화 <아바타>를 보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방글라데시의 자연을 느끼는 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중편소설 한 권 분량은 족히 될 듯한 방글라데시의 전형적인 이야기가 치밀하게 바탕을 구성하고, 척박한 현실의 장면은 도로와 시위현장 등으로 박진감 넘치게 무대 뒷 막에 투사되는가 하면 현실과 대비되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영상으로 샤막에 비춰지며 방글라데시를 환상적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대립의 구조가 있고,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살고 있듯이 그 사이 무대 위에 칸(khan)이 춤과 대사로 그 둘 사이를 드나들면서 존재와 자신이 태어난 땅 사이의 물음의 여정을 채워나간다.
 이 작품이 정서적으로 관객의 관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끌고 가는 데 성공한 이유는 끊임없이 3인칭 시점을 끌고 가는 인물과 그 존재적 질문, 그리고 정서적 내용의 층위가 잘 맞아 떨어지면서 안정적인 공감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정서가 만들어내는 춤의 속도와 감동

 세계 어느 지역이라도 자신의 전통춤과 그것의 현대화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현대의 춤예술가들은 전통춤의 현대화에 자신의 열정 중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자신의 것을 가꿔 나간다.
 그런데 특히 아시아의 전통춤들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중요한 의사소통과 정서적 응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많은 부분이 땅속에 묻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우리의 경우에도 그렇듯이 전통춤 형식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면서 현대의 주제를 담아낼 수 있게끔 만드는 일이 그렇게 간단치 만은 않기에 많은 실험들을 하는 중이다.
 <Desh>가 전통의 현대화에 있어서도 성공적인 이유는 그가 카탁으로 훈련된 무용수라 그의 대부분의 춤동작은 자신의 정체성을 배반하지 않는 전통적인 동작 언어들로 채워져 있으면서도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그것에 굳이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과 자유로움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말하고, 뛰어 다니고, 앉아 있고, 바라보고, 소리지르고, 뒹구는 카탁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동작에 능하다. 그렇다고 그 동작과 행위들은 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동작들은 이야기 구조에 의해 안정되게 보호받고 있으며 무용수인 칸의 달리고, 뒹구는 행위는 잘 직조되어 온 ‘인물’의 의미 있는 것으로 어느 하나도 모호하거나 무의미한 동작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마흔을 넘긴 칸은 15일 공연에서 공연이 30분 이상 늦춰지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 냈는데, 전날의 공연 이후 근육통에 시달린 상태로 무대에 올라 왔음에도 동작이 느슨해지거나 약해지는 지점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열공(열심히 공연) 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휴식 없는 80분 공연에서 대부분 그런 공연에서 충분히 예상되듯이 유일한 출연자인 칸을 배려한 숨돌릴 틈 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기 몸의 일부를 캐랙터화 하여 다른 인물을 연기하고 목소리만으로 나오는 콜센타 직원과 조카, 그리고 영상 속의 자연과 동물들과 더불어 듀엣으로 응대 하고 군무를 추며 시종일관 더할 나위 없이 바쁘게 뛰어 다녔고, 몸부림쳤으며, 탐구심과 질문의 끄트머리를 놓치지 않고 집중했다. 

 

 



 대부분의 동작들은 소용돌이 치듯 상당한 속도의 발구르기, 돌기, 팔의 웨이브 등의 전형적인 카탁 동작과 무술동작의 파편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지기와 구르기 등의 현대무용의 기본적인 동작들로 채워져 있었다. 동작에 있어서 과장이나 멋부리기, 신파적인 감정적 과장과 연결된 동작은 모두 정제되어 있었으며 순수한 춤동작을 이야기 구조 속에서 에너지와 리듬으로 잘 살아나도록 배치해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었다.  

 특히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시위 장면이나 갈등장면에서 칸의 안무는 오히려 상황보다 더한 강도와 속도로 동작을 해서 물리적으로 상황에 에너지를 더했고, 제의적으로는 살풀이를 하고 생기를 풀무질 하는 ‘역습’의 발상을 적용하였다.
 이는 아시아 춤의 제의성이 가진 매력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굿을 하는 이유, 굿이 시끄럽고 화려하고, 난장판이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에너지의 강도를 물리적으로 높여 생기를 불러 일으켜 헛된 기운과 어둠의 그림자를 물리치고 돌파하는 데에 있는데, 칸이 그 원리를 적절한 곳에 활용함으로써 작품이 관념적으로 무거워지거나 늘어지는 것을 막는 동시에 제의적 의미도 획득하는 재치를 보여 준 정말 소중한 창조의 지점으로 보여진다.
 아크람 칸의 고백적, 인종적, 존재적 여정의 작품 <Desh>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일깨워 주고 그것을 직접 보여 주었다. 춤을 춘다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절실하고 진솔한 온몸의 고백이며 그 고백의 내용에 따라 정서의 질감이 정해지고, 그것에 자연스럽게 춤의 속도가 결정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얘기를 하는 열정의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는 것, 그리고 관객은 그렇게 합리적으로 우러나오는 춤에서 감동하지 않기란 어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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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크람 칸 인터뷰

“혼자 춤추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문학수_경향신문 선임기자


 “혼자 춤추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검은 피부의 키 작은 무용가 아크람 칸(40)은 그렇게 말했다. 그는 2000년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펼쳐온 무용가다. 본거지인 영국을 넘어 세계적 명성을 쌓아왔다.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안무를 맡기도 했다. 그런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술 작업 앞에서 노상 긴장과 두려움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내가 듀엣 무대가 유난히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혼자 춤추는 것이 두려워 누군가와 같이 한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에서 공연하는 <데쉬>(Desh)는 80분간 나 혼자 춤춘다.”
 칸이 내한했다. 그는 이미 세 차례에 걸쳐 한국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2007년에 발레리나 실비 길렘과 <신성한 괴물들>을, 2009년에는 영화배우 줄리엣 비노쉬와 〈in-i〉를, 또 2011년에는 자신의 무용단 아크람 칸 컴퍼니의 <버티컬 로드>를 공연했다.
 하지만 14-15일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데쉬>는 한국에서 첫번째 독무(獨舞) 공연이다. 춤의 서사를 중시하는 칸의 예술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야기하는 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방글라데시 이민 2세로 태어난 그는 <데쉬>에 대해 “나와 내 부모님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전에 입국한 그를 저녁에 인터뷰했다.

문학수 당신은 인도의 전통 무용인 ‘카탁’을 현대무용에 접목해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카탁을 언제, 어떻게 접했나?
아크람 칸 어머니도 무용가를 꿈꿨는데 학자였던 외할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나는 아주 부산스러운 아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TV에서 마이클 잭슨 춤이 나오면 꼼짝않고 지켜봤다고 한다. 세살 무렵에 어머니가 방글라데시의 전통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곱 살 때 카탁을 가르치는 교습소에 처음 데리고 가셨다. 그렇게 시작됐다.

바로 그 카탁 실력 덕분에 당신은 14살이었을 때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의 <마하바라타> 무대에 섰다. 그 거장과의 만남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분을 만난 건 신이 내린 축복이었고 내 삶을 결정한 계기였다. 그는 연극의 개념과 방식을 바꾼 혁명가다. 음악가 스트라빈스키, 무용가 피나 바우쉬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그는 여러 언어들, 예컨대 인도어와 일본어, 또 아프리카 여러 언어들… 그렇게 말이 각기 다른 다국적 배우들과 연극을 만들어냈다. 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폐건물, 마굿간, 버려진 기차 같은 공간들을 극장으로 변신시켰다. 나도 참여했던 <마하바라타>는 그의 최고 걸작이다.

당신은 여러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유명하다. 또 듀엣으로 선보인 무대도 많다. 장편 현대무용으로는 <데쉬>가 첫번째 솔로 작품인 셈이다.
지금도 홀로 춤추는 게 정말 두렵다. 나이가 조금 드니까 두려움이 더 커진다. 어렸을 때는 내가 많이 안다고 착각했지만 이제는 정반대다. 그 두려움은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 계속된다. 뭐랄까… 머리에 암세포가 있다는 느낌 같은 것에 사로잡힌다. 다행히도 무대에 서면 그 두려움을 잊는다. 춤을 추는 동안, 어떤 미지의 힘이 내 머릿속의 암을 치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데쉬>에 대해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쓴 평을 봤다. ‘방글라데시의 탄생과 역사,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아낸 헌사’라는 평가였다. 역사와 부모, 개인을 함축하고 있으면서도 난해하지 않고 감동적이라는 평이 많다.  

2011년 방글라데시 독립 40주년에 맞춰 만든 작품이다. 그렇다고 방글라데시 정부의 의뢰를 받아 만든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생각이었다. ‘데쉬’는 벵갈어로 ‘고국’이라는 뜻이다. 나는 런던 윔블던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열살 때까지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으셨다. 열살이 되던 생일에 나는 어머니 입에서 영어를 처음 들었다. ‘해피 버스데이’라는 두 단어였다. 내 기억 속의 모국은 언제나 방글라데시였다. 아버지는 내게 그 나라의 풍경을 마치 사진처럼 각인시켰다.
<데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바로 ‘정체성의 문제’다. 그 다음 주제는 내 세대와 아버지 세대의 갈등이다. 또한 <데쉬>는 정치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당시의 동파키스탄)에 우르드어를 강요했지만, 내 아버지 세대는 정치적 지배는 용납해도 벵갈어를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며 싸웠다.

영국 런던에서 방글라데시 사람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는가?
런던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의 도시다. 내가 자란 윔블던에도 아랍인, 아프리카인, 스페인 사람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나는 그 속에서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왜 불편함이 없었겠는가. 예전에는 ‘블랙이 싫다’고 드러내놓고 말했지만 이제는 그걸 숨긴다. 겉으로 표현하면 비난받을 수 있으니까 속으로 감추는 것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정체성은 계속 변화한다.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윔블던의 놀이터에서 나는 스스로를 영국인으로 생각했지만 다른 아이들인 ‘갈색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3년 전 <데쉬>를 만들기 위해 방글라데시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은 나를 영국인으로 바라봤다.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갓 돌이 지났을 아기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1년 전에 아빠가 됐다. 아내는 일본인이다. 이 두 사람도 내 정체성의 일부다. 

2014. 07.
사진제공_LG아트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