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현태 〈잃어버린 균형〉
균형의 또 다른 투영
권옥희_춤비평가

삶에 있어 꿈꾸는 일과 좌절이 어떻게 같은 모습을 지니는가를 깨닫는 일. 많은 좌절의 순간이 축적된 시간을 균형감 있게 보고 견디기. 자신의 춤에 철저하게 집중하고 헌신하려는 이에게 견딘다는 그 결심은 얼마나 단호해야 하는가를, 희망과 좌절을 오가며 겪는 그 ‘균형’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지극히 얇다는 것을 춤으로 보여준 김현태(계명대교수)의 〈잃어버린 균형〉(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8월12일)을 본다.



김현태 〈잃어버린 균형〉 ⓒ정길무용단/Sang Hoon Ok



흐릿한 조명 아래 무대 가운데만 조금 열어놓은 검정색 액자무대. 객석 쪽에 머리를 두고 바닥에 누워있는 남자(김현태). 몸(춤)을 조율하듯 느리게 춤을 추다 일어나 앉는다. 오로라 같은 녹색 빛 무리가 남자의 머리위에서 일렁이다 샹들리에처럼 천장에 걸린다. 일어나 조명이 미치지 않은 어둑한 곳과 빛 가운데를 오가며 추는 춤. 무대는 자극과 생기를 유지하는 고양된 춤정신의 섬세한 춤을 추는가 하며, 툭툭 내딛는 발과 절제된 상체의 움직임만 보이는 복잡한 춤의 장식을 제거한 단순성이 드러나는 춤을 춘다. 삶의 복잡한 문제처럼 수시로 앞을 가로막는 어둠 속의 조건은 어느 사이엔가 빛 가운데로 나서는, 간명한 춤의 형식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추는 춤. 춤의 순화이다. 앞가슴께의 풍성한 주름과 달리 뒷목에서 허리춤까지는 가는 선(천) 하나로 이어진 의상. 선과 주름, 그 사이에 위치한 춤(몸)의 ‘균형’을 담아낸 의상, 감각적이었다.

‘불편한 고요’ 장. 남자(서상재)가 무대중앙에 서있는 남자(김현태)를 바라보며 천천히 무대를 돈다.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불안과 충만함.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거울처럼 마주보며 걷기는 조절된 반란, 존재 속에 존재, 몸속에 몸이 있는 것으로 읽힌다. 둘의 몸과 존재는 다른 깊이와 다른 위치의 동일한 존재-몸이다. 둘의 거리는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시간 같기도. 서로를 바라보며 길게 이어지는 춤 속에는 그 거리를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시간들이 읽힌다.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나와 마주보는 내 속의 나, 나와 다른 시간의 깊이 속에 나를 확산하는 일은 그것은 나 속에, 그러나 나의 주변 공간에 동시에 배열하는 일이기도.





김현태 〈잃어버린 균형〉 ⓒ정길무용단/Sang Hoon Ok



‘쉼의 미학’ 장. 오랜 시간의 축적 같은 구겨진 바위 같은 설치물이 밀려나온다. 시간은 나 속에 또 다른 나를 늘어놓는 깊이다. 오래된 시간. 등을 맞대고 서있는 두 남자. 이윽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자를(김현태) 보낸다. 무대에서 사라진다가 아니라 남아있는 이가 그를 보내는 것으로 읽히는 이유. 존재의 불안과 충만함의 대립 속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삼켜버리는, 불안이 남는다. 군무진이 합류. 풍화작용이 일어난 듯한 잿빛 조명 아래 더할 수 없이 느린 춤이 치열하고 어둑한 삶의 이면을 그려낸다.

남자들의 느린 춤(서상재, 최재호, 천기랑, 오동훈, 황창대). 시간을 암시하는 둔탁한 초침소리. 극히 절제된 움직임으로 섰거나, 한쪽 팔을 위로 들어 흔드는가 하면, 다리를 들어 뿌린다. 신체의 한부분만 움직이는 자신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춤. 불안정한 대치, 균형을 잃어버린 춤.

십여 명이 추는 군무. 폭넓은 바지에 동시에 다리를 들었다가 내려놓는가 하면 몸통을 그저 흔들고 걷는 동작은 일상의 반복, 지침으로 읽힌다. 속도를 내는 춤은 ‘쉼’이 필요하다는 아우성으로 읽힌다. 때로 상체와 팔을 크게 쓰는 동작이 전투적으로 보이고 무릎과 팔, 몸을 손으로 치고 두드리며 추는 군무가 주는 아름다운 역동성(느린)이 잘 드러난 장이었다.



김현태 〈잃어버린 균형〉 ⓒ정길무용단/Sang Hoon Ok



‘찰나의 영원’ 장. 길게 내려진 족자형태의 막에 입혀지는 어둑한 영상. 가야금 소리에 무용수들이 막 뒤에서 앞으로, 다시 뒤로 이동하는 무릎걸음에 무대에 공간과 깊이가 생긴다.

어둠속에서 불쑥 나타난 이가(최재호) 인사처럼 다리를 들어 올리자 앞에 선 이(천기랑) 다리에 대고 절을 하듯 몸을 깊게 접는다. 서로 거울을 보듯, 같이 다리를 들고 있다. 어둑한 무대 한 쪽에서 이들이 다리를 들고 추는 이유는 뭘까. 춤은 마치 도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는 것 같은가 하면, 사유에 들기 위한 춤 같기도. 군무진이 전장에 나가는 군인들의 발걸음 같이, 옆으로 앞으로 한 발씩 행진하며 나오다가 어깨를 내민 채 그대로 정지. 수술복 같은 상의, 기계적인 동작으로 전투하듯 뛰고, 돈다. 균형을 잃고 삐걱이는 위태로운 삶의 춤. 쉼이 필요하다.





김현태 〈잃어버린 균형〉 ⓒ정길무용단/Sang Hoon Ok



에필로그. 위태로운 시간에서 빠져나온 남자가 기다란 봉을 머리에 얹고 상수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와 만나 나란히 걷는다. 봉을 손에 든 남자, 머리에 얹은 남자가 이어서 나온다. 알미늄봉이 조명을 입어 몸 색을 바꾸는 봉은 빛의 내림, 혹은 삶에 담금질된 검으로 읽힌다. 허나 그게 무엇이든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균형을 잃는 순간, 그것은 조각으로 흩어져 자신을 찌를 것이기에.

김현태가 바닥의 봉을 집어, 뒤돌아서 자신의 옆에 봉을 세운다. 유사한 봉들의 균형이 대치하는 동안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희생으로 삼고만 커질 수 있다는 듯, 김현태가 든 봉을 비추는 핀 조명에 흰빛의 균형. 작품 〈잃어버린 균형〉은 결코 ‘잃어버리면 안 되는 균형’의 또 다른 투영이고 대입이다.



김현태 〈잃어버린 균형〉 ⓒ정길무용단/Sang Hoon Ok



안무자가 홀로 몸(춤)의 조율로 그려낸 ‘균형’부터, 자기 안의 타자와 자아의 대치로 보여준 ‘균형’ 그리고 잠깐 쉼을 희망하며 잠시 휘청거린 ‘균형’,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보여준 균형까지. 〈잃어버린 균형〉은 안무자가 꿈꾸던 희망의 간극이 ‘균형’으로 해소된 무대였다. 덧붙여 김현태 개인의 독립예술가에서 대학 전임으로 자리 이동. 이제 적어도 한여름 폭염과 비를 피할 우산 하나 정도의 숲은 구축하였다. 바라건대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만의 춤 자산(숲)을 자양으로 삼아 성장할 때 아마 숲도 크고, 짙어질 것이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

2023. 9.
사진제공_정길무용단/Sang Hoon Ok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