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시무용단 ‘2012 춤 배틀, 베틀?!’
융합 작업에서도 대전제는 안무력
김채현_춤비평가

 세종문화회관이 올해 들어 춤계를 향해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지난 9월 세종문화회관이 서울시무용단의 단장을 교체하고 또 신작 춤 공모 사업을 펼쳤다.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춤 비평권 외곽으로 밀쳐져온 세종문화회관의 춤계 내 위상에 비추어 앞의 두 가지 사안은 세종문화회관의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는 모두 지난해 가을 선거로 바뀐 서울시장이 세종문화회관 경영진을 물갈이한 이후의 일이며, 세종문화회관과 춤계 간의 거리가 좁혀질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신작 춤 공모 사업인 ‘2012 춤 배틀, 베틀?!’의 부제목은 ‘세종, 춤이 있는 융합 공연’이었다. 제목과 부제목에 쓰인 배틀과 융합이 나타내듯이, 이번 사업은 융합 양식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배틀(경연)에 부쳐 최종 우수작을 가려내는 의도로 진행되었다.
 ‘2012 춤 배틀, 베틀?!’은 지난 5월에 작품 공모 공고부터 시작하여 2차에 걸쳐 참가작을 선정하고 9월에 선정작을 올렸다. 짐작컨대, 작품 선정 기준은 타 매체나 장르와의 융합과 대중적 호소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104 작품이 응모하여 최종 6작품이 선정되어 관심이 높았다. 주최 측은 6월에 1차 심사를 통해 30팀을 선정하고, 이를 대상으로 창작 포럼을 열었다. 또 같은 달 2차 심사인 프리젠테이션을 갖고 일반 5팀과 학생 1팀을 최종 선정하였다. 그리고 7월과 8월에는 창작 포럼을 두 차례 갖고 또 각 팀별로 스토리텔링 컨설팅을 진행한 데 이어 마지막으로 시연회를 가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듯이 세종문화회관은 이번 사업을 매우 면밀하게 추진하였는데, 국내 극장 기획 사업으로서는 보기 드문 기획 추진 과정을 밟았다.
 세종문화회관이 이번 사업을 이렇게 추진한 동기는 이번 사업 소개글에서 발견된다. “서울시 공연예술 허브로서 세종문화회관의 역할을 위해 예술가들의 창작 동기를 부여하고 창작 활성화를 고취하여 공연 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주최 측은 “선정된 최우수 작품은 세종문화회관의 주요 레퍼토리로 개발되고 서울권내 타공연장을 추진, 작품의 생명을 연장하고 또한 그 혜택이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여 공연예술계에 긍정적인 생태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업 이름에서 ‘베틀’에는 배틀과 어감이 유사한 동시에 베를 짜는 우리말에서 좋은 작품이 짜이기를 바라는 취지가 담겨 있다.
 ‘2012 춤 배틀, 베틀?!’은 사정상 일반 1팀이 참가를 포기하여 일반 4팀과 학생 1팀이 공연을 진행하였다(9월 13~16일). 이 가운데 일반 4팀을 대상으로 ‘관객 평가단’과 전문 평가단의 평가를 합산하여 최우수작을 가려내었다. 9월 15일 최우수작을 가려낸 후 9월 16일 다시 공연을 갖도록 하였는데, 그날 학생 팀이 함께 공연하였다.
 근래 몇 해 사이 공공 극장의 기획이 느는 추세이다. 그래도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 이외에 공공 공연장이 적극성을 띠고 기획을 추진하는 경우가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12 춤 배틀, 베틀?!’은 특히 세종문화회관으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기획으로 주목을 끌었다. 더욱이 관객 평가단의 평가를, 듣건대는 전체 평가의 70% 반영한 것은 매우 파격적인 조치로서, 객석과 무대 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적극성이 엿보인다.


 

 

 

 


 
‘2012 춤 배틀, 베틀?!’에서 최우수작은 ‘태권, 춤을 품다!’(징가로 컴퍼니, 정연수 안무)가 선정되었다. 제목 그대로 태권과 춤을 결합한 이 작품은 대중성이 매우 두드러졌고 작품으로서 짜임새도 있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돋보였다. 작품 줄거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태권도 유망주였다가 다리 부상으로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전환한 주인공이 기간제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태권과 현대무용을 동시에 가르쳐 그들에게 희망을 던진다. 우여곡절 끝에 학생들은 태권 특기자들로서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주인공은 정식 교사로 발령을 받는다. 태권과 현대무용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선이며, 실제 공연에서도 그렇게 설정되었다. ‘난타’ 류의 공연물들처럼 간결하며 합당한 스토리텔링을 춤과 몸 연기로 풀어나가는 데 맴돌지 않고 이 작품은 예술에 필요한 갈등 구조를 덧붙이고 표현하였다.

   ‘태권, 춤을 품다!’는 태권도의 박력과 현대무용의 유연성을 접목시켰다. 태권도는 격파나 고공 점프 그리고 그 다양한 품새 때문에 피지컬 시어터 같은 공연물에서 쓰임새가 높다. 예술을 위한 몸 장르로서는 그다지 고려되지 않는 게 상례인 태권도일지라도 간혹 춤과 접목하는 것을 매력적으로 여길 무용인이 더러 있을 것이다. 기간제 교사로 등장한 하정오는 태권과 현대무용뿐 아니라 대사 연기까지 두루 구사하여 작품을 이끄는 견인차이자 작품의 주역으로 활약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태권도의 다양한 품새를 진열하고 그 사이에 현대무용의 물흐르는 듯한 움직임을 삽입하여, 말하자면 근육 활용이 대조적인 두 몸 장르가 한 무대에 내세워졌다. 현대춤 안무자 정연수는 자신의 태권도 인연을 바탕으로 이 대조적인 두 몸 장르를 과감하게 접목시켜 ‘태권, 춤을 품다!’를 꾸려내었다.

   이번에 ‘태권, 춤을 품다!’가 4편의 참가작들 가운데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다만 관객 평가단의 평가치가 70% 반영되었기 때문에,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이유는 좀 다각적으로 추정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태권, 춤을 품다!’는 스토리와 무대화 양 측면에서 공감대를 끌어내었고, 이 점이 다른 참가작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관객들에게서도 큰 호소력을 가졌던 것 같다.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서울권내 다른 공연장에서 몇 차례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단적으로 말해 ‘태권, 춤을 품다!’는 즐거움을 주었다. 이 즐거움의 속성을 풀이해보면, 합당하며 간결하고 재미난 스토리를 태권도와 현대무용으로 풀어나간 점, 태권도와 현대무용이라는 이질적인 매체를 접합시켜 재미난 스토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 점 그리고 주로 배역 기간제 교사의 대사와 연기에 힘입긴 하였지만 코믹한 분위기를 끌고 나간 점이 즐거움을 구성하는 요소였다. 여기에 더하여 기간제 교사의 감정이 표현되거나 감정을 읽어낼 만한 부분이 여러 군데 설정되어 공연중에 관객과의 교감이 지속된 점은 그러한 즐거움을 한결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

   ‘태권, 춤을 품다!’는 넌버벌 공연의 하나로 분류될지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서 넌버벌 공연은 흥을 돋우고 짜릿한 즐거움에 빠져들게 해서 공감을 사는 구도로 진행되는 게 상례이다. 넌버벌 공연에서는 흥을 돋우기 위해 사물(四物)이나 악기, 몸 재주 등을 구사한다. 넌버벌 공연에서 감정이 표현되거나 감정을 읽어낼 만한 부분이 여러 군데 설정되어 공연중에 관객과의 교감을 지속할수록 바람직스럽다. 넌버벌 공연에서는 감정 표현 부분과 흥 돋우기 가운데 후자가 득세하는 경향이 농후한데, ‘태권, 춤을 품다!’는 그런 경향을 벗어난다. 현대무용과의 접목을 매우 의도적으로 모색한 점도 이 작품을 넌버벌 공연으로 분류할 수 없는 요인이 된다. ‘태권, 춤을 품다!’에서 발견되는 넌버벌 공연의 요소를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적 요소나 대중의 눈높이를 수용하여 작품을 개발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매우 권장될 일이고, 이번에 관객의 평가치를 반영한 취지도 이 점과 연관된다. 이런 점에서 ‘태권, 춤을 품다!’는 새로운 춤 공연 양식을 예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권, 춤을 품다!’에서 태권도와 현대무용의 융합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즉 태권도와 현대무용은 화학적으로 융합되지 않은 채 물리적으로 병치되어 있었고, 현대무용의 역할 역시 부수적이었다. 이 작품은 이 부분에서 큰 맹점을 드러내었고, 이 점은 크게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현대무용의 역할도를 제고시켜 스토리 전개를 다양하게 처리하고 감정 전개를 긴밀하게 이어나가는 것이 앞으로 이 작품의 생명에서 관건일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넌버벌 공연 이상의 넌버벌 공연이 탄생하기를 기대하고 싶다.

   ‘2012 춤 배틀, 베틀?!’의 특이한 추진 방식에 힘입어 다른 참가작들도 미리부터 관심을 끌기는 마찬가지였다. 막상 행사의 뚜껑을 연 결과 스토리텔링 구조, 형상화 방법, 융합 매체들 간의 조화 그리고 융합 작업의 참신성 측면에서 재론의 여지가 컸다. 

   ‘비보이 파파’(춤추는 사람들, 최종환 안무)는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장애인 아버지와 스트릿 댄스를 하는 딸 간의 사연을 소재로 하여 춤을 통한 가족의 소통을 의도하였다. 이 작품은 비보잉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댄스컬 양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대형 뮤지컬 같은 시원스런 분위기도 활용하여 집단무의 활력을 과시하였다. 

   이 작품의 스토리텔링에서 우선 다음과 같은 대목이 눈에 띈다. 대학생 친구들과 지하철을 즐겁게 타고 가던 딸이 지하철에서 기어가며 구걸하는 장애인 아버지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창피함을 느껴 자리를 피하고 그런 일이 다시 길거리 공연에서 일어나는데, 이러한 상황의 스토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여기까지의 상황 이후, 장애인 아버지가 댄스게임을 보고 자신의 몸을 회복하여 월드 댄스 배틀에 출전한 딸에게 춤을 선사하여 화목을 되찾는다. 이런 스토리는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개연성은 낮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스토리에 개연성을 더하고 설득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안무자의 역할이다. 즉 낮은 가능성의 불씨를 되살려내는 것이 창조라 한다면, 개연성이 낮은 스토리에 개연성을 더해서 설득력을 높이게 된다면 매우 감동적인 창작이 될 것이다. ‘비보이 파파’에서 댄스 게임 스크린이 등장하였으나 융합이라 하기에는 매우 설익었으며, 현대무용과 뮤지컬 양식도 활용되었으나 융합의 참신성 면에서 주목할 정도가 높지 않았다. 

   ‘신별주부전, 난감하네’(장은정무용단+국악비보이 플라잉코리언 협연)은 국악비보이와 현대무용, 그리고 에스닉 팝과 판소리를 함께 무대에 내세웠다. 남해 바다 용왕, 별주부, 토끼 사이의 일화를 이 작품은 오늘의 세상 속으로 옮겨 일테면 세태 풍자를 겨냥하였다. 별주부가 지상으로 가기 위해 부인과 이별하는 순간이 그려지고, 막상 토끼를 찾았으나 20대 청년 토끼는 취업 스펙을 쌓는 데 여념이 없고 지상에서 대기업의 횡포가 심하다. 그래서 용왕은 매타작을 당하고 쫓겨난다.

   그리고 창작 탈놀이 ‘쉿 탈들이 온다’(최태선무용단)는 천상의 천녀가 사자를 지상의 데리고 와서 지상의 남자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행복한 세월을 보내지만 탐욕스런 태세왕이 천녀를 유린하자 남편이 대항하다가 태세왕에게 죽임을 당하며, 아들이 태세왕에게 대항하다 위기에 몰리자 천녀가 아들을 구하고 죽고 아들이 민중 봉기를 일으켜 세상을 구한다는 줄거리를 그렸다.  

   이들 작품에서도 줄거리는 개연성이 낮다. 앞서 말한 대로, 개연성은 낮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스토리에 개연성을 더하고 설득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안무자의 역할이다. 일례로 ‘신별주부전, 난감하네’에서 부인과 이별 장면이 길게 이어지지만 호소력이 미흡하였고, 곧 돌아올 별주부와의 이별이 그렇게 강조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비보이의 춤들은 그다지 의미를 갖지 못하였으며 판소리 사설이 아니었다면 작품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의구심과 혼란감은 별주부의 그 다음 행적이나 줄거리가 제대로 형상화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작품 전개를 이루는 주요 계기들 사이에 불균형이 심하였다. 

   그리고 ‘쉿 탈들이 온다’는 탈춤의 현대화에 해당하는 작업으로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상 남자와의 혼인, 천녀 납치, 남편 대항, 남편의 죽음, 천녀의 희생, 아들과 민중의 봉기, 천녀를 위한 천도제 등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계기들은 나열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작품의 초점은 흐려졌으며 산만한 전개 때문에 돋보인 것은 사자춤이었고 탈춤에서 기대할 만한 해학도 없었다. 

   이상에서처럼, 누구든 지적할 만한 당연한 말로서, 설익은 융합은 줄거리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를 설익게 만든다. 심지어 ‘쉿 탈들이 온다’에서는 융합으로서 내세워질 부분이 무엇인지 물어볼 필요도 있다. 반면에 ‘태권, 춤을 품다!’에서 넌버벌을 능가할 잠재력을 춤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첫해 ‘춤 배틀, 베틀?!’의 작지 않은 성과로 꼽힌다. 이번에 ‘춤 배틀, 베틀?!’이 융합을 기획 주제로 설정한 의의는 매우 크며 향후의 가능성도 인정된다. 융합 이전에 안무력과 서사 구성력이 결정적 요인이라 생각되므로, ‘춤 배틀, 베틀?!’은 나름 장기적 프로그램으로서 융합과 안무력 증진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것이다.

2012.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