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블랙리스트 유감
이제는 진짜 블랙리스트를 만들 때
이종호_<춤웹진> 편집위원

 지난해 10월 중순 동생이 “형 이름도 있던데” 하며 보내준 한국일보 보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서 내 이름을 보았다. 별 감흥은 없었다. 얼마 지나 최순실 게이트의 와중에서 다시금 블랙리스트 문제가 떠올랐을 때는 친구 몇몇이 연락을 해왔다. “SBS 저녁뉴스에 네 이름 나왔더라.” 덕분에 연락이 뜸하던 지인들과 재접속이 되기도 했다.
 나는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당시 후보의 문화예술계 멘토단에 이름을 넣어달라는 지인의 요청에 며칠 망설이다가 결국 동의했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은 물론 그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현실정치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영 어색하고 어설프게 느껴져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 시절에도 시위에는 격렬하게 그리고 자주 참가했지만 현실정치와 연계될 성 싶으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멈췄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노동조합 창설에 나름 역할을 했지만 출범 이후에는 한발 물러섰었다. 언제나 내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니 내가 대통령 후보 멘토단의 일원이 된 데 대해 언론계 후배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한결같이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며칠 후 한나라당 캠프에서 일하던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형, 우리 근혜 누님 도와주셔야죠! 벌써 딴 데 이름 넣었는데... 아, 제가 한 발 늦었네요! 물론 후배가 한 발 늦은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한나라당이나 박근혜에게 좋은 세상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무슨 부적이라도 되는 양 오랜 세월 지켜온 태도를 스스로 저버리면서까지 특정 캠프에 이름을 넣은 것은 사실 단순히 지인의 권유나 부탁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절감했던 우리 사회 전반의 각종 근본 문제들은 차치하고라도, 이 작디작은 무용계에서 평론을 하고 축제를 만들면서 보고 느끼고 겪은 언어도단의 갖가지 부조리를 해소하려면 결국은 정치와 정책이 변해야 한다는 너무도 뻔한 상식을 너무도 자주 통감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의식, 역사인식, 국제감각 따위 거창한 이야기는 아예 거론하기도 민망하고, 그냥 일반상식 측면에서도 대한민국 사회의 평균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우리 무용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정치는 필요했던 것이다. 평론가랍시고 얼마나 많은 글과 말로 부조리와 몰상식을 비판하며 공석, 사석에서 목청을 돋우었던가. 하지만 돌아오는 건 비판자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모략과 방해공작과 해코지 뿐, 개선이나 발전의 기미는 전혀 없었다. 이게 우리 무용계의 부끄러운 실상임을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
 쥐꼬리만 한 권력을 휘둘러 무용사회를 퇴행시키고 현장 예술가들의 좌절감만 증폭시켰던 관변단체 등 극소수의 세력가(그것도 세력이라고!)들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부인하기 어려울 터이다. 결국 좋든 싫든 정치가 필요하다면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에 관해 좀 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진보파가 낫겠다는 생각, 그리고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완벽해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박근혜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개인적 판단에서 멘토단 참여에 동의를 했다. 현실정치에는 눈을 돌리지 않겠다는 오랜 소신(?)을 바꾸는 순간이었으니 나로서는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던 셈이다. 무려 9천473명이나 된다는 블랙리스트에 이름 하나 들어간 걸 두고 개인적인 얘기가 길어진 것 같아 면구스럽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블랙리스트의 본질이나 문제점, 배경 따위가 물론 아니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고 또 앞으로 계속 드러날 부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 끔찍하고 촌스러운 야만행위를 상쇄하는 동시에 생산적 방향으로 역전시킬 전화위복의 방안을 궁리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 방안이 내게는 ‘진짜 블랙리스트 만들기’이다. 말하자면 정권의 좌/우, 보수/진보와 관계없이 문화예술이 자체의 생명력과 자체의 논리궤도를 타고 돌며, 숨 쉬며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문화예술을 보수파는 기생이나 꽃장식 정도로, 진보파는 이념선전의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짙었다. 전자는 교만했고 후자는 거칠었으며, 무지하기로 말하자면 양쪽이 막상막하였다. 문화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들여다보고 존중하는 마음은 실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앞으로 위정자들은 문화예술을 대하는 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라면 블랙리스트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종전과는 아주 다른 신종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마디로 예술가의 정치적, 이념적 성향에 따르지 말고 예술적 능력에 입각한 명단 말이다. 예를 들자면,

*실력도 없으면서 집요한 로비와 스킨십으로 특혜를 얻어내는 예술가 및 거기에 속아서 (혹은 알면서도) 지원금을 안겨주는 기관 담당자
*요즘 외국작품 비디오 구하기가 얼마나 쉬운 줄도 모르고 여전히 “요건 모르겠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표절하는 일부 예술가들.
*자네 공연을 봤는데 좋더구먼. 평 써줄게.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근데 말야, 내가배가 고파서 글을 쓸 힘이 없어. 어떡하면 좋을까? 라고 이제 막 안무가로 첫 발을 내딛는 젊은 무용가에게 문의하는 평론가.
*그런 줄 알면서도 촌지 봉투 건네며 자신에게 호의적인 글을 써 줄 것을 은근히 종용하는 일부 예술가들.
*남의 작품이나 행사를 가보지도 않고 오로지 질투심 때문에 형편없다고 비방을 일삼는 인간들.

등등인데 사실 이런 건 아주 소박한 예에 불과하다. 더 지저분한 유형도 많지만 이 정도만 하겠다. 요점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실력 있고 노력하는 예술가들을 지원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히 도태되도록 제도를 만들고 관행을 정착시키며 사회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괜찮은 세상이 오려면 지원금을 결정하는 심사위원은 물론이고 이를 관리, 집행하는 공공기관 담당자들이 뭘 좀 알아야 한다. 실은 이게 필수이며 가장 중요한 것인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니 답답한 것이다. 공무원들의 무지와 몰이해 때문에 가슴을 쳐본 경험은 웬만한 경력의 예술가나 기획자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터이다.
 공무원의 무지를 상기시키는 개인적 체험담을 좀 하자면, 내 경우 2012년 대선 이전 이명박 정권 시절에 이미 ‘친 민주당계’로 분류돼 있었다는 사실을 몇 해 지나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이유인즉슨 내가 마지막 3년을 상무로 재직했던 연합뉴스의 사장이 친 민주계 인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친 민주 사장이 임명한 사람이니 상무 역시 민주계라는 것이 그 근거였다는 것이다.
 제대로 조사를 하려면 실제 임명된 중역들이 정말로 친 민주 성향이었는지, 아니 그보다도 연합뉴스에서는 기본적으로 정치성향에 따라 보직을 주는지 등 조직 내부의 구체적인 속성과 상황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나처럼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적어도 당시까지는) 사람을 특정 계열로 분류해 놓고 이런 사람은 문체부 유관단체에 취업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규까지 공유했다고 하니 정말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내 경험으로는 순진하게 잘 속는 몇몇 직업군이 있는데 공무원들이 단연 A급에 속한다. 그러니 공금을 횡령하고 해외도피 했던 자가 돌아오자마자 문체부 사업을 용역 받는가 하면 (사실 이건 한동안 나돌았던 소문이고 내가 직접 확인한 건 아니다. 단지 소문이었기를 바란다), 이 한 몸 바쳐 민족예술을 지키려고 집까지 팔아가며 공연을 제작했습니다 하고 읍소하면 측은한 마음에 도와주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예술가들 등치는 악덕 기획자인지도 모르고.
 얼마 전 예술의전당에 갔다가 예술강좌 프로그램 안내판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 총괄강사가 그 분야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문제아였기 때문이다. 실력 없는 건 기본이고 인성과 품행에도 문제가 많아 심심치 않게 논란을 야기하는 사람인데 하필 사설단체도 아닌 예술의전당! 그 사람이 예술의전당에 초빙 받았다는 점을 얼마나 떠들고 다니며 처세에 활용할지 눈에 선했다.
 기자들은 공무원보단 좀 낫지만 종종 간단히 속아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래 전 얘긴데, 글자 그대로 사이비 평론가 하나가 갖가지 문제를 일으켜 평론가 모임에서 쫓겨났다. 그러자 그는 기자들을 찾아다니며 “내가 그들보다 실력이 좋고 더 존경 받으니까 나를 축출했다. 실은 그들이 바로 부패한 평론가들”이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다. 기자들 대부분이 그를 아는지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한 유력지 기자는 정의감 넘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 적는 우를 범했다. 기자든 공무원이든 정치인이든 현장을 모르면 언제든 저지를 수 있는 실책이다.
 마침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이 바뀌었다고 한다. 김복희 전 이사장이 12년 만에 물러나고 조남규 신임 이사장이 취임했다고 한다. 중앙일보 기사에 인용된 한 무용평론가의 표현처럼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한번 기대해 보자. 새로 출발하는 사람이니 초심이라는 게 있지 않겠나. 신임 이사장이 나서서 무용계의 진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보면 어떨지?
 한국무용협회를 대한민국 무용계의 진정한 대변자 혹은 권익옹호단체라고 믿는 사람이야 거의 없겠으나, 그래도 혹시 아는가. 조 이사장이 처음 출마의 뜻을 품었을 때는 우리 문화계가 이런 격랑에 휩쓸릴 줄 몰랐겠지만 이 극적인 상황이 오히려 무용계 발전의 획기적 전환점이 될지. 그리고 그 노력의 과정에서 그 나물에 ‘그 밥’이 맛있고 영양가 높은 오곡밥으로 변신할지.
 한국무용협회가 나선다고 단번에 변할 무용계는 결코 아니지만, 지금이야말로 혁신을 위해 모든 단체와 개인들이 나서야 할 때이지만, 무용계에서 가장 낙후하고 가장 무능하며 가장 썩은 그 ‘대표단체’가 진정 변신을 한다면 그 순간 온 무용계에 엄청난 ‘역설적 파급효과’를 미칠 수도 있을 것이기에 하는 얘기다. 

2017.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