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발레단×황병기 “아름다운 조우”
장광열_춤비평가

 직업 발레단이 어떤 종류의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느냐는 발레단의 경쟁력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백조의 호수〉 전막을 온전히 발레단 자체의 프로덕션으로 공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그대로 그 발레단의 위상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볼쇼이발레단이 보유한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 전막을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은 일정 기량을 갖춘 남성 무용수들을 다수 확보하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따라서 이 작품을 온전히 발레단 자체의 댄서들만으로 공연할 수 있는 발레단은 전 세계를 통털어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국립발레단이 한국적 소재 혹은 색채의 창작 발레 직업에 관심을 갖고 이를 실행하는 것은 메이저 발레단으로 도약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국립발레단과 황병기 음악의 만남을 표방한 “아름다운 조우“(9월 27-28일, LG아트센터, 평자 27일 공연 관람)는 우선 기획적인 측면에서 주목할 만했다.
 국립발레단이 보여준 그동안의 창작 발레 작업이 대부분 한국적 소재에 초점을 맞춘 대작 위주였다면, 이번 공연은 한 작곡가의 작품과 연계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기획적인 면에서는 이미 예술적으로 인정받은 작품, 한국의 국악기중 대표적인 현악기인 가야금 곡을 택한 점, 그리고 그런 작업을 위해 선정한 안무가들을 국립발레단 내부를 포함 외부에서도 영입하고 그중 한 명은 발레가 아닌 다른 장르의 춤 전공자 중에서 택한 점 등이 눈에 띄었다. 
 세 명 안무가들의 작업은 같은 가야금을 주조로 한 음악을 사용했더라도 저마다 빛깔이 다른 황병기의 음악만큼이나 그 맛도 달랐다.




 박일이 안무한 〈미친 나비 날아가다〉는 황병기의  세 개의 곡을 사용, 이를 방랑하는 시인으로 불렸던 김삿갓과 연계시켰다. 그가 남긴 네 편의 시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고, 안무가는 스토리텔링 보다는 김삿갓을 주인공으로 그의 행적(방황)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기생)과 유유자적의 삶을 무대 위에 표출했다.
 안무가는 작품의 전개과정 보다는 개개 장면에서 춤과 음악의 조합과 볼거리를, 선곡한 세 개의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와 견주어 비교적 정직하게 표출해냈고, 무대미술, 의상, 무용수들의 머리 장식 등 시각적 조화를 염두에 둔 제작진들의 협력 작업이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차향이제〉의 음악을 사용한, 황병기의 가야금과 여성 창자에 맞춘 남녀 2인무, 조명과 무대미술이 자아내는 배색과 춤과 음악의 조화도 별미였다. 
 반면에 인물과 인물들 사이에서, 어떤 상황을 표출하는 장면 설정은 좀더 세밀한 연출이 필요해 보였다. 무용수들이 동심- 장난기와 놀이성- 을 표출하는 장면에서는 연기적인 면에서의 보완과 보다 현실감 있는 설정이 더해졌다면 작품의 완성도가 배가되었을 것이다. 김삿갓(이동훈)과 기생 매화(김리회)의 2인무와 김삿갓의 솔로춤 등이 이야기 전개상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고 필요에 의해 작위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인식이 들게 만든 것이 그런 예이다. 
 두 번째 작품. 안무가 정혜진이 〈달〉에서 강강술래와 달을 연결시킨 시도는 낯설지 않다. 강강술래가 갖는 원무(圓舞)와 나눔의 이미지, 놀이성을 차용한 것은 한국춤 전공자들이 달을 소재로 한 작업에서 표출했던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발레 메소드에 의해 훈련된 발레 댄서들에 의한 접합, 다른 음악이 아닌 가야금 곡만으로, 무엇보다 황병기의 음악 속에 담겨진 한국적인 미감과의 만남을 통하니 보니 한 동작 한동작이, 개개 장면의 이미지의 구현이 특별한 감흥으로 다가왔다. 만월에서 반달까지, 변화하는 달의 형상을 영상을 활용, 움직이는 무대미술을 통해 강하게 어필하도록 한 제작진들의 작업도 뛰어났다.
 8개의 달과 8명 댄서들의 원무는 발끝으로 표현하는 움직임 조합이 특별했다. 한국춤 전공자들의 사뿐사뿐 디딤새는 발레 댄서들의 토를 이용한 발끝 윤무(輪舞)로 치환되었고, 그 차별화 된 움직임이 주는 감흥은 한국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발레 댄서들의 뽀르 드 브라를 한국 춤에서 보여지는 팔 동작과 연계시켜 감상하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강강술래의 지와밟기 놀이를 김지영을 리드 댄서로 구성하면서 8인무를 사선으로 배치하도록 한 대형 변화, 상체를 드러낸 남성 무용수와 한쪽 어깨를 드러낸 여성 댄서를 이용한 에로티시즘, 댕기머리를 통한 한국적 미감의 표출은 독창성과 함께 달을 인간의 사랑과 욕망으로 연계시킨 안무가의 의도가 엿보인 대목이었다. 
 김지영의 댄서로서의 존재감과 영상을 활용한 한국적 정서의 교합이 주는 특별함의 농도도 상당했다. 김지영의 춤(몸)은 달과 가야금이 갖는 정과 합의 정서를 기막히게 넘나들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중동의 미감, 전통과 현대적인 정서 모두를 아우르는 특별한 질감은 소녀의 감수성에서부터 성숙한 여인의 관능미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침향무〉에서 동서양의 넘나듬, 〈밤의 소리〉에서의 기다림의 음악적 정서를 그녀는 움직임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파리 오페라발레단 안무가 니콜라 폴(Nicolas Paul)의 〈Nobady on the road〉(길위에는 아무도 없었다)은 기존 유럽의 안무가들에게서 보여지는 컨템포러리 발레 작업 유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음악과 움직임의 조합에 충실하고, 악기 군에 따라 댄서들의 움직임을 차별화 하는 구성은 이 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무가는 황병기의 〈비단길〉에 담겨진 동과 서의 색채를 현대적인 움직임에 한국적인 쏘스(source)의 접목으로 무대 위에 표출했다. 작품 군데군데에 서 한 명의 댄서가 품에 안은 작은 단지(항아리)는 치마 저고리 의상과 함께 이 작품이 여타 컨템포러리 발레와의 차별성을 구현하는 요소들이다. 
 안무가는 무대를 깊이 있게 활용하면서, 정지된 포즈를 통한 느린 이미지를 작품 곳곳에 배열, 작품의 완급을 조절했다. 첫 장면 항아리를 가슴에 보듬어 안은 여인의 등장은 앞으로 안무자가 풀어낼 작품의 이미지를 한번에  유추하게 했다. 
 항아리가 남성 무용수에게 전해지는 장면,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하며 의상을 통해 신체를 드러냈다 숨겼다 하는 장면, 천천히 치마 저고리를 접는 동작의 반복, 벗은 의상을 들고 한참동안 서있는 장면 등은 움직임과 음악의 매치만으로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작품에 어떤 의미부여를 하는 설정으로 보여졌다. 
 치마 저고리를 입은 여성 무용수와 짧은 팬츠를 입은 남성무용수 등 4쌍의 8인무를 구성하면서, 세 쌍과 한 쌍의 움직임을 다르게 배치한 것이나 항아리를 든 여인의 움직임은 정지시킨 채  상대적으로 남성 무용수들은 많은 움직임으로 대비시킨 점 등은 니콜라 폴의 안무가로서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번 공연은 독창적인 컨템포러리 발레 작업을 통한 국립발레단의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 확보란 점에서 일정 소득이 있었다. 작품 〈달〉은 지속적인 보완작업이 뒤 따른다면 독창성과 보편성 모두를 아우르는 레퍼토리로 국제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이다. 
 황병기의 빼어난 음악과 영상, 무대미술, 조명 등 비주얼을 살려낸 스태프들과의 협업, 그리고 중극장 규모의 LG아트센터 무대 공간은 이번 기획 공연의 성과를 상승시키는데 기여했다.
 국립발레단의 이번 기획 공연은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가와 연주자의 창작 가야금 곡과 각기 그 교육적 배경이 다른 3명 국내외 안무가가 만난 트리플 빌 (Triple Bill)무대였다. 3개의 소품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엮은 이같은 일종의 패키지 상품은 발레단의 입장에서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맛깔의 작품을 서비스 할 수 있고 전막 공연에 소용되는 많은 제작비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번에 공연된 작품 중 일부를 다른 발레 레퍼토리와 접합시켜 또 다른 트리플 빌로 구성한다면 “별미의 one night”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위한 양질의 서비스가 가능할 수도 있다. 국립발레단으로서는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을 향한 공연 프로그램 구성에서 그 만큼 운용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2012.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