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수영 〈Map Project in Hwaseong〉
유전적 환경적 요소와 만난 융복합, 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산
장광열_춤비평가

달랐다.
융복합, 장소특정, 커뮤니티 댄스, 장애인 춤 등등. 춤 공연의 성격과 내용이 다양화되고 확장되면서, 겉만 화려한, 내실 없는 작업이 적지 않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Map Project in Hwaseong〉은 분명한 콘셉트와 함께 예술적 접근 방식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11월 4일 토요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발안 만세시장. 공연은 갤러리 입구 주차장에서 박수영과 송윤아의 느린 움직임으로 시작됐다. 작은 의자 위 두 명 퍼포머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운 컨택에 의해 변주되자 바닥에 밀착된 댄서들의 몸 너머로 형형색색의 글자와 색깔들로 치장된 간판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그때 배우이자 무용수인 송윤아가 무언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공연은 발안시장 안에 있는 만세 갤러리 입구 주차장에서 박수영(왼쪽)과 송윤아의 춤으로 시작했다.



박수영 〈Map Project in Hwaseong〉



내가 음식을 하면 많이 짜요
그래도 남편은 맛있어, 맛있어

단무지? 다안무지? 단무지 회사에요 거기 일했어요
많이 노력했는데
교통비 가스비 월세 다 직접 내야 해서
몇 분이라도 늦게 일어나면 버스 놓칠 수 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교 안 갔어요 경제가 좀 부족했어요

한국말 조금 알아요 어떻게 많이 공부해요
나 머리 안 좋아요 어떻해요 어떻해요

그녀의 입에서 뱉어지는 문장들은 분명한 발언만큼이나 그 어휘가 주는 뉘앙스가 강했다. 동선이 2층 갤러리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옮겨지면서 관객들과 더 가까워진 댄서들의 움직임은 움츠려들기 보다 오히려 더욱 빨라지고 그 진폭도 커졌다.

두 명 퍼포머들이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면서 세 명의 외국인 이주자들이 춤으로 가세하고 어느새 관객들 사이사이의 공간도 공연장소로 바뀌었다. 그 사이 대형 TV 화면으로 송출되는, 인근 향남읍에 사는 한국인 이주자들의 인터뷰 영상과 문장들, 그리고 어르신들의 모습까지도 공연의 배경이 되었다.

젊으니까 재혼을 해가지고. 아버지가 경기도 청평으로 광산이 된다고 오셨기 때문에
열 살 때 황해도 연배 살다가 이남으로 넘어와서 여기 산지는 30년 넘었지
산등을 넘어서 고개를 넘어서 3.8선을 넘어 온 거야


30분 남짓 시간이 흐르자 갤러리 벽에 부착된 이주자들의 기록물과 함께 카페를 겸해 운영되는 공간은 단순히 공연을 위한 장소가 아닌, 이 프로젝트 전체의 의미를 담아내는 예술공간으로 변했다.

공연에 사용한 문장들은 사전에 인터뷰 한 중국, 태국, 베트남 여성 이주민 세 명(노동자)과 인근 향남읍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여성 거주민 세 명 어르신들의 인터뷰 내용에서 선정했다.

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은 박수영은 공연에 출연한 이주자들과 많은 시간 이야기하며 그들의 정서와 개개인의 캐릭터를 분석하는 것에 시간을 들였고 이 인터뷰 내용들을 말로 접목시키는 과정에서는 꽤 세밀하게 춤과 조합해 냈다.

출연 배우에게는 한국어를 발음할 때 약간 어색해 하며 말하는 그 특유의 발음을 살려서 말하도록 요구하였고, 공연의 시작점인 만세 갤러리의 주차장에서는 공연자에게 문장을 만들어 말하도록 했다. 다음 공연 장소인 건물 안 계단부터는 문장을 더 해체하고, 인터뷰 한 어르신들의 말씀 중 나오는 특유의 추임새를 추가하는 등 변화를 꾀한 것이 그런 예였다.











박수영 〈Map Project in Hwaseong〉



〈Map Project〉는 무용가 박수영이 수년 전부터 시도하고 있는, 지역의 장소가 갖고 있는 고유성과 무용, 영상과의 융복합 작업이다. 그동안 스페인 독일 슬로베니아 인도네시아 불가리아 한국의 부산에서 진행했고, 이번 공연이 있기 전에는 영국의 런던에서 행해졌다.

전체 제목 〈Map Project in Hwaseong〉과 작품의 내용을 요약한 ‘화성시 기억의 인생지도 무용공연’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업은 화성시에 거주하는 이주민과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그들의 기억을 춤과 언어, 영상과 전시로 풀어낸 일종의 복합공연이다.

‘화성시 주민들의 기억과 그들의 삶의 현장을 리서치, 화성시만의 융복합 작업을 시도하겠다’는 작가의 의도는 화성시에 거주하는 이주민과 지역민들을 선별, 그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도출된 요소들을 작품 구성의 중요한 키워드로 삼았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지역과의 연계성이 강한 작업이었다.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지역 상가 번영회, 이주민 지원센터, 지역문화재단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도 지역의 주민들에게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더욱 확대하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역의 스토리를 담은 작품 제작을 통해 지역의 관심도 및 인지도 상승, 지역의 문화예술 향유 확산 및 소외계층 예술 활동 기회 촉진, 작품 발표 이후 지속적인 관계 이어가기를 통해 문화예술교류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성과도 얻었다.

11월 4일 토요일, 서울과 수도권에서 적지 않은 수의 춤 공연이 있었지만 평자기 이 공연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민들이 모여드는 시장에서, 영국 런던의 한국 마을과 한국의 동남아시아 마을을 연계해 이주민들과 지역민들의 구구절절 삶의 기억들을 뜨개질처럼 엮은, 전시를 병행한 장소특정 공연, 그리고 지역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제작된 공연이란 점 때문이었다.

외국으로부터 온 이주민이 200만 명을 넘어선 대한민국, 〈Map Project in Hwaseong〉은 4번째로 다문화 가정이 많은 화성시의 지역적인 특성과 이곳에 살고 있는 이주민과 거주민들을 직접 공연에 참여시키고, 하루에 17개국의 이주민들이 찾는 발안시장을 공연과 전시장소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예술작업으로서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무용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2023.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