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SIDance & SPAF 화제작
크로스오버 춤, 주목할 만한 두 개 작품
장광열_춤비평가

 안무가들이 위대한 것은 그들에게는 끊임없이 샘솟는 새로운 창조력이 있기 때문이다. ‘안무가’란 이름이 붙여진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기발한 상상력은 일반 관객은 물론이고 때론 춤 마니아들과 비평가들까지도 깜짝 놀라게 한다.
 이즈음 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안무’란 말 대신 ‘컨셉트’란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는 유럽의 안무가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춤 작업들을 ‘안무’라는 단어로는 모두 포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무가는 이제 더 이상 움직임을 창안하고 이를 조합하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작품의 전체적인 프레임이나 아이디어,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적인 것까지 안무가는 더 많은 장르와 소통하면서 더 많은 스태프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서울국제무용제(SIDance)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는 유럽의 이같은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몇 개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SIDance 오프닝 무대를 장식한 쿨베리 발레단의 3개 작품(10월 5-6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중 두 번째로 선보인 <40미터 아래>(안무_알렉산더 에크만)는 빼어났다. 이 작품은 2010년에 무용영화로 제작되었다. 무용수들이 무대에 출연하지 않고 비록 영상으로만 보여지지만 작품의 중심은 댄서들의 움직임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실제 공연이 마치 흑백 톤의 필름으로 재생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16명의 댄서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과 배경이 되는 복층 건물의 구조를 활용한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 무용수들의 움직임 개발과 조합이 기막히다. 여기에 댄서들의 표정과 조형성을 극한으로 살려내는 카메라 워크 또한 출중하다.
 공연 팜플렛에는 ‘’지하 30미터의 건물에서 무엇인가를 설치하는 사람들“을 소재로 했다고 적혀 있으나 흰색 가운을 입고 빠른 템포의 움직임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군무진들 사이로 등장하는 임산부의 설정 등 그 배경은 오히려 병원을 연상케 했다.
 흰색 가운과 검정 바지의 무용수들, 그들이 손수 이동시키는 작은 검정색 테이블이 주는 배색 효과, 인성(人聲), 귀를 때리는 호르라기와 테이블이 부디치면서 내는 소리까지도 음악의 쏘스로 활용하는 감각, 종반부 기념촬영 장면에서 맞닥뜨리는 클로즈업한 얼굴 형상과 완만한 속도감의 대비까지, 이 작품은 움직이는 몸과 카메라 영상이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획득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반면에 이 작품 전후로 선보인 <공연중>(안무_크리스털 파이트)은 무대 뒤와 리허설 현장 이 등장하는 비슷한 소재의 작품이 이미 여러 편 선보였던 데다 움직임 조합에서도 별다른 뛰어남을 보여주지 못했고, <검정과 꽃>(안무_요한 잉게르)은 사이사이 코믹적인 요소와 댄서들에 의한 움직임과의 배합을 시도했으나 <40미터 아래>가 주는 강한 여운에는 못미쳤다.
 SPAF 초청 작품인 <소아페라>는 안무가 마틸드 모니에와 시각예술가 도미니크 피가렐라가 컨셉션을 담당했다. 몽펠리아에 베이스를 둔 랑구독-루시옹 국립안무센터를 이끌고 있는 마틸드 모니에는 비누 거품을 무대 위로 끌어와 이를 무용예술과 매치시켰다. 무대(캔버스)에 등장한 비누거품(오브제)은 움직이는 동체인 댄서(붓)들과 만나면서 시각예술과 무용의 만남이란 특별한 경험을 아주 비주얼하게 때론 감성적으로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비누 거품의 특성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형체는 변화될 수밖에 없고 그런 확연한 변화를 안무가는 댄서들의 시종 느린 움직임으로, 시각예술가는 고정된 수직형의 벽(무대 왼쪽과 정면에 설치된 ㄱ자 형태)과 움직이는 사각형 수평 판넬(4명의 댄서들이 거품 사이로 그 판넬의 끝을 잡고 수평으로 이동시킨다)로 대비시켰다.
 비누 거품이 전해주는 묘한 질감, 마치 안개 속을 누비는 듯 거품 속을 천천히 배회하는 무용수들, 신비감을 더하는 감미로운 음악, 느린 속도의 움직임이 주도하는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이 갖는 포용성을 한껏 과시했다.
 <40미터 아래><소아페라> 두 작품 모두 건축이 포용하는 직선과 무용이 포용하는 곡선의 미가 묘하게 융합된,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비주얼 댄스로서 손색이 없다.
 SIDance와 SPAF는 모두 적지 않은 국고 지원을 받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축제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경우 20일 넘게 계속되고, 무용과 연극의 비중이 절반 정도이긴 하나 무용 공연만으로도 서울세계무용축제와 맞먹는 규모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축제는 일정 중복으로 인한 비효율성에 대한 공연예술계의 오랜 지적을 아직도 외면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는 축제인 만큼 공공성 강화의 차원에서라도 그 개최 시기를 달리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2012.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