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병천 추모공연
세대를 넘는 전승, 춤으로 기억하는 박병천
김영희_ 전통춤이론가

〈진도북춤〉의 명무이며, 진도씻김굿의 예능보유자였던 고 무송 박병천((朴秉千, 1933∼2007)을 추모하는 공연이 12월 19일(서울 남산골한옥마을 남산국악당) 있었다. 사단법인 박병천류진도북춤보존회(이사장 강은영)가 주최‧주관했고, 1세대 제자인 강은영, 이경화(본회 고문), 김진옥(본회 수석상임이사), 염현주(본회 수석부회장), 윤명화(본회 부회장)와 2세대 제자들까지 폭넓게 참여하였으며, 예인 박병천을 추모하며 그의 예술적 유산과 정신을 되새겼다.



박병천 추모공연 〈진도북춤〉



공연은 박병천 선생의 생전모습을 되돌아보는 영상으로 시작했다. 첫 프로인 〈진도북춤〉은 12인(안상화, 김은희, 정선화, 문다솜, 최상옥, 서미교, 오정희, 유선희, 전선미, 조보경, 오지영, 한효설)의 진도북춤 춤꾼이 하수에서 1인씩 등장하여 상수 쪽으로 나아가면서 각양의 진도북춤 춤사위들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동작들은 유사했으나 복색들이 저마다 달랐다. 짙은 색 치마에 앞섭이 긴 하얀 저고리를 입거나, 흰 치마저고리에 쾌자를 걸치기도 했고, 은박무늬를 장식한 치마저고리에 궁중무 쾌자를 걸치기도 했다. 삼색띠도 저마다 달랐으니, 박병천의 진도북춤에 대한 이해 내지는 관점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무대에서 함께 춤추자 박병천류 진도북춤의 틀거리 속에서 갖가지 꽃이 만발한 듯했고, 박병천의 진도북춤이 1세대에 이어 2세대로 이어지며 널리 추어지고 있음을 선명히 보여주었다.



박병천 추모공연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박병천이 생전에 진도의 강강술래에서 손치기, 발치기를 가르치는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박병천은 씻김굿뿐만이 아니라 진도의 전통 공연예술들을 알리고 작품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고, 제자들에게 강강술래도 빠지지 않고 가르치셨다고 한다. 그 제자들의 어린 제자 18명이 노래 가사에 따라 강강술래를 놀았다. 아이들 모습에는 흥겨움과 진지함이 함께 담겨 있었고, 관객들은 출연진들보다 더욱 흥겨워했다. 국공립무용단이 보여주는 유연한 〈강강술래〉와 달리 풋풋함과 놀이성이 돋보였다. 진도씻김굿보존회의 김오현 회장과 전수자 이소영이 강강술래의 소리를 욱신욱신하게 자븐자븐하게, 또한 참으로 구성지게 불러주었다. 박병천류진도북춤보존회의 김은희, 정선화, 전선미가 지도했다.



박병천 추모공연 〈남도굿거리춤〉



〈남도굿거리춤〉은 손춤을 추다가 지전을 들고 추었다. 원래 진도씻김굿의 제석거리에서 제석춤으로 추어졌으며, 독자적으로 이 춤을 춘 무대는 1983년 국립극장 소극장에 올려진‘한국명무전’이었다. 이때 진도씻김굿의 당골이며 박병천의 부인 정숙자(1939~2001)가 추었다. 이후 박병천이 제석거리의 굿거리춤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서미교, 황수정, 정지수가 추었으며, 장단은 굿거리-엇모리-자즌모리-쳐올리기로 구성된다. 무속춤 중 지전춤의 한 전형으로 살릴 필요가 있다.



박병천 추모공연 〈김일구류 아쟁산조〉



다음은 〈김일구류 아쟁산조〉였다. 박병천의 외손자인 김동환(추계예대 4학년 재학)이 연주했다. 박병천의 무계(巫系)는 이전 시대에 신분적으로 세습되었으나, 이제는 꼭 그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자손들이 박병천 뿐만이 아니라 진도씻김굿의 유산을 잇고 있다.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박병천 추모공연 〈진도씻김굿 중 길닦음〉



마지막 프로그램은 〈진도씻김굿 중 길닦음〉이었다. 씻김에서 수많은 망자의 혼을 위무하던 박병천은 뿌리 깊은 예혼(禮魂)과 진솔한 예혼(藝魂)을 남기고 가셨다. 이제는 제자와 후배들이 해마다 그를 기리며 씻김을 하고 있다. 객석에서 무녀 역할의 춤꾼들이 등장해 무대에 올랐고, 무대에서는 영돈말이와 이슬털기 등을 행한 후, 무대 위에 질베(길베)를 길게 펴들어 길닦음으로 이어갔다. 질베는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길이며, 무녀는 망자의 넋을 담은 넋당석을 질베 위에서 조금씩 움직이며 길을 닦았다. 이 길닦음에서 소리는 진도씻김굿보존회의 김오현 회장을 비롯하여 신청악회(음악감독 김태영)의 악인(樂人)들이 심금을 울리는 소리와 반주로 춤의 분위기도 잡아주고 관객들을 위무했다. 진도씻김굿 중 길닦음 굿거리를 춤 중심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며, 스승 박병천에 대한 제자들의 씻김이기도 했다.



박병천 추모공연



각 프로그램 중 박병천의 영상을 보이면서 1세대 제자들이 스승을 회고하였다. 이경화는 박병천이 자연의 흐름과 소리, 동작들에서 나오는 모습과 소리를 잘 표현하셨으니, 등장할 때의 발 사위를 논두렁에서 소가 밭갈이할 때처럼 질퍽질퍽하게 걷는 소리로 비유했다고 했다. 또 염현주는 진도북춤은 누가 맞다 틀리다 그런 건 없다고 하시며, 오묘한 장단에 오묘한 몸짓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윤명화는 스승으로부터 우리 춤의 민속적이고 연희적인 서민의 춤을 배웠으며, 남에게 보이려고 가식적으로 추는 것이 아닌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꾸미지 않은 춤 어쩌면 춤의 본질에 가장 접근한 춤을 배웠다고 했다. 명무이자 명인이셨던 박병천이 제자들에게 전한 이러한 설명과 춤의 정신들은 그다음 제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매년 무송(舞松) 박병천을 기리는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박병천 명인의 세상과의 이별은 안타깝고 슬프지만, 제자들이 펼친 공연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귀한 무대였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

2024. 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