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트프로젝트보라 〈서사 없는 에피소드〉
서사 읽어내기
정옥희_춤비평가

음악과 춤은 긴밀하고도 불편한 관계이다. ‘춤추고 노래하는 일’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행위라 여겨졌다면 근대 미학 이후의 음악과 춤은 장르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배척하고 지워냈다. 개중엔 음악을 시각화하는데 거리낌 없는 안무가들도 있지만 그 연결을 떼어 놓는데 몰두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음악과 춤을 우연에 맡겨 병치시킨 머스 커닝엄이나 예측 가능한 리듬감을 배제하고자 했던 이본느 레이너처럼 극단적인 이들은 소수일지언정 단순히 음악에 맞춰 춤춘다고 말할 동시대 안무가는 적다.

음악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춤추기를 자존심 상하게 여기는 무용가들처럼 음악가들은 춤을 위해 반주하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게 춤곡이어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꼼짝 않고 엄숙하게 연주하는 춤곡을 듣고 침묵 속에 움직이는 춤을 보게 된다. 〈서사 없는 에피소드〉(2023.12. 16-17. 더 윌로)는 아트프로젝트보라의 안무가 김보라와 서울대 작곡과 교수인 최우정의 협업이다. 공연 후의 토크에서 밝혔듯 김보라는 음악에 대해,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춤이 음악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에 대해 상당히 경계하는 입장을 지녔었다고 한다. 지난 8월 TIMF 앙상블과 협업했던 〈발레 메카닉〉이 전환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회피하던 대상을 맞닥뜨리기로 결심했으니 안무가로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과정일지 모르겠다.



아트프로젝트보라 〈서사 없는 에피소드〉



음악을 다룬다고 해서 그가 음악을 춤의 BGM으로 깔거나 춤을 음악의 시각화로 치환하는 것은 아니다. 서정적인 선율이 야기하는 감정 표현에 매몰되기도 경계 한다. 대신 그가 주목 하는 점은 음악이 지닌 구조이다. 〈서사 없는 에피소드〉가 바흐의 푸가를 탐구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논리적인 귀결이다.

푸가는 대위법을 특징으로 하는 악곡 형식이고, 대위법은 두 성부의 대화라 할 수 있다. 두 성부가 대주제를 주고받는 한편 주제에서 이탈한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대위법은 어렵고 복잡하여 사뭇 현학적이지만 비교적 구체적이고 양식화 된 규칙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마치 고전발레의 수많은 규칙들처럼 안무가들에게 도전 정신과 안정감을 동시에 부여한다. 푸가의 대위법은 수많은 안무가들을 매료시켰다. 차가운 수학적 구조가 만들어내는 경이로움, 혹은 개별 선율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무용수들의 합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위법을 안무 전략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안무가가 윌리엄 포사이스다. 포사이스가 대위법의 현란한 구조를 군무화하여 마치 즉흥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면 김보라는 대위법의 원리를 해체하여 무용수 개개인이 새로운 구조를 자가발생 시키도록 허용한다. 그 결과 보다 전위적이고 느슨한 양태로 귀결된다.



아트프로젝트보라 〈서사 없는 에피소드〉



안무와 작곡은 모두 시간적, 공간적, 심지어 신체적 요소를 규율하고 구조화하는 행위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드러난 형상에 따라 각각 춤과 음악으로 불릴 뿐이다. 안무는 행위를 발생시키는 명령이지만 〈서사 없는 에피소드〉에서 안무가는 그 명령을 푸가 속 대위법으로 대체한다. 일종의 ‘발견된 안무’라 할 수 있다.

푸가를 안무 명령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관객은 기대하게 된다. 춤에서 얼마나 음악이 들리고 보일 것인가 혹은 어디까지가 짜인 안무이고 어디부터 자유로운 즉흥인가. 하지만 모두 유효한 질문이 아니다. 이 작품은 음악을 움직임으로 번역하지도, 구조의 닫힘과 열림을 구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은 특정 곡의 구조를 일대일로 움직임으로 치환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몸이 대위법의 원리를 터득하고 활용하고 해체하도록 허용한다. 대위법에서 주제가 아닌 에피소드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이데아계의 유일무이한 대상을 부분적으로 반영한 무수한 대상이 현상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무용수들은 주제에서 벗어난 에피소드를 끝없이 창발하고 실행한다.



아트프로젝트보라 〈서사 없는 에피소드〉



경동시장의 낡은 상가건물 이층에 위치한 더 윌로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의 전형처럼 텅 빈 재생 공간이다. 시끌벅적하고 알록달록한 시장의 풍경을 통과하여 기둥이 군데군데 서 있는 거친 시멘트 공간에 들어서니 마치 악기나 동물 장기의 내부에 들어온 것 같은 긴장감이 생긴다. 따뜻한 톤의 목폴라 티셔츠를 입은 일련의 무용수들은 공간을 배회하다가 한가운데에 놓인 스탠드마이크를 둘러서서 숨을 쉰다. 네 가지 에피소드 중 첫 번째인 ‘숨’이다. 개개인의 폐에서 나온 숨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유입되어 스피커로 송출되는데, 공간 전체가 거대한 울림통이 되어 반향하니 축적 변형의 묘를 읽어낼 수 있다.

무용수들이 숨 쉰다. 풋, 풋, 스스, 하악, 후우욱. 공간 배치, 높낮이, 강세, 흐름, 리듬으로 구조화된 숨은 분화되기 이전의 음악이자 춤이다. 의도적인 숨쉬기는 보이지 않는 것, 만져지지 않는 것,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것을 드러내고 실체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무용수들의 중첩된 숨소리는 얼핏 무작위적이고 즉흥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옆에서 악보를 펼쳐두고 앉아 열심히 분석하는 김보라의 매서운 눈빛을 통해 일련의 구조가 진행 중임으로 짐작하게 된다. 작품 전체에 시각적 요소가 적었지만 유독 숨 에피소드는 눈을 감고 감상하는 것이 더 적확해 보였다. 공감각적으로 감지되는 숨의 현전을 알아차리는데 시각이 오히려 방해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상상’은 좀 더 직설적으로 시각을 배반한다. 푸가의 구조를 몸 안으로 가져와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무용수들은 진지하게 몰두하여 온몸 구석구석으로 의식을 보내지만 겉으로 드러난 양태는 비틀비틀, 흐물흐물, 혹은 어슬렁어슬렁이다. 좀비처럼 배회하는 그들의 경직된 몸 덩어리 안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무언가를 알아차리려면 상상할 수밖에 없다. 아트프로젝트보라 특유의 메소드인 ‘테일 무브먼트’(Tail Movement)를 바탕으로 한다는데, 확실히 꼬리뼈에서 경추까지의 척추가 민감하게 연동되어 있음이 감지된다. 움직임이 커지면서 신발의 마찰음과 신체 타격음이 몸에서 몸으로, 공간에서 시간으로 전파된다. 순간적으로 중첩되는 소리나 겹치는 몸들 속에서 찰나의 관계가 형성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에피소드인 ‘춤’과 ‘시간’에선 움직임이 커지고 빨라지면서 보다 전형적인 컨템퍼러리댄스를 닮아간다. 몸의 각 부분들을 분리하여 유동적이고도 예측불가능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춤 말이다. 다만 무용수들이 간헐적으로 외치는 음악 마디, 혹은 음악이 흐르다가 갑작스레 멈출 때의 정적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일련의 구조 위에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사 없는 에피소드〉는 음악을 끌어오되 오선지와 음표를 지운 춤이다. 음악을 지배하거나 배척하는 대신 음악 가장 안쪽의 결을 몸에 새긴다. 무용수들은 명령을 받아내는 존재가 아니라 구조에 반응하는 존재가 되어 제각각의 에피소드를 발생시킨다. 그들의 에피소드엔 이렇다 할 주제 선율이 없지만 그 배치와 공존과 선택이 서사의 씨앗을 품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애써 가리키려는 이 노력에 의미가 있다면 서사가 없는 곳에서 서사를 읽어낼 가능성을 품기 때문일 것이다.

정옥희

춤 연구자 및 비평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니버설발레단과 중국 광저우시립발레단의 정단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Dance Chronicle 자문위원이며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진화하는 발레클래스』(2022), 『이 춤의 운명은: 살아남은 작품들의 생애사』(2020)가 있다.​​

2024. 2.
사진제공_아트프로젝트보라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