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4 한국×대만 현대무용 교류전 ‘DIVERSITY’
분출되는 서로 다른 에너지의 절묘한 교합
장광열_춤비평가

범상치 않았다.

춤 공연에서 대부분의 댄서들은 몸의 정면을 객석을 향해 노출하지만, 공연 내내 그녀는 자신의 뒤태를 관객들을 향하도록 했다. 춤추는 댄서의 등 근육은 호흡의 고저에 따라 미세하게 때론 선명하게 움직였고, 관객들은 자유자재로 완급을 조율하는, 몸 하나로 변화무쌍한 에너지의 변환을 보여주는 무용수의 몸에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타이완의 댄서 Cheng I–han이 자신의 안무작 〈Miss Shape〉에서 보여준 솔로 춤은 4차 산업, 융복합,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기술혁명의 시대에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순수예술인 무용예술의 무한한 경쟁력을 확연하게 입증해 보였다.





〈Miss Shape〉에서 Cheng I –han ⓒTerry Lin



한국과 대만의 현대무용 교류전을 표방한 ‘DIVERSITY’ (1월 13일, 대구예술발전소 수창홀)에는 대시그나레무브먼트와 수무브, 피와이댄스, 타이완의 Hung Dance를 포함 4개 단체의 작품이 선보였다.

〈Miss Shape〉란 제목을 향한 관객들의 호기심은 15분 남짓의 공연 동안 한 명의 여성 댄서가 몸으로 보여주는, 움직일 때마다 달라지는 다양한 질감의 춤을 통해 충만되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다져진 아름다운 근육을 소유한 무용수의 몸은 짧게 끊어지는 반복되는 강렬한 음향의 미니멀 음악과 만났을 때, 두 팔과 힙(hip)을 좌우로 흔들면서 무릎을 수차례 바닥에 접촉할 때, 시종 후면 바디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에게 갑자기 몸의 전면을 드러낼 때, popping 테크닉과 만나면서 기교적인 동작이 부각될 때 정점에 달했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원형으로 움직이는 장면, 긴 두 다리를 곧게 스트레칭할 때의 조형미, 숨소리를 곁들인 그녀의 리얼한 표정연기는 압권이었다. 〈Miss Shape〉는 속도감이 잘 조정된 독창적인 움직임의 절묘한 배열, 선명한 콘셉트와 관객들에게 열려 있었던 메시지의 음미까지, 솔로 춤이 갖는 매력을 한껏 발산한 수작이었다.

대만의 젊은 안무가 Lai Hung-chung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Hung Dance의 리허설 디렉터이자 무용수인 Cheng I–han은 그렇게 몸 하나로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적인 예술로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수무브의 안무가 박수열이 기획과 콘셉트를, 댄스플라츠의 박민영이 안무가와 무용수로 참여한 협업 작품 〈척:척(Chuck)〉은 같은 솔로 춤이지만 〈Miss Shape〉와는 달랐다.

다소 어두운 조명 속에서 박민영이 검정 색 무대 바닥에 설치된 회색의 뽁뽁이(air cap)를 밟으며 천천히 한 바퀴를 돌 때 들리는 특유의 사운드는 관객들의 청각을 예리하게 자극했다. 관객들이 그 소리에 익숙해질 때쯤 잠시 멈추어 말하는 댄서의 인성(人聲)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 긴장감을 조성했다. 박민영이 무대 한쪽의 검은 벽을 활용하고 이어 무대 중앙으로 옮겨 두 팔과 다리가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보여주는 움직임은 그녀의 균형 잡힌 바디와 맞물려 다채롭게 변이되었고, 양 어깨와 긴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두 팔을 왼쪽 오른쪽,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신체의 변형은 빠른 템포의 음악과 맞물리면서 정점으로 치달았다. 평자에게는 소리를 음악으로 확장한 시도, 검정 벽을 활용한 구성의 변화, 움직임의 고저 등을 통해 안무가 자신이 경험한 현실 속 일상의 위압과 폭력에 대한 메시지가 읽혀졌으나 관객들에게는 어쩌면 ‘춤 잘 추는 댄서가 보여주는 춤’을 한껏 만끽하는 순서로 더 각인되었을 것이다.

데스그나레무브먼트의 유호식이 안무하고 김가현이 출연한 〈Traveling〉 역시 여성 솔로 춤이었다. 공연의 전체 타이틀인 ‘DIVERSITY’(다양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김가현과 박민영, Cheng I–han의 춤은 작품이 담고 있는 다른 주제와 풀어내는 방법의 차별성만큼이나 관객들에게 보여 지는 혼자서 추는 춤의 결은 사뭇 달랐다. 두 어깨와 부드러운 팔의 움직임을 활용해 완급을 조절해 움직이는 초반부의 움직임 패턴은 두 무용수와 유사했으나 김가현은 무음에서 극소로 움직이다 강렬한 사운드의 음악으로 분위기가 바뀔 때 바닥을 이용한 춤으로 갑자기 전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임팩트 순간의 타이밍이 기막혔고, 한 명의 무용수가 집요하게 자신의 몸을 탐구하는 여정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했다.

PYDance의 서정빈이 안무한 〈Nun〉은 공연 내내 6명 댄서들의 움직임 조합에 시선이 머물렀다. 도입부에 비트가 강한 음악에 실린 댄서들의 몸은 연습에 의해 잘 다듬어진 앙상블보다는 즉흥에 가까운, 무용수들 스스로에게 움직임을 맡긴 듯했다. 이후 안무가는 댄서들이 일렬로 선 채 상체와 하체를 더 크게 변주하거나 다섯 댄서들이 정지된 상태에서 한 명을 움직이게 하는 시도, 몸을 낮추어 무릎을 기점으로 굴신을 통해 움직임과 무용수들의 시선을 변환시키는 구성을 통해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Nun〉에서는 움직임 조합을 포함한 보다 더 정교한 프레임 설정이, 〈Traveling〉에서는 춤추는 댄서의 감성이 더욱 세밀하게 표출되었더라면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도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Miss Shape〉에서 Cheng I –han ⓒTerry Lin




수무브×댄스플라츠 박민영 안무 〈척:척(Chuck)〉에서 박민영



데스그나레무브먼트 유호식 안무 〈Traveling〉에서 김가현



PYDance 서정빈 안무 〈Nun〉



이번 공연 ‘DIVERSITY’는 대구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대시그나레무브먼트, 수무브, 피와이댄스가 공동으로, 다양하고 참신한 현대무용 작품을 대구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일종의 플랫폼을 표방하며 마련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창단되기 전까지 유일한 국공립 단체였던 대구시립무용단을 보유하고 있던 대구는 전통적으로 현대무용이 강세인 지역이었다. 대구시립무용단과 대학 무용과를 중심으로 한 공연에 머물렀던 이곳이 몇 년 전부터 국제 행사를 표방한 공연과 독립 안무가들을 중심으로 한 기획공연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춤의 지형도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아시아 무용가들의 교류를 표방하고 서울에서 개최되던 NDA(New Dance for Asia)가 2년 전부터 대구에서 치러지고 있고, 올해 4월 대구시립무용단의 공연에는 아시아와 유럽에서 활동하는 두 명 외국인 안무가들의 신작이 대구시립무용단원들과의 협업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러가하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직접 기획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즉흥 프로젝트도 봄 시즌에 선보일 예정이다. 컨템퍼러리댄스가 갖고 있는 확장성 만큼이나 바람직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번 ‘DIVERSITY’ 기획공연은 대구 지역의 이 같은 춤 지형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2024. 2.
사진제공_DIVERSITY 사무국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