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주목댄스씨어터 〈YARAS〉
하이! 야라: 트랜스 휴머니즘으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난
이지현_춤비평가

안녕, 야라!
아직은 네가 어색하고 낯설지만 어쨌든 반가워,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종족들과의 만남 후에 미래에 너를 어떻게 다시 이해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이!

〈YARAS〉(예술감독 및 안무/정훈목 프로듀서/박신애,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선정작,1.27-28.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구체적 이름을 갖고 있는 상상의 종족을 무대에서 만난 건 앞으로도 기억될 만한 신선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의 어색함을 줄여주는 데는 첫 장면의 힘이 컸다. 마치 전시회에 간 것처럼 작품과의 안전선을 치는 남자의 등장과 더불어 관객은 전시회를 바라보는, 걷지 않고 ‘앉아 있는 관람객’이 되었다. 전시된 로봇개가 전시회의 객체인 듯 보이는 건 잠시의 착각이다. 그는 곧 가뿐히 들려서 나가고 안무가 정훈목은 우리를 곧 그림의 프레임 안으로 이끈다. 그러기까지의 여러 전제들은 꽤 정교하게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관객을 이끈다. 아마 전시회 직원 남성이 야라족 여성에게 도발적 ‘기습 키스’ 이후 그가 끌려 들어간 것처럼 관객도 그 때부터 야라족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그다음 만나게 되는 긴 머리를 풀어 헤친, 몸을 많이 가리지 않은 여성의 몸들을 만나는 건 앞의 장면과 대조적이어서 꽤 생경하다. 이 작품 전반에서 확인한 것이지만 매우 강력해 보이는 ‘몸성’이 너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건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이해되기까지 불쾌감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오~ 그런데 이 종족은 게다가 뭔가 통제 불가능한, 제멋대로인, 고장난 인간처럼 보인다. 여태껏 영화를 통해 만난 상상의 종족들을 통해 교육된 때문인지 보통 인간 보다 영적이고, 자연과 하나되는 능력을 가진, 지금의 인류와는 긍정적 의미에서 ‘다른’ 것에 익숙했다면 그 예상은 산산조각 난다. 이런 몇 번의 작은 불쾌감들에 노출된 채로 꽤 시간이 흐른다.



주목댄스씨어터 〈YARAS〉 ⓒ옥상훈



초반에 그들이 화려한 꽃 무늬의 각기 다른 가운(의상 배경술)을 걸치고 맨몸으로 여성성을 한껏 드러낼 준비를 하는 것 같이 보이는 장면부터는 남자들도 같은 의상을 걸치고 있었지만 수적 열세로 여성이 지배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상당히 강한 성적 코드들이 작동되기 시작한다. 난 사실 그런 흐름이 시작되고 나서는 ‘야라족’에 대해서는 까먹었다. 누군가 얘기한 것처럼, ‘먹이’와 관련된 것과 ‘성’과 관련된 것은 우리의 진화를 지배해 왔기에 그 앞에서 우리는 이성이 아닌 감각을 사용하게 된다. 그 이후는 야라족에 대한 상상은 멈추었고, 그들의 행위를 체험할 뿐이다.



  

주목댄스씨어터 〈YARAS〉 ⓒ옥상훈



다짜고짜 시작된 야라족의 드러냄은 한편으론 군더더기 없이 본론을 시작하고 관객을 준비 없이, 머리 쓰지 않고 체험하도록 이끈 깔끔한 전개로 보인다. 이 작품의 강력한 미덕이라면 미덕이랄 수도 있는 지점인데, 서론에서 젠틀하게 관객을 이끈 것과는 대조적인 준비할 틈을 안 주는 급발진으로 야라족과 어색할 틈을 주지 않는 것, 서스럼없는 모습을 직면하게 해서 관객이 이 상황을 각자 스스로 수습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리고 작품의 호흡이 조금 느려진 후에 알게 되는 것은 그들의 디데일이다. 온몸이 어류나 파충류 같아 보이기도 하다는 것(바디 페인팅을 통해)과 위협적 변장을 한 원시부족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 등. 어쨌든 그들이 있는 곳에 로봇새가 날아들고, 로봇새이기에 갑자기 곤두박질 치기도 하는-스스로 본성을 포기하는 황당함. 온갖 동물적 행위와 토하기로 벽을 흔들거나, 트름 소리로 끝없이 온갖 추한 즉, 현재 인류 문명으로 본다면 추하기 짝이 없는 여러 모습을 문명을 거스르며 쭉 보여준다.



주목댄스씨어터 〈YARAS〉 ⓒ옥상훈



관객과 ‘게임’하기

작품의 서두에 적당한 상상력을 동원하게 하면서 세련되고 능란하게 관객을 리드한 것, 이어 급작스럽게 성적 코드를 작동시켜 무장해제 시킨 것은 게임의 법칙으로 본다면 작가는 게임의 주도권을 아주 잘 낚아챘다. ‘원치 않는 상태’로 유사 포르노를 보는 느낌을 갖게 하여 불쾌감을 주는 것까지 계산된 거라면, 관객은 급히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 했고, 그런 상황에서 관객 ‘집단’은 해체되었다. 선택은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 떨어지고 개인은 이 게임에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지를 어떤 식으로든 선택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고 이 힘은 작품이 중반을 넘어갈 때까지 쭉 이어진다. 다시 말해 이성이 작동하여 ‘야라족이 뭐 라는 거야’하는 질문을 떠올릴 때가 되면 작품은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고 이어지는 건 이 이야기는 동화가 아니라는 것, 낭만이 아니라 ‘미래 종족 느와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거침없이 몸을 비틀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맞는다.





주목댄스씨어터 〈YARAS〉 ⓒ옥상훈



이 작품은 강하게 퍼포먼스 성향을 갖는다. 상상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건이고, 사건성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무대예술로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작가 정훈목은 고민을 꼼꼼히 하고 협력 예술가들(미디어 아트/VRUNCH, 사운드에디팅/서주원, 무대디자인/조일경)과 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친 것 같아 보인다. 1년 프로젝트에 속하는 ‘창작산실’의 장점을 잘 활용한 것 같고, 작품의 완성도, 흐르는 힘 등에서는 오랜만에 만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주목댄스씨어터 〈YARAS〉 ⓒ옥상훈



그러나 한편으론 수행성(퍼포먼스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몇가지 능란함과 몇가지 부족함이 강하게 대비된다. 능란함과 부족함의 극단적 차이 또한 관객에게 혼란을 주는 요인이기도 했다. 수행성 관점에서 능란함은 ‘사건’을 관객의 예상을 엎어버리거나 빗겨나며 잘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회 포맷을 만든 것, 청천벽력과 더불은 ‘기습 키스’, 느닷없는 몸의 드러냄으로 ‘몸성’을 극대화 시킨 것 등의 장면은 영화와 상대가 안될 정도로 서사에 약한 춤공연에 관객이 적당한 상상력을 동원하고, 연상작용을 일으킬 충분한 근거와 시간을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능란한 지점이었다. 게다가 적절한 완급의 조절, 그들 행위의 고조를 통한 은근하게 사건을 형성해 가는 흐름으로 관객과의 게임에서 한번도 물러나지 않은 점 등은 관객에게 신뢰를 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점 덕분에 관객과의 게임에서 승기를 잡았다.



  

주목댄스씨어터 〈YARAS〉 ⓒ옥상훈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서 늘어지는 느낌을 주었던, 갑자기 서정적 톤의 음악과 신파적 분위기를 만들고 한 여자 퍼포머가 가야금의 줄 지지대를 널부러진 야라들의 몸 위에 놔주는 부분과 가야금 연주 부분은 관객에게 충분히 집에 갈 준비를 하는 시간을 준 것처럼 매우 느슨했다. 떨어진 긴장감은 관객에게 이 작품의 의미를 생성할 시간을 줬다기보다는 이 작품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해버렸다.

동물성을 보여주는 여러 방법이 있을텐데 어떤 정신줄 놓은 모습만으로 장시간을 끌고 간 점 역시 이 작품의 약점이고, 그것 때문에 트랜스 휴머니즘의 세계로 관객을 리드할 시간을 뺏긴 것도 아쉽다. 이성을 잃게 했으면, 이성을 찾게 만드는 것도 능히 할 수 있을 거 같다. 허나 이번 작품에서 그 부분은 약했고 그것이 작품성 약화를 가져왔다. 다시 챙긴 이성으로 그 뒤에 비틀거리며 극장을 나오며 이 작품의 의미를 생성하는 건 관객의 몫인데 극장을 멀쩡히 걸어나올 수 있었으니까...



주목댄스씨어터 〈YARAS〉 ⓒ옥상훈



그럼에도 새로운 형식의 등장치고는 매우 성공적인 운항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문화적 터부를 잘 넘어서 몸을 던진 10명의 퍼포머들의 놀라운 능력도 관객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고, 그 얘기는 곧 퍼포머 역시 관객과의 게임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후반부 빼고는 작품이 관객의 호흡을 계속 붙잡고 리드했다는 것도 무용공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훈목 안무가가 관객을 파트너로 인식하고 완급과 몸성과 사건과 매체적 충격을 정교하게 배열하여 관객과 함께 가는 것, 관객과 게임하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든다. 앞으로의 많은 춤공연이 극장의 수많은 능력을 가지고 관객과의 고도의 게임을 하고, 관객과 더불어 생성하고 이성, 감성을 다 동원하여 어떤 사건을 만드는 일이 되길 바란다.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4. 2.
사진제공_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