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순헌무용단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
몰입형 컨텐츠라 하기엔 무색한 장치와 컨셉의 부조화
김혜라_춤비평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사업은 창작의 조건과 환경이 타지원사업에 비해 시스템이 체계적이다. 합리적인 예산을 제공하고, 서류심사에서부터 프레젠테이션과 인터뷰를 거쳐 실연심의까지 3단계를 거쳐 선정된다. 제작 기간도 거의 1년이 소요되니 장작자의 예술적 지향점과 철학이 깃든 완성도 있는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따라서 타지원 사업에 비해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게 된다. 2023 신작으로 현대춤 4편, 발레 1편 그리고 한국춤 1편이 선정되었다. 유일한 한국 창작춤인 차수정감독이 이끄는 순헌무용단의 〈반가: 만인의 사유지〉(3.1~3.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는 호기롭게 최근 주목받는 몰입형 컨텐츠 방식을 선택했으나, 표면적인 장치와 설익은 컨셉으로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작품이었다.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모티프가 된 작품은 종교적인 맥락보다 관람자가 불상의 아우라에서 치유의 시간을 갖길 의도한 작품이다. 반가(半跏, 한쪽다리를 구부려 한쪽다리에 올려 놓는 자세)의 자세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반가사유상의 미학적 의미를 되짚어 오늘의 시간에서 공감할 수 있게 이동하며 감각하는 공연방식이다. 대상과 한 발치 떨어져서 관조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해탈(해방)의 분위기를 체험하자는 취지이다. 그렇다면 관객 저마다 내적 고요의 시간과 쉼의 공간이 되도록 작품은 유용했을까?





ⓒ 순헌무용단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 ⓒ2023창작산실/옥상훈



고대 제사장이 신과 가교 역할을 하듯, 극장 로비에서 제의가 시작된다. 2층 계단에서부터 터를 닦으며 상서러운 기운을 모아 춤꾼들은 로비 중앙으로 행렬한다. 리더를 주축으로 반가사유상 포스터 앞에서 원무와 열을 맞춰 추앙 의식이 치러진다. 불상의 고졸한 미소와 함께 펼쳐지는 일련의 행위는 부처 곁으로 내지는 깨달음으로 가는 여정으로 읽혔다. 제의성이 짙은 퍼포먼스를 음미하기도 잠시, 비장한 결기를 보인 춤꾼들은 다소 의아하게 극장 안내원으로 역할을 달리한다. “자유롭게 만지고 사진도 찍으라” 안내하며 관객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따라서 애써 조성했던 상징적인 분위기가 허무하게 증발되어 버린다.





ⓒ 순헌무용단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 ⓒ2023창작산실/옥상훈



반가사유상 사진이 전시된 장소부터 소망볼에 소원을 기입하는 이벤트까지 여러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무대 뒤편에 마련한 장소에 들어서면 거문고 연주자(음악의 역할이 미비하다)와 천장에 매달린 모빌 같은 돌과 흙이 전시되어 있다. 오브제와 연주자 그리고 춤꾼까지 일렬로 자리해 있고, 또 다른 장소에서도 심연의 바다 영상을 배경으로 춤꾼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자유로운 관람을 권유하나 상대와 관객과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어 쌍방향의 교감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새로운 장소마다 관객이 개입할(경험할) 수 있는 장치나 유연함이 없어 퍼포머들의 행위가 전시물처럼 대상화 되어 보여 불편했다. 퍼포머와 관객이 상호작용을 할만한 비좁은 공간의 제약도 물론 있었다. 그럼에도 공간(장소)만의 특별한 분위기나 서사가 있어야 빠져들 수 있을 텐데, 무던한 전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입장한 체험형 공간이라 하기엔 테마와 장치의 연계성이 작위적이다.

불멸의 침상, 유리알 욕조, 무한의 요람, 눈 먼 이들의 만찬, N개의 반가 섹션으로 나눈 프로그램에는 존중, 바람, 흙, 물이란 인류의 기원 내지는 원소와의 유기성을 강조한다. 각 장소마다 흙, 물, 생명, 순환성 같은 메타포가 있으나 퍼즐을 맞추듯이 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따라서 컨셉과 장소적 맥락을 짚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저 무대 뒤 금단의 구역을 오픈하여 접근성을 허용한 초보자를 위한 체험용 전시란 인상을 감추기 어려웠다. 인터랙티브를 지향하나 오히려 불상의 그윽한 정신 세계로 진입하는 데 방해가 된다. 현란한 프로그램 문구가 뜬구름 잡듯 무색하다.





ⓒ 순헌무용단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 ⓒ2023창작산실/옥상훈



무대 중앙 편편한 물 웅덩이에서 춤을 추는 댄서를 객석이 아닌 가까이서 보는 것이 혹자에겐 신기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빗장을 걷어내고 거리가 좁혀진 감상이 감각을 깨워 사유(지)로 이끄는 데 유용했을 지는 잘 모르겠다. 무용수들 춤을 보며 관객 스스로 “작품 속에 함께 있다”라는 지각적 경험으로 연계되었을 지 말이다. 게다가 이어지는 유리알 욕조 섹션은 마치 SNS 핫 스팟처럼 사진을 찍기 적절하게 마련한 장치로만 읽힐 뿐이었다. 여러모로 생각해 봐도 발상과 장치의 조악함으로 가볍게 소비되는 이벤트성 힐링 공간에 가까웠다. 고등학생들도 꽤나 보였는 데, 이들의 눈높이와 취향을 저격했을 수도 있겠다. 전통적인 프로시니엄 무대 공연과는 달리 몰입형(Immersive) 퍼포먼스에서 종종 발견되는 관객참여 그 자체에만 목적을 둔 일차원적 흥미 위주의 함정에 작품이 빠져버려 아쉽다.





ⓒ 순헌무용단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 ⓒ2023창작산실/옥상훈



〈반가: 만인의 사유지〉는 관객이 선택권을 갖고 적극적인 참여와 동화로 새로운 인식적 경험을 지향하는 이머시브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설마 무용수와 사진을 찍고 오브제를 가까이서 보는 것이 관객에게 권한과 선택적 자유를 부여한 상호 간 체험이라 단순하게 여기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지각과 감각적 호기심을 깨워 몰입감을 강화시키는 장소 특정형 작업은 아니었다.





ⓒ 순헌무용단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 ⓒ2023창작산실/옥상훈



몰입형 콘텐츠로 경험을 지향하는 작품들이 연극을 비롯한 타장르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차수정 감독과 이영일 연출가가 이와 유사한 공연 형식(이머시브 장소기반 특성이라 해야 할 지?)을 차용하여 한국 창작춤의 활로를 찾으려는 형식적 시도는 고무적이다. 무대 중앙 이외의 극장 주변부 공간(이미지)을 다각적으로 구성해 관념의 세계로 수렴하고 확장해 보려는 취지도 동감할 수 있다. 도전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답답한 전시 공간을 벗어나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통상적인 춤으로 꾸려진 30여분의 공연이 이 작품의 컨셉과는 상대적으로 어울렸다. 다시 말해 더 몰입(immersion)이 되었다. N개의 사유지대를 상징하는 물위에서 결과 색을 달리하며 ‘격정 속 고요’를 향해 에너지를 집중하는 몸과 움직임으로 말이다. 상투적인 춤조합도 있었으나, 욕망과 의지를 태우고 비워내는 춤적 여정이자 탐험에 가까웠다.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최순우, 미술사학자)이 있는 반가사유상을 통해 ‘일상 속 성화’에 대한 성찰보다, 트렌드에만 몰두한 작업방식이 이 작품으로 하여금 방향을 잃게 했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이며, 중앙대에 출강 중이다.​

2024. 3.
사진제공_2023창작산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