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 〈a dark room〉
불안한 나를 들여다보는 프리즘, ‘어두운 방’
김혜라_춤비평가

창작산실 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의 〈a dark room〉(2 .2~4,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어두운 방’은 나(최진한)를 들여다보는 프리즘이다. 이 작품은 통상적인 어두움의 이미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일상에서 떠밀려 움직이고 목적없이 휩쓸리는 익명의 무리로 나를 숨기고 화려한 가면으로 가렸기 때문이다. 마음의 공간인 사적인 방, 갈등과 불안을 에둘러 표현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겪는 일이기에 내적인 동조를 하게 된다. 전작(〈평안하게 하라〉)에서도 최진한은 불안의 심리를 극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표현했고, 젠더의 경계를 넘나들며 직설적이고 개성 있는 춤과 안무를 선보여왔다. 그에 반해 신작은 비교적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무덤하게 묘사하며, 안개 속 같은 무의식과 현실을 오가며 ‘어두운 방’을 탐색한다.



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 〈a dark room〉 ⓒ2023창작산실/류진욱



무의식과 현실 공간의 경계에 선

감각적이고 역설적인 코드가 많았던 이전 작업과는 다르게 최진한의 안무 방식에 변화가 감지된다. 보기에 따라 작품이 밋밋하여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띄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특히나 퍼포먼스 성향이 강해지는 요즈음에 오히려 최진한은 단조로운 움직임 변주(variation)와 영상으로 동어반복 할 뿐 자극적인 표현이 많이 자제되어 있다. 그저 무의식과 의식의 방을 오가며 스스로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읽혔다. 그렇기에 자신을 탐색하는 메타인지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창작의 과정이나, 관객과의 보편적인 의미 공유에는 다소 소극적이다. 자연스럽게 우리 감성의 문을 열어 젖히는 작업 방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한 시간 내내 추상과 연상을 배회하는 이미지를 해석해야 한다. 자의적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행위가 컨템퍼러리 예술의 묘미이나 여러모로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작품을 전반적으로 살펴보자.





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 〈a dark room〉 ⓒ2023창작산실/류진욱



〈a dark room〉에서 최진한은 미디어를 활용한 영상에 힘을 주고 있다. 눈을 사로잡는 색감과 영상 이미지가 소극장 삼면을 에워싸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과 생산능력?을 증진시킨 물체들 (카세트테이프, 운동화, 아날로그 전화기, 큐브, 흑색 TV, 잠수함, 조각상, 파손된 철제 구조물)이 대형 스크린판에서 부유한다. 형광 블루와 핑크 빛으로 온 몸을 감싼 의상을 입은 댄서들은 마치 이미지에 포획되어 꿈틀거리는 신원불명의 생명체와 유사하다. 댄서와 뒤섞여 있는 사물의 연관성을 수수께끼 풀듯이 해독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성별의 구분도 개성도 없는 댄서들이 그저 모이고 흩어지는 형상에서 아마도 무의식 공간에서 헤매는 자신(최진한)을 표현하지 싶었다.





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 〈a dark room〉 ⓒ2023창작산실/류진욱



관계의 단절, 경직된 사회

기술의 발전으로 현대사회는 편리하나 개인의 경쟁과 소외를 부추기듯, 7명의 댄서들은(주하영, 최원석, 김정수, 손정현, 조연희, 주성진, 최진한) 질서정연하게 단순한 방향전환과 동작들의 베리에이션으로 자의식과는 무관해 보이는 관성적인 움직임이 이 작품의 주요 동작체계이다. 규칙과 반복적인 기계적인 동작이나 얼굴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에서 건조한 관계라 짐작하게 된다. 메스게임처럼 적당히 분위기에 밀려 줄을 맞추고 경직된 동작에 동참하는 일련의 행위에서 교감없이 그럭저럭 관계가 형성된다. 함께 걷고 있으나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는, 이를테면 목적 의식이나 자기 결정권이 상실된 군상처럼 뻔하지만 현실의 단면을 옮겨 놓아 부정할 수 없다.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단절된 관계와 현대인의 내적 본성이 충돌되는 상황을 제시한다. ‘나를 보는 나’와 ‘타자가 보는 나’(주체적 자아와 객체적 자아)가 중첩되어 펼쳐진다.





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 〈a dark room〉 ⓒ2023창작산실/류진욱



불안의 징조, 현대인이 감내해야 하는 공허

잿빛 배경과 명암으로 고독해진 시공간에서 댄서는 취약한 자신과 마주하는 듯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무리들의 행동은 과하게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물론 몸 선을 강조한 포즈라 하더라도 어떤 성적 어필이나 자기 과시는 아니다. 기습적으로 남녀의 애정행각이 그나마 욕구를 분출하여 숨통을 트이게 하지만 전체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장치는 여전히 없다. 따라서 엉키고 겹쳐진 몸들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아 무미건조하다. 식당에서 잡담하는 소리와 접시가 부딪치는 일상의 소리가 리듬이 된다. 적당히 시끄럽지만 친숙한 공간에서 불현듯 엄습한 불안의 징조는 나(개인)를 더욱 고립되게 하며 어두운 곳(방)으로 침잠하게 한다. 영상에서 제시하는 몇 십 개의 눈동자는 일종의 감시자로 개인을 더욱 올가미처럼 방구석으로 밀어 넣는 인상이다. 소리 없는 고문이자 두려움으로 불안의 배후이다. 불안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으로 와 닿았다.



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 〈a dark room〉 ⓒ2023창작산실/류진욱



출구가 보이지 않던 내밀한 공간의 문이 열리고 정체성이 모호했던 댄서가 한 명씩 무대를 빠져나간다. 이제까지 전개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한 대상화된 자아를 표현하는 입장이었다면, ‘본성의 나’와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초대형 미디어 전시장에서 봄 직한 파도가 치는 망망대해 앞에 홀로 서 있는 댄서는 당장 사라져도 누구 하나도 꿈적하지 않을 만큼 미약한 존재로 보인다. 물방울이 부딪혀 사라지듯 유령 같은(유령의 형상으로 표현한) 자신을 들여다본다. 이 모습이 안무가가 말하는 나와 오롯이 대면하는 두렵지만 동시에 편안한 ‘어두운 방’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인가 싶더니 다시 익숙하고 친숙한 현실 공간으로 돌아간다. 반짝이는 장신구와 옷을 갖춰 입은 댄서들이 여전히 제자리에서 맴돌 뿐 한 발작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마네킹처럼 경직되어 살고 있는 나 일수도 혹은 낯선 타자일수도 있겠다. 그 무엇이든 일상에서 유리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내적 공허함을 시사한다.





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 〈a dark room〉 ⓒ2023창작산실/류진욱



나를 보이며 대화의 물꼬를 열다

〈a dark room〉은 통상적으로 신작에 기대하는 형식적 실험이나 사유를 확장하게 하는 스타일의 작업은 아니다. (물론 모든 신작이 실험적이고 감각적이어만 하는 것은 아니고, 저마다 나름 존재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며칠 간 작품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은 이유로, 안무자의 고민이 우리가 쉬이 말할 수 없는 일상에서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품 저변에는 나약함과 불안을 들키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진한은 지속적으로 자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내적 불안에 대한 문제를 붙잡고 자아의 정체성을 캐물어 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어쭙잖은 답을 내기 보다는 갈등의 경계선상에 선 자신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불안 속에서 반문하고 흔들리지만 자아를 마주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모름지기 자신과 대면하지 않고서 어떤 깨우침과 해방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따라서 우리(관객)는 그의 솔직한 대화에 동참하며 각자의 방을 반추해 볼 여지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똑똑! 당신의 불안한 ‘어두운 방’은 어떠한지?” 나지막하게 대화를 건네는 작품이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이며, 중앙대에 출강 중이다.​

2024. 3.
사진제공_2023창작산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류진욱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