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블린파티 〈팝니다〉
확장되는 놀이판의 득템
김채현_춤비평가

컨템퍼러리댄스 단체 고블린파티가 공연으로 세일을 벌였다. 공연작은 〈Sale: 팝니다〉(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3. 29~30.). 고블린파티 이름이 도깨비 정당, 도깨비 잔치로 풀이되듯이 도깨비를 자처하는 그들이 세일을 펼치는 도깨비시장. 흔히들 도깨비시장에서는 득템이 드물지 않다 하는데, 〈Sale: 팝니다〉에서 만날 득템은 무엇일까.



고블린파티 〈팝니다〉 ⓒ고블린파티



2016년에 초연한 〈옛날 옛적에〉에서 고블린파티는 상투 틀고 갓 쓴 한량들이 너스레로 노닥거리며 익살 떠는 순간들을 펼쳐나갔다. 그 전부터로 치면 근 10년 동안 고블린파티는 놀이에 착안하여 춤을 구성하는 독특한 방식을 지속하였고, 2년 전 봄의 〈신선〉(神仙)에서도 개다리소반을 갖고 전개하는 놀음이 공연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 바 있다.



고블린파티 〈팝니다〉 ⓒ고블린파티



〈세일: 팝니다〉는 임진호, 지경민, 이경구, 세 사람의 공동 안무작이다. 이 공연장 로비에는 하모닉 파이프, 광선검, 엿가위, 공연에 사용된 음악의 USB, 손모형손목각인형, 버드 휘슬이 차려진 판매대가 있고 가격이 명기되어 있었다. 가격들은 무려(?) 100만원을 상회하고 대부분 ‘네고 가능’이라는 단서가 달렸다. 공연에서 이들 품목은 소도구로 쓰였다. 실제 공연에 쓰인 그것들을 판매한다면 일반 상품이 아니라 예술의 일부분을 파는 것일 터여서, 가격 책정이 무리하다고 예단할 일은 아니다. 실제 공연에 쓰인 것들이 판매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판매되었다면 한 자락의 해석을 유발할 드문 사례가 될 듯하다.



고블린파티 〈팝니다〉 ⓒ고블린파티



공연은 생음악 반주로 전개된다. 무대 왼쪽에 무수한 악기가 배치되거나 매달린 퍼커션이 위치하고 오른쪽에는 가야금이 한 대 놓였다. 〈세일: 팝니다〉에서는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이 질척대지 않고 물 흐르듯 전개된 덕분일 것이다.



고블린파티 〈팝니다〉 ⓒ고블린파티



공연 도입부에서 바닥에 놓인 빨간색의 플라스틱 파이프를 집어들고 지경민과 임진호가 놀이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두 출연자는 50센티가량 길이의 파이프를 2개씩 갖고 주거니 받거니 놀이에 몰두하였다. 그 놀이라는 것은 플라스틱 파이프를 갖고 몸으로 놀아본다는 식으로 놀이의 범위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놀이의 순서까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두 출연자가 각자 파이프를 갖고 하는 놀이는 휘두르기를 기본으로 저마다 줄넘기를 넘는 동작을 비롯 여러가지 동작으로 뜀박질을 하다가 연풍대 비슷한 것을 돌고 상모돌리기, 누워서 구르기를 하고 입으로 물기도 한다. 둘이서 함께 등을 맞대거나 접촉하면서 상대방에게 파이프를 주고받는 등의 묘기를 자주 연출하였다. 그리고 파이프를 휘두르면 윙윙 소리가 들리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것이 어떤 귀착점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고블린파티 〈팝니다〉 ⓒ고블린파티



그러다 갑자기 “코끼리는 평균 10살부터 출산할 수 있다... 새끼는 태어난 지 한 시간도 안 돼 걸을 수 있다. 아기 코끼리는 3~4개월 지나면 풀을 먹기 시작한다”는 내용의 내레이션이 들리고, 두 출연자는 파이프를 한 조각씩 머리와 꽁무니에 갖다대어 (아기) 코끼리 모습을 모사하고선 바닥을 어슬렁댄다. 그런 와중에 심산유곡의 무사 같은 인상을 주는 이경구가 긴 칼을 휘두르며 등장하여 코끼리 파이프를 절단하는 동작에 이어 파이프를 내던지고 두 출연자는 황급히 쫓겨난다. 여기서 생태계를 짓밟는 인간의 폭력을 연상한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고블린파티 〈팝니다〉 ⓒ고블린파티



놀이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규칙 속의 비연속성’에 힘입어 고블린파티는 공연을 자유롭게 전개하였다. 이경구가 장검을 휘두르자 별안간 목제의 손모형관절각인형이 툭 떨어진다. 또 세 사람이 장검을 휘두르는 무사로 등장하고 장검이 광선검(光線劍)으로 돌변한다. 공연 도중에 연주자를 향해 검을 겨누면 그들이 쓰러지는 시늉을 하는 부분도 여럿 삽입된다. 세 무사는 맞붙어 싸우다 모두 쓰러지고 자멸하였다. 죽은 그들을 살린 것은 대북이었다. 이 대북이란 것은 재질이 가죽이 아니라 투명 플라스틱인 서양의 대형 베이스 드럼이다. 대북을 점차 우렁차게 쳐대자 3인의 무사 모두 되살아나서 신명에 찬 난무를 이어간다. 이 와중에 임진호는 엿가위를 이리저리 놀리며 전신의 움직임으로써 엑스터시의 경지를 고조시켜간다. 여기서 이탈한 이경구는 가슴팍에 좌판을 둘러매고 등장하여 ‘카라멜 사시오’ ‘병아리 사시오’ 하며 고객을 불렀고 관객들은 조그만 장난감 버드휘슬을 돈내고 사는 반응을 보였다.



고블린파티 〈팝니다〉 ⓒ고블린파티



〈옛날 옛적에〉의 쥘부채와 사물북, 〈신선〉의 개다리소반 그리고 〈꼭두각시〉의 인체골격모형이 그랬던 것처럼, 〈세일: 팝니다〉에서 하모닉 파이프, 광선검, 엿가위의 활용도는 꽤 높았다. 소도구, 즉 사물과 일체를 이루면서 춤을 열어가는 고블린파티의 개성이 재확인된다. 놀이 식의 뜬금없는 비연속성은 환상과 통하는 바가 있고 놀이 자체는 익살을 촉진한다. 〈세일: 팝니다〉에서 고블린파티 류의 놀이는 더 확장되었다.



고블린파티 〈팝니다〉 ⓒ고블린파티



하모닉 파이프와 광선검 부분에서는 〈세일: 팝니다〉가 이전작들에 비하여 아동청소년들의 놀이 심성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 들었다. 놀이에 끌리는 마인드는 세대를 불문하고 보편적이자 원초적이다. 인류에게 놀이는 그만큼 파워가 세다. 아동청소년의 놀이는 성인의 놀이보다 비연속성이 개입할 여지가 훨씬 높은 때문에 성인들에게 환상의 세계를 더 자유롭게 열어주는 속성이 있다. 또한 놀이를 놀아가는 공연에 대해 놀이는 더 파워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놀이가 확장되면 공연에선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덧붙여, 짤막한 순간들이긴 하나 장검 같은 소도구들로 연주자들을 쓰러뜨리고 깨우고 연주자들이 자기들대로 리드미컬한 흥을 통해 서로 호흡을 맞춰나가는 부분도 공연의 놀이 분위기를 돋우는 데 일조하였다. 춤계 공연들을 보면 출연자와 연주자가 물리적으로 물과 기름 같은 관계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고블린파티 〈팝니다〉 ⓒ고블린파티



버드휘슬을 팔고 사는 맨끝 부분에서는 이머시브 공연의 소지가 보였다. 다만 이머시브 공연에 속하려면 관객의 역할이 더 있어야 할 것이다. 놀이의 비연속성을 자유롭게 원용할 수 있으므로 공연에서 관객의 역할을 추가하는 것은 무리하지 않은 일로 보인다. 가령 판매하려는 물품에 대해 공연 도중에 가볍게 옥션을 진행하는 절차 등을 다양하게 고려할 수 있겠다. 공연에서 버드휘슬을 관객과 팔고 사는 부분이 설정되었다. 그런 때문에 작품 소재로서의 세일을 부각시키는 차원에서 굳이 옥션이 아니더라도 출연자가 세일에 적극 나서고 관객과 거래를 진행하는 순간들을 더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러한 과정에서 작품의 여운이 분산될 우려도 없지 않을 터여서 과도한 상상은 금물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4. 4.
사진제공_고블린파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