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강선영 탄생 100년
한성준 전통춤의 한 맥을 잇는 사도(師道)를 열다
김영희_전통춤이론가

강선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명가(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 공연이 4월 14일에 예악당 무대에서 화려하게 올려졌다. 강선영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회장 조흥동)가 주관했고, (사)강선영춤전승원(이사장 양성옥)이 주최했으며, 강선영 명무의 제자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조흥동이 총연출로 지휘했고, 한예종 전통원의 김덕수 명예교수가 음악감독으로 연주했다.

명가 강선영(1925~2016)은 근대 시기에 전통춤 무대화를 이끈 한성준(1874~1941)의 제자로, 한영숙(1920~1990)과 함께 한성준의 춤맥을 이어서 21세기 초까지 주요 작품들을 전승하셨다. 한성준이 1937년에 조직한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무대에서 춤추었던 작품들을 공연하고 교육했을 뿐 아니라, 정계에도 참여하여 춤계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선영 선생은 〈태평무〉를 국가무형문화재 92호(1988)로 지정케 하는 역할을 하셨으며, 이현자(1936~2020, 태평무 예능보유자), 이명자(태평무 예능보유자), 조흥동(춤극 한량무 예능보유자), 고선아(춤극 한량무 예능보유자), 양성옥(태평무 예능보유자), 김근희(경기검무 예능보유자), 이화숙(사단법인 우리춤협회 이사장), 김미란(서울경기춤연구회 이사장), 김정학(전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 등 기라성같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이번 공연은 2005년과 2013년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쳤던 같은 제목의 ‘강선영 불멸의 춤’ 공연과 닿아 있다. 2013년의 프로그램은 〈신선무〉, 〈승무〉, 〈장고춤〉, 〈경기검무〉, 〈무당춤〉, 〈즉흥무〉, 〈한량무〉, 〈훈령무〉, 〈살풀이춤〉, 〈황진이〉, 〈태평무〉였다. 강선영 선생의 살아생전 무대였으므로, 한성준으로부터 계승한 춤들과 선생의 대표작들도 선보였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스승 한성준으로부터 전승된 작품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명가(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 〈신선무〉 ⓒ강선영춤전승원



첫 프로그램인 〈신선무〉에서 조흥동이 신선으로, 윤종현과 임윤수가 학으로 춤추었다. 한성준이 학춤을 추기 위해 학을 관찰했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조선음악무용연구회(1937~1941) 공연에서 〈신선악(神仙樂)〉 또는 〈사호락유(四皓樂遊)〉가 추어졌었다. 또는 어른 학과 어린 학 두 마리가 추었던 〈학무〉라는 춤도 있었다. 신선(神仙)과 학(鶴)은 조선시대 이래로 민간에서 널리 소통되던 도가(道家)적 컨텐츠였으며, 한성준이 이를 바탕으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 별로 추어지지 않고 있다. 이전에 올린 강선영 선생의 공연에서 추었던 〈신선무〉에 비해 출연자가 간략해졌지만, 그래도 핵심은 유지되었다. 신선을 춤춘 조흥동은 학들을 놀리며 유유자적 흐르다가 어김없이 맺은 후에는 다시 흘러갔다. 〈신선무〉는 그 배경과 관련 텍스트들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귀한 춤 유산이다.



명가(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 〈승무〉 ⓒ강선영춤전승원



이 공연에서 춤춘 〈승무〉는 한성준에게 배운 승무를 강선영이 정리한 강선영본(本)이다. 여기에 바라춤과 나비춤을 접합하여 볼거리를 확대했다. 선생이 정리한 승무는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고 추는데, 그 이유는 조선음악무용연구회 시절 승무의 경우 바지를 입고 바라승무로 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승무〉 구성에서 결합한 바라춤을 보며 바라승무를 상상했다. 하지만 나비춤은 무대 양쪽 외곽에서만 춤추었으니 적절한 연출이 필요했다.



명가(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 〈살풀이춤〉 ⓒ강선영춤전승원



명가(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 〈한량무〉 ⓒ강선영춤전승원



그리고 중견 제자들인 이화숙, 김나영, 유정숙, 임성옥, 오덕자의 〈살풀이춤〉이 추어졌고, 춤극 〈한량무〉가 이어졌다. 이 춤은 20세기 초까지 추어졌던 〈한량무〉를 한성준이 지도하여 공연했으며, 강선영 선생이 2000년대에 복원하시면서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이날 한량에 김정학, 색시에 윤혜정, 먹중에 김태훈, 주모에 황규선이 춤추었다. 한량과 색시, 먹중의 삼각관계는 상투적이지만, 갈등이 분명하여 관객들의 호응이 높은 종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춤꾼들이 어떻게 추어내고 어떻게 연기하느냐가 이 춤의 관건이다. 한량과의 에피소드를 연기하는 주모 역시 마찬가지이다. 각 인물들의 춤과 연기는 관객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했다.



명가(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 〈즉흥무〉 ⓒ강선영춤전승원



명가(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 〈훈령무〉 ⓒ강선영춤전승원



다음은 김미란 외에 10명의 춤꾼이 작은 수건을 저고리 소매의 배래에 넣어두었다가 꺼내서 추는 〈즉흥무〉를 추었고, 김서량과 손흥원 2인의 〈훈령무〉가 이어졌다. 〈훈령무〉는 한영숙의 지도로 정재만(1948~2014)이 추었고, 송준영도 춘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 춘 〈훈령무〉는 2000년 ‘한성준 선생 그 춤의 재현’에서 강선영이 재현 안무했던 작품을, 다시 재구성했다고 한다. 훈령무가 온전히 구성을 갖추어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각색되거나 군무로 재구성되고 있다. 한성준이 일제강점 말기에 구한말 구군(舊軍) 즉 조선 군사의 훈련 모습을 연상하면서 이 춤을 작품화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명가(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 〈경기검무〉 ⓒ강선영춤전승원



〈경기검무〉는 예능보유자인 김근희와 10명의 춤꾼이 세 개의 대형으로 나누어 춤추었다. 대개 4인이나 8인이 대무(對舞)하는 2열 대형으로 춤추다가 연풍대에서 원형을 만드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대형을 여러 개 만들고, 중앙에서 김근희 예능보유자가 독무를 추었다. 아마도 예악당 무대에 경기검무를 장황하게 펼치기 위해서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명가(明嘉) 강선영 불멸의 춤 〈태평무〉 ⓒ강선영춤전승원



마지막 프로그램은 〈태평무〉였으며, 예능보유자인 양성옥과 이수자 전수자 83명이 장단별로 교차하며 무대를 채웠다. 강선영 선생의 예술적 치적으로서 가장 큰 성과이며, 현재 전통춤계에 막강한 춤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압도적인 규모로 〈태평무〉를 펼쳐낸 것이다. 에필로그로 명가 강선영의 탄생 100년의 의미를 기리는 오지혜의 낭독이 있었다.

강선영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는 이번 공연에서 한성준을 뿌리로 하여 뻗어간 강선영의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강선영 선생이 떠나셨지만, 당신은 전통춤을 잇는 사도(師道)를 평생 일구어 제자들에게 열어놓으셨으니, 그 춤들과 예술사적 의미는 멸하지 않을 것이다. 강선영 선생의 호인 ‘명가(明嘉)’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해와 달이 있어서 밝으며, 아름답고 기쁘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러한 의미는 태평성세를 기원하기 위해 복잡한 장단을 밟고 넘나들면서, 밝고 화려하며 우아한 태(態)와 기운(氣運)을 보여주는 〈태평무〉와 일치하는 듯하다. 전통춤의 맥락을 짚으며 과정 자체가 전승의 현장이었던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

2024. 5.
사진제공_강선영춤전승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