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안나경 〈회향〉
산조춤을 내려받는 희유한 ‘제의’
이지현_춤비평가

극장 하수의 모서리에서 꿈에서처럼 김백봉선생의 산조춤이 되살아난다. 아련하다.

창무 포스트극장 기획(임재이 기획총괄)의 ‘내일을 여는 춤’이 후반으로 고개를 넘을 즈음, 안나경의 〈마음의 노래, 영혼의 속삭임 _ 회향(回鄕)〉의 춤판 (2024. 4. 9-10. 창무 포스트극장)이 벌어졌다.

안나경(김백봉춤보전회 회장)은 조금 낯설 수 있으나 김백봉선생의 차녀 안병헌이 개명을 해 얻은 새로운 이름이다. 게다가 안나경은 이번 공연에서 42분 정도 되는 김백봉선생의 〈청명심수〉(淸明心受) (1974년 ‘산조춤’으로 초연/ 1993년 ‘청명심수’로 집대성 됨)를 원형판으로 무대에 올렸으며, 원형 보전(保全)에 집착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엄마의 삶과 자신의 삶을 연결시키는 중심에 이 춤을 놓고 마치 공식적으로 내림굿을 받듯이 엄마가 가신 1주기를 맞아 엄마의 산조춤을 ‘내려 받았다’.


“피와 춤”으로 이어진 모녀(母女)의 산조춤

내가 이 공연을 보고 처음엔 놀랐으며, 그 감흥은 잔잔히 오래 지속되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인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요란스럽지 않은 공연이었음에도 그 내용과 깊이는 간단치 않아 그 대조에서 오는 혼란과 의미가 여러 번 곱씹게 만든 힘이 있었던 듯싶다. 공연이 요란스럽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특별히 모객에 신경을 쓰지 않은 듯 객석이 붐비지 않고 차분했다는 것이다. 김백봉선생이 세상을 달리하신 1주기를 맞아 선생을 모셔 왔던 딸이 기운을 차려 그저 평범한 행사가 아니라 춤으로 엄마를 기리는 공연을 일종의 제의처럼 한다는 것에 법석을 떨 만도 한데, 공연장은 차분하고 숙연하여 이 공연이 가진 여러 의미를 훼손하지 않아 좋았다.

공연은 굵게 말하자면, 무대에서 안나경의 청명심수가 추어지고 과거 김백봉선생의 춤이 영상으로 투사되면서 때론 동시에, 때론 영상만으로, 때론 춤의 단락 사이에 안나경의 내면 독백과 영상이 들고 나며 마치 한편의 춤극을 보는 것처럼 진행되었다. 나레이터의 대본과 이 작품의 구성은 안나경과 연출과 예술감독을 맡은 임성옥(김백봉부채춤 보존회 회장)이 함께 긴밀하게 의견을 나눠 만들었으며, 선생의 미수(米壽)공연과 아카이브 전시, 다큐 등에서 대본을 썼으며 이후엔 선생의 삶과 춤으로 연극과 영화도 구상하고 있는 안나경의 구성력과 집필력, 김백봉선생의 제자 중 연출력을 인정받은 큰 제자 임성옥의 능력이 모여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개를 보여주었다. 거기에 포스트극장의 벽돌 모서리 공간에서도 영상이 이렇게 보기 좋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성승정의 영상 덕분에 관객은 편안하게 과거와 현재를 오갈 수 있었으며 선생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었다.



안나경 〈마음의 노래, 영혼의 속삭임_회향〉 ⓒ창무 포스트극장



공연은 과거와 현재를 잊기 위해 처음에 나레이터 역할을 하는 이(김지영/김백봉춤보전회 이사)를 등장시킨다. 그녀는 한 손에 노트를 들고 천천히 무대로 걸어 들어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백봉스승님의 안무노트와 안나경의 연구노트를 적어둔 메모지입니다. 작품은 우연히 생겨난 것도 아니며 우리에게 무관심하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계속적으로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회향! 안나경에게 산조춤을 추는 것은 갈등하면서 먼 세월 돌아온 여행이고 춤의 의미를 찾는 여행이라 했습니다”로 시작한다.(작품 큐시트_안나경 제공)

이 첫 나레이션은 관객을 집중시키는 강한 힘을 갖는데, 보는 이에게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로부터 그 대가를 엄마로 둔 안나경이라는 딸에게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이동시킨다. 63년생인 안나경은 태어나고 다음 해 선생은 경희대 교수로 부임했으며, 어린 시절은 집에 유명한 무용가들과 악사 선생님들의 무릎에서 귀여움을 받을 만큼 춤의 세계는 그에게 숨쉬는 공기와 같았다. 그러나 한 때는 춤에서 도망가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자신의 다른 능력을 찾기도 했지만, 춤추는 또래들과의 연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사소한 이유로 돌아온 그녀는 이제는 스승이 된 엄마의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탐구해 들어간다.

그녀가 엄마에게 묻고 또 묻고, 때론 말로, 때론 함께 춤추며, 들어 배우고, 몸으로 배웠던 그 시절(안나경 줌 인터뷰/ 24.4.28.)도 모자라 돌아가고자 하는 곳(회향)은 작품의 후반부에 선생의 산조춤 안무노트의 “예藝에 삶을 걸려고 작심했었다. 그곳에는 스스로 길이 있고, 참이 있으며, 온갖 영예로움이 번뜩이는 생명력과 함께..” 인 그곳인지 모른다. 그리고 작품은 김백봉이라는 등대를 놓치지 않고 그 길을 따라간다.



  

안나경 〈마음의 노래, 영혼의 속삭임_회향〉 ⓒ창무 포스트극장



93년의 〈청명심수〉의 구조는 안나경의 2005년의 논문에 정리된 “작품의 내용 및 구성”(안병헌, 박지영 (2005.08) 〈산조춤 창작기반에 내재된 김백봉의 예술세계〉, 움직임의 철학 : 한국체육철학회지 13권 2호 205-226)에 준하여 도입부, 중추부, 결말부로 크게 나눈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지만, 이번 공연은 4개의 장으로 세분하여 이름을 붙여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도입부는 1장 프롤로그로 명하며 (허망/ 고통과 번뇌/절실한 기도)로, 중추부는 2장 햇살이 주는 선물로 명명하여 진양조(수도)/ 安(중모리)/ 樂(중중모리)/ 僖(굿거리)로, 3장 진리 예술의 길(잦은 굿거리)/ 호수에 비친 내 모습(진양조, 중모리)/ 청명심수(하늘이 주신 거룩하고 귀한 마음)로 장을 나누었다. 그리고 결말부는 4장 영원한 비상 환생(잦은모리, 휘몰이)/ 무념무상/ 회향(진정한 나를 찾는다)로 마지막 부분을 이번 공연의 제목인 회향으로 맺으며 안나경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찾은 것으로 귀결시킨다.



안나경 〈마음의 노래, 영혼의 속삭임_회향〉 ⓒ창무 포스트극장



이 공연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관객이 70년대에서 2024년 현재까지 50여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대(이 작품은 1972년 교통사고 후 부상으로 재기불능이라는 상황에서 개인적 불행을 딛고 일어선 강한 생명력의 예술적 결과로 창작된 작품이나, 춤에 입문한 1942년 동경 소재 최승희무용연구소 입학부터 따지자면 80여년이 되는)를 유영하게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시간성의 폭을 정해놓고 〈청명심수〉의 구조를 흐트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얘기까지 포괄시키는 방식으로, 선생 자신의 예술혼에 대한 모놀로그 형식의 〈청명심수〉를 통째로 오마주했다고 볼 수 있다. 무용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인 이 방식은 오랜 기간 작품을 깊이 이해하고 고민한 것의 힘으로 볼 수 있기에 여느 제자가 하기 힘든 공연이고, “피와 춤으로 이어진”관계에서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또 한 인간의 내면을 기록한 모놀로그이기에 또 다른 예술가도 그 형식에 자신의 고민을 이어 담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안나경 〈마음의 노래, 영혼의 속삭임_회향〉 ⓒ창무 포스트극장



또한 이 공연에서 돋보인 것은 약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시종일관한 정서적 두께감이었는데, 엄마의 안부를 묻는 깊은 정으로, 사고 후의 고뇌와 다시 운명처럼 춤을 추게 되고 그간의 춤공부를 모아 산조 형식으로 집대성하고자 했던 불같은 예술혼을 안나경이 감싸 안으며 자기 치유의 깊이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매우 오래 숙성된 것이어서 정서적 깊이는 있되 동요는 없는 것이어서 관객은 그것에 안정적이고 작위적이지 않은 공감을 일으켰다.


신무용이 원래 이런 거였어?

“나는 우리 선생님의 춤이 춤의 전부라고 생각을 했다. 평양에 있을 때 선생님의 춤에 대해 얘기하면서 어떤 사람이 시골에 있는 무당의 춤 속에 우리 민족의 참 멋이 있다고 말을 하는 걸 들었을 때 저게 무슨 소리인가 했었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 알게 된 것은 월남한 후 우리 전통 춤꾼들에게 춤을 배워 보면서였다. 사실 그 분들에게 춤을 배우게 된 것도 그런 춤의 가치를 알아서도 아니었고 알기 위해서였던 것도 아니었다. 피난 와서 춤출 연습장소도 없고 무대도 없었을 때 길 가다가 귀에 익은 장단이 들려서 들어갔고 그렇게 만난 선생님들이 모두 좋은 춤꾼이었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이고 행운이라면 행운 이지만 내게는 무척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구히서 (2000) 전통에 뿌리를 둔 창작 무용의 개척가, 한국문화예술총집.연극․영화․무용Ⅲ)

안나경 줌 인터뷰에서도 이 얘기를 들으면서 전쟁과 피난이 한반도 북쪽 출신의 이 무용가에게 춤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큰 경험을 하게 했으며, 선생은 그 자산을 알아보고 습득하는 호기를 갖게 되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리고 이번 〈청명심수〉를 보면서 이 작품이 ‘춤언어의 사전’이기를 포부했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신무용 담론에서 선생은 워낙 1세대이고 개척자이기에 흔히 추상적 칭송 일변도이거나 다른 무용가와 엮이기에는 대가여서 개략적 담론에서는 논외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승희의 제자였던 것도 여러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신무용의 좁은 미학적 범주에 갇히기에는 우리춤에 대한 통큰 모색과 창작의 일면이 보인다. 특히 춤언어라는 단어부터 춤예술에 대한 정확한 철학과 이론의 틀이 보이는데 이는 안제승선생의 영향이 컸겠지만, 실제 춤언어에서 최승희에서도 느껴지는 이 시대 무용가들의 안목과 미감의 스케일 큰 것에 감탄하게 된다.



  

안나경 〈마음의 노래, 영혼의 속삭임_회향〉 ⓒ창무 포스트극장



특히 〈청명심수〉에서 성금련 가야금 산조의 구조에 따라 가면서 작품이 예술혼에 대한 각성(예술의 길), 자기성찰(호수에 비친 내모습), 하늘의 뜻을 받는(청명신수_하늘이 주신 거룩하고 귀한 마음)으로 점점 깊어지면서, 보다 격한 감정을 표현하며 ‘언어화’ 되어가는 춤동작들과 그 다음 장면인 동작이 속도를 갖게 되는 ‘환생’ 장면에서 허리를 붉은 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자진몰이와 휘몰이로 몰아치는 동작들은 다분히 민속춤에서 한에서 흥으로의 동작과 구조까지 포함시키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활달하고 거침없는 선생 춤의 특성이 ‘솔직한 성정’과 정신의 깊이까지 가 닿으려는 ‘근원에 대한 추구심’과 만나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춤언어를 사전의 두께로 망라한 것이 〈청명심수〉가 아닐까 한다.

이 춤에 비교하니 지금 추어지는 산조춤을 비롯하여 전통춤이라 불리는 연목들이 10분 정도의 길이로는 감정을 드라마틱하고 세세히 드러낼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의 감정을 담는 해석을 하는 것도 장려되지 않아서 그저 크게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게 추는 것에 초점이 맞춰 있으니 그 춤들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러니 고리타분하고, 고리타분 하니 동시대 감각으로 소통될 수 없고, 감정표현은 단순화되어 있어 유치하게 되기 쉬우며, 그래서 보는 재미도 그닥 없고, 보고 나도 인생에 별 도움이 안되는 자폐적인 춤에 머물기 쉽다.

그래서 더 희안한 느낌이다. 이 옛날 춤에 더 공감이 일어나고 속이 시원한 것이..





안나경 〈마음의 노래, 영혼의 속삭임_회향〉 ⓒ창무 포스트극장




“하나를 위해 춥니다”

선생은 특별히 불교신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불교신자가 아닌 것도 아닌 것이, 불교 배경을 갖고 있는 내가 볼 때 선생은 불교에 인연이 보통인 분은 아니다. 아니 선생의 이번 생에서의 덕은 수많은 생 동안 많은 마음공부와 수행의 결과 보인다.

안나경씨를 통해 들은 경봉스님과의 일화가 역시 그렇다(54년 남한에서의 첫공연을 앞두고 꾼 꿈 얘기도 있으나 그것은 다음 기회에). 초파일 행사에 큰 의지를 갖지 않고 우연히 참석하게 된 선생은 한쪽 구석에서 많은 인파 사이에 앉아 경봉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었다. 법문을 하시던 스님이 선생을 보고 시선을 멈추시더니 “야야 쟤는 뭐꼬?” 하시니 선생은 “춤추는 김백봉입니다” 답했다. 이어 “너는 왜 춤추나?”고 선생을 지목해 질문을 하셨다. 그러니 선생은 “하나를 위해 춥니다”란 말이 그냥 툭 나왔다고 한다. 도인들의 선문답 같다. 선생은 평소에 “작품은 하나의 우주다”라는 말도 자주 하셨다는데 일맥상통한다.

춤추며 얻은 고민과 춤을 가로 막는 생각을 ‘번뇌’로 칭한 것, 청명심수의 맑을 청, 밝을 명 모두 마음을 근원적으로 묘사할 때 쓰는 단어들이고, 호수도 근원적 마음을 호수로 칭하는 비유 역시 불교로부터 왔으며, 거울이나 호수에 자신을 비춰 보는 것 역시 자신에 대한 관찰과 관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불교적 사유방식이다.

선생은 그렇게 무게 잡지 않고, 폼 잡지 않고 막판에는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 ‘기세가 좋은’ 40여 분 짜리 산조춤을 만들어 냈다. 산조 형식의 원래 의미를 춤으로 만들어 삶의 현실과 삶의 초월 모두 담고 그러면서 힘들고 꾀나는 무용가의 생활에서 ‘더러운 마음’을 바라보고, 넘어서 한층 깊은 세계에 가 닿은 듯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춤에 대대로 내려오는 거침없고, 소박하며, 초월적인 성정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춤은 자식과 제자들을 통해 대를 이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깨어남을 주고 있다. 그 춤의 생명력은 그렇게 증명되고 있다.

영상에서 선생이 소녀 같은 얼굴과 낭랑한 목소리로 한 마지막 멘트인 “오늘도 참 좋았어”가 귓가에 맴돈다.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4. 5.
사진제공_창무 포스트극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