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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획 〈텔유어바웃허: 8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 무용〉
이제부터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한석진_무용학자, 큐레이터

스크리닝 전시 〈텔유어바웃허: 8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 무용〉이 2월 15~21일 서울 서교동 소재 복합문화공간 엘리펀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필자가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기획(aPD) 분야에 선정되어 진행한 최종결과물이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차세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단순히 창작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예술인들 간의 네트워킹을 모색하여 현장 파트너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필자가 〈텔유어바웃허〉 전시를 기획하게 된 동기는 한국 페미니즘 무용 지형도 모색이라는 내용적 측면과 무용 전시 큐레이팅이라는 형식적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본 전시는 한국의 현대 무용사에서 여성 또는 젠더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논의 필요성에서 기인하였다. 2017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투 운동이 국내에 확산되기 이전부터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한국 사회 전반에 내재된 여성 혐오 기저 심리와 그것의 발현이 사회문제로 대두하였다. 또한 ‘#OO 내 성폭력‘ 운동을 통해 문화예술계 만연한 성차별, 성폭력 폭로가 잇따랐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 내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이 일어났고 동시대 안무가들의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 역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젠더 역할과 신체 이미지를 드러내는 방식에 도전하고 이분법적 위계질서를 해체하는 등의 안무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사회 전반과 무용계 현장에서의 페미니즘 실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페미니즘 무용 현대 지형도를 파악하려는 담론이 부재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대중과 무용이 만나는 플랫폼이 다양화되고 무용의 지식화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간 기반 라이브 예술로서 무용을 일반적으로 극장에서 접할 수 있는 경험으로만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 무용을 공연, 전시하는 방식의 확장을 위한 무용 큐레이팅에 대한 모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동시에 무용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를 읽어내는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공유함으로써 무용 담론을 활성화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무용작품과 관객, 현장과 이론의 간극을 좁히면서 무용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무용큐레이팅의 결과물로서 본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텔유어바웃허: 8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 무용〉 전시장 외부, 내부 모습   ⓒ한석진




 사실 여성 문제를 다룬 무용 작품들은 이전부터 존재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대 전반에 걸쳐 한국 여성의 시련, 질곡, 희생의 역사를 조명하고 그 속의 가부장적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작품이 다수 등장했었다. 2000년 이후로 페미니즘 무용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작품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으나, 2015년 이후로 양적 증가와 더불어 페미니즘 접근과 해석의 다양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작품들에 대한 1차 자료 정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료 수집 및 정리에 많은 시간 소요가 있었다. 무용잡지, 신문기사, 논문, 공연예술 아카이브 자료에서 여성, 젠더, 가부장, 페미니즘 등의 키워드를 찾아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무용학자 김주희, 윤지현 선생님께서 큰 도움을 주셨다. 또한 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무용계 현장에서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해 오신 김채현 선생님으로부터 수집된 자료에 대한 자문을 받아 자료의 신빙성을 검증받았다.
 위의 자료를 바탕으로 8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 무용을 연대기적과 주제별로 구성하여 소개하였다. 연대표는 한국여성운동사의 주요 사건과 더불어 한국 페미니즘 무용의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이 시기에 가장 두드러진 주제를 네 가지로 분류하였으며, 각 주제별로 2~4개 작품의 공연 실황 영상을 전시 기간 동안 상영하였다.





8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 무용 연대표   ⓒ한석진




 첫 번째 주제는 ‘역경, 희생, 대지의 모성’이었다.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무용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페미니즘적 접근은 모성에 대한 성찰이었다. 이때 모성의 개념은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본질적 능력과 연관되어 위대하고 숭고한 생명의 근원지로 표현되거나,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의 역사와 그로 인한 역경, 희생의 삶을 그려냈다. 상영된 작품은 한상근의 〈꽃신 - 그림자〉(2001)와 박호빈의 〈녹색 전갈의 비밀〉(1998)이었다.
 두 번째 주제는 ‘자각하는 주체’이다. 무용 작품 속 여성은 가부장 사회 속에서 탄압받고 희생된 존재로만 남지 않는다. 남성중심 이데올로기에 도전하고 투쟁하여 자아를 찾아가거나 여성 개인의 실존적 존재에 대해 성찰하고 이해와 연대를 만들어나가는 등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정호의 〈자화상〉(1988)과 〈빨래〉(1994), 장은정의 〈레드〉시리즈가 해당 주제의 작품으로 상영되었다.
 세 번째 주제 ‘전복된 젠더, 섹슈얼리티’는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적극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다. 안무가들은 통제되고 제거되어 왔던 여성의 성적 욕망이나 행위를 전면화하거나 대상화, 도구화된 여성 섹슈얼리티를 탈주하며, 남성과 여성을 규정하는 젠더를 전복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상영작품은 허성임 & 아바토와 페르메의 〈님프〉(2015), 최진한의 〈WOman – 돌을, 던지다〉(2018), 허성임의 〈넛크러셔〉(2019)이었다.
 마지막 주제는 ‘신체, 자궁으로의 탐구’이다. 여성의 신체는 무용의 주매체로서 존재했으나 도구로서 기능하는 것에 머물러 무용 속에서 부재한 상태였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안무가들은 진지한 성찰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여성의 신체, 그리고 더럽고 불결한 것으로 여겨지고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성기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주제에 관한 작품으로 김보라의 〈혼잣말〉(2011)과 〈소무〉(2015), 서영란의 〈버자이나의 죽음〉(2015), 차진엽의 〈미인: MIIN – Body to Body〉(2017)이 상영되었다.




 

8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 무용의 네 가지 주제별 섹션   ⓒ한석진




 전시 기간 동안 상영되는 작품 영상과 별개로 전시장에 배치된 태블릿을 통해 네 명의 안무가, 남정호, 박호빈, 차진엽, 허성임과의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었다. 약 10분간 진행되는 인터뷰 영상에서 안무가들은 본 전시에서 소개되고 있는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창작 배경 및 과정, 관객의 반응, 페미니즘 관점에서 작품의 의미를 설명한다.




안무가 인터뷰 영상 ⓒ한석진




 전시 오프닝 날에는 김보라, 최진한 안무가와 함께하는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되었다. 여성 혹은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개인적 배경,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관심을 가져온 주제 및 그 주제를 다루는 안무방식, 페미니즘과 결부되어 작품 속에서 노출이 가지는 의미, 페미니즘 주제 및 접근이 한국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미치는 영향, 한국 무용계 성차별 및 권력문제 등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라운드테이블 현장   ⓒ한석진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4시간씩 일주일간 전시된 이번 기획은 코로나19라는 국가적 비상상황과 페미니즘과 무용에 대한 영상 전시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형식과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200명가량의 관람객이 방문하여 기대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였다. 하지만 관람객 숫자보다도 의미가 있었던 것은 전시장에서 관람객들과 주고받았던 피드백들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나누었던 이야기는 무용에서 페미니즘이 발현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그동안 부재했으며 이것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 확산이 필요함을 공감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극장 밖에서 무용을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한 것에 대한 갈증이 컸으며 무용 콘텐츠를 공연, 전시할 다양한 플랫폼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무용공연 실황 촬영은 단순히 기록을 위한 부수적 차원의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는 무용 영상을 대중에게 소개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일반적으로 작품의 또 다른 창작물로서 영상 제작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전시에서 상영된 다수의 영상들이 극장에서의 관극과 차별화된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기획자로서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무용(학)계에서의 페미니즘 담론을 환기시키고 무용공연과 아카이브를 경험하는 방식에 있어서 조금은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고 자평하면서 전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으로 예술사 과정을 마친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석사(M.A.) 및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아트테크놀로지학과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대학교, 수원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무용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원예술, 융합예술로 연구분야를 확장하여 몸철학, 매체미학, 퍼포먼스연구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

2020. 3.
사진제공_한석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