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정동극장 〈세실풍류〉 2010년대 이후 컨템포러리한국춤
소품에서 발현된 빼어난 창의성
장광열_춤비평가

아주 드문 경험이었다.

축제 혹은 경연을 표방한 기획 프로그램에서 여러 명 안무가들의 짧은 소품들을 한데 모아 공연할 경우 대부분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이 공존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만들어 내는 평균점은 결국 해당 프로그램의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국립정동극장이 기획한 〈세실풍류〉 일곱번째 프로그램인 ‘2010년대 이후 컨템포러리한국춤’(4월 25일, 국립정동극장 세실) 무대에 선 보인 6개의 소품들은, 모두 국내에서 공연되는 동시대 컨템퍼러리댄스의 평균점을 상회했다.

6명 여성 안무가들이 직접 출연을 겸한 솔로 작품들은 분명한 컨셉 설정, 이를 풀어내는 아이디어의 참신성, 음악과 움직임의 뛰어난 매칭, 오브제를 활용한 메시지 전달과 인상적인 시각적 이미지 들을 구축했고 공통적으로 세밀한 구성력과 뛰어난 창의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무용예술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새로운 움직임 구성에서도 독창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이 선보이는 비슷한 성격의 춤 축제나 안무 경연대회와 비교했을 때 발표자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한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인 데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젊은 안무가들의 작업이 장르의 굴레에서 탈피해 동시대의 컨템포러리댄스로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연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만 놓고 보면 2024년 기억할 만한 기획공연으로 평가될 만하다.



보연 〈율곡〉 ⓒ국립정동극장/옥상훈



보연(Artlab_Boyeon 대표)이 안무한 〈율곡〉은 메마른 나뭇가지를 오브제로 활용한 시각적 비주얼과 정제된 춤의 질감이 만들어낸 창의성이 압권이었다. 당장 국제 춤 시장에 내놓아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는 수작(秀作)으로 그녀의 유연한 몸을 통해 분출된, 완급이 조율된 독창적인 움직임 조합은 공연 내내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 극장예술로서의 무용예술의 본령을 극대화시킨 안무가와 댄서의 예술적 감수성은 평범하지 않았고 탁월했다.



유선후 〈우아한 우주〉 ⓒ국립정동극장/옥상훈



유선후(후댄스컴퍼니 대표)의 〈우아한 우주〉는 대한민국 전통춤의 호흡과 춤사위를 기본으로 한 움직임 변용이 공연 내내 탄성을 자아낼 만큼 빼어났다.

휘파람 소리, 징 소리, 한지로 만든 지전이 부딪칠 때 나는 미세한 소리들, 여기에 청아한 대금 소리까지--- 자유로운 장단에 실린 그의 허튼춤은 그 자체로 우주 속을 부유하는 영혼의 울림 같았다. 그의 두 팔과 손놀음, 굴신을 활용한 상체의 움직임은 발레 무용수들의 유연한 포르 드 브라에 비견될 만큼 한없이 유연했다.

안무가가 작품의 소재로 삼은 우주 공간에 핀 한 송이 야생화는 전통무악(舞樂)과 만나 허허로운 춤으로 피어났고, 맺고 어르고 풀어내는 찰진 유선후의 춤은 무의식에서 만들어지는 즉흥의 묘미와 맞닿으면서 예기치 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이슬 〈Home〉 ⓒ국립정동극장/옥상훈



이이슬(UNIQUE MONDE)의 〈Home〉은 여성 홈리스(Homeless)의 궤적을 춤으로 풀어냈다. 작은 쿠션들을 엮어서 만든 듯 보이는 움직이는 커다란 검정색 더미, 그 속에서 뻗쳐 나온 선명하게 노출된 두 발은 안무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였다. 작품 전편에 사용된 타악과 매칭 된 서고, 구르고, 회전하는 몸 사용, 적절하게 배합된 유연한 팔의 움직임 등 인상적인 춤도 작품의 완성도에 힘을 보탰다.



황시영 〈버티-〉 ⓒ국립정동극장/옥상훈



황시영(선화예중 강사)의 〈버티-〉는 유난히 긴 체형을 가진 댄서의 몸과 푸른색 고무장화가 빚어내는 시각적 이미지가 초반부터 강렬하게 무대를 장악했다.

고무장화를 움직임의 변용을 위한 접점으로 활용하고 작품에 변화를 꾀하는 매개체로 활용하는 안무가의 감각은 범상치 않았다. 장화를 힘겹게 이동시키거나 장화 속에 얼굴을 묻고 거친 숨을 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마침내 장화를 벗은 상태에서의 자유로운 움직임-등으로 변용시키는 시도 등이 그런 예이다. 장화 속에서 치마를 입으로 꺼내는 등 오브제를 활용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신선했다.



송윤주 〈MUSE〉 ⓒ국립정동극장/옥상훈



송윤주의 〈MUSE〉는 예술가들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화두로 내세웠다. 라이브 연주를 곁들인 거문고와 남성 창자의 음악이 도입부부터 강한 임팩트를 만들어내면서 작품 내내 춤과 음악의 앙상블이 빛을 발했다.

무용수의 춤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가 댄서의 창의성을 생성시킨다는 생각이 들 만큼 거문고와 즉흥적인 댄서의 움직임 조합이 만들어내는 감흥이 예사롭지 않았다. 춤추는 댄서의 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검정색 의상도 시각적으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데 기여했다.



이지현 〈터〉 ⓒ국립정동극장/옥상훈



이지현(윤수미무용단원)의 〈터〉는 몸 빼 스타일의 의상, 몸과 돌을 활용한 소리 만들기로 청각적인 효과를 생성하면서 작품을 풀어나가는 구도가 인상적이었다. 작은 자갈 더미를 무너뜨릴 때 나는 소리, 그 돌들을 던지고 굴릴 때 나는 소리, 돌끼리 부딪칠 때 나는 소리는 후반부를 주도하는 미니멀 한 타악 연주와 잘 어우러졌고, 사각으로 얇게 쪼갠 조명을 통한 시각적인 효과가 더해지면서 다른 작품과의 차별성을 확연하게 부각시켰다.

6명 안무가의 작품들은 홈리스 등 사회적인 문제에서부터 예술가의 고뇌, 아름다움과 순수한 움직임에 대한 탐구 등 소재의 다양성, 전통무용의 호흡법이나 몸에 대한 탐구 등을 통한 새로운 움직임 조합, 이를 몸으로 체화시켜 댄서로서도 양질의 질감을 보여주었다.

음악사용에 있어서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정형화된 어떤 스타일에서 탈피하고 있었던 점, 준비한 소품이나 오브제가 작품의 주제나 시각적 이미지의 발현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점,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구성 뿐 아니라 뛰어난 표현력으로 분명한 메시지 전달을 담아내고 있었던 점은 안무 경력이 많지 않음에도 이들이 예술적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창조해 낸 요인들이었다.

국립정동극장이 ‘법고 창신 근현대춤 백년의 여정’이란 부제를 달고 8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한 〈세실풍류〉 (4월 4일-30일, 국립정동극장 세실)는 근대 신무용부터 컨템포러리까지 49개의 작품이 51명의 무용수들에 의해 추어졌다.

여타 일곱 개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더라도 적어도 ‘2010년대 이후 컨템포러리한국춤’의 경우는국립정동극장이 국립극장으로서, 공공 예술기관으로서 성취해야 할 공공성을 양적인 것이 아닌 질적인 것에 의해 성취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질 높은 예술작품의 인큐베이팅을 통해, 관객들에게 예술적 심미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은 무용예술을 통한 사회적 가치 구현과도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축제성 기획공연의 경우 프로그램 구성이 공연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10분 길이의 소품이긴 하지만 6개의 창작 작품을 단 하루의 셋업 기간을 거쳐 하루에 모두 공연하도록 한 것은 무용예술이 극장예술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 6개의 창작품들이 더욱 예술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으나 조명과 음향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한 점은 이 같은 무리한 제작 스케줄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2024. 5.
사진제공_국립정동극장,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