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ASAC몸짓콘서트 〈오늘 휴무〉 · 서울청년예술단
젊은 몸짓을 좌우한 대조적인 두 기획
서정록_춤연구가

최근 들어 세대간의 갈등은 상당하다. 소위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부터 2000년 초반에 태어난 세대)’와 ’86세대(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1960년대생 세대)’ 사이에 커다란 갈등의 양상이 보인다. 86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를, 소위 지식인 반열에 드는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철학에는 관심이 없고,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고전(古典)도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 교양도 없고 식견이 좁은 세대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보기에, 밀레니얼 세대는 꿈도 없고 의지도 약하고, 뜨겁게 사랑도 하지 않고, 낭만도 모르고, 자기중심적이면서 인성교육도 되어 있지 않고, 예의도 없고, 스펙과 대학 서열, 그리고 학점에만 연연하는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양극화가 극심한 요즘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질린 20대와 30대들의 눈에 지금의 50대와 60대 사이의 세대는 한국에 민주화를 이룩한 위대한 세대로 더 이상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 등록금은 싸고, 데모하고 연애하고 학점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낭만이란 이름 하에 술마시며 놀다가, 이른바 3저 호황 때 대기업에 골라서 취업하고, 내 집 마련을 할 나이가 되었을 때는 바로 IMF를 갓 지난 때로 집값이 가장 낮을 때 빚을 내서 투기하여, 이후 엄청난 집값 폭등의 단맛을 맛본 세대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도덕적으로는 미투 운동의 가해자들이면서 다른 세대에는 높은 도덕 수준을 강요하는 소위 아래 세대들에게 사다리를 걷어차는 나쁜 세대로 인식하기도 한다.
 요즘 청년들은 다 취업 걱정뿐이라 친구들을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그런데 기성세대에게서 “우리 때는 더 어려웠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니?”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하지만 자신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지도 모르면서 기성세대들이 아무렇게나 그런 소리를 한다고 분노한다.
 여기서 누가 옳다 그르다를 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성세대의 무관심과 무지 탓에 젊은 세대를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 즉 유흥거리는 물론 돈과 명예욕, 출세 등에도 관심을 끊은 ‘득도한 세대’로 만들어 버리고, 극단적으로 보수적이면서도 무기력하고 급변하는 현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웃나라를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고민과 좌절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과 공감 속에 이들을 배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ASAC몸짓콘서트 〈오늘 휴무〉(달맞이극장, 11월 15일 - 16일)와 영등포문화재단의 서울청년예술단×영등포구 〈영등등등등등등등등포〉(영등포아트홀, 12월 3일)는 청년 예술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그 취지로 공감이 간다. 화려한 스펙과 최고의 학점 같은 것들로 참모습을 잃어가는 것을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줄 수 있는 행사이자, 젊은 신진 예술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이들의 몸짓에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문이다. 그런데 두 행사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행사임에도 그 결과가 상당히 달라 보인다.
 먼저 (재)안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ASAC몸짓콘서트 〈오늘 휴무〉는 미래를 꿈꾸는 20대 신진 안무가들의 신선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경연대회 형식으로 꾸며진 본 행사는 최근 방송에도 등장하는 형식을 차용하여 현장에 온 관객들과 전문 심사위원들의 투표로 1편의 최우수작품을 선발한다. 선보인 작품들은 2018년 비슷한 형식으로 1위를 했던 안무가 김경민과 몽키패밀리의 〈발걸음 마일리지〉와 B-boy 출신 이우재 안무가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몸짓〉을 비롯해서, 경연작인 김덕용 안무의 〈존재의 떠남〉, 이하은 안무의 〈완벽한 타인〉, 그리고 김문주, 김덕영의 〈완전하지 않은 합의 연주〉가 경쟁하였다.




김경민 〈발걸음 마일리지〉 ⓒ김채현



김경민 〈발걸음 마일리지〉 ⓒ옥상훈/안산문화재단




 우선 〈발걸음 마일리지〉의 경우, 20대의 삶을 배낭여행에 비유하여, 고단하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20대의 불안과 그 속의 희망을 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낸다. 잘 짜인 스토리는 여행 가운데 점차 채워지는 가방 같은 것으로 젊은이들의 힘겨운 삶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스카이 콩콩(pogo stick)과 같은 다양한 놀이들을 통해 심각하지 않게 그들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김덕용 〈존재의 떠남〉 ⓒ옥상훈/안산문화재단




 경연작인 김덕용의 〈존재의 떠남〉에서도 청년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보인다. 요즘 청년들에게 흔한 병이 되어버린 우울증을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이해하고 이를 춤을 통해 자신의 솔직한 모습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만 작품이 춤 자체보다는 무대와 조명이 강조된 이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인상이 있다.




이하은 〈완벽한 타인〉 ⓒ옥상훈/안산문화재단



김덕영, 김문주 〈완벽하지 않은 합의 연주〉 ⓒ옥상훈/안산문화재단




 이하은의 〈완벽한 타인〉은 전통적인 춤 교육에서 자주 보이는 예쁘게 추려는 춤사위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자신만의 몸짓을 찾으려는 과감함이 요구된다. 김덕영, 김문주 작품인 〈완벽하지 않은 합의 연주〉는 ‘완전함’ 즉 어떤 결함도 없이 모든 게 다 갖춰진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두 무용수가 때로는 몸을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코믹하면서 일상적인지 않은 형태들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크게 잘못된 구석이나 탈이 없는 상태인 ‘온전함’을 두 무용수가 보여준다.
 사실 본 행사에서 높은 완성도나 고상한 예술적 담론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기성 전문 안무가들의 작품에 비해 미숙하며 완성도도 높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을 기대하는 행사가 아니다. 기획 자체가 현실에 지친 청년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며, 자신과 같은 처지의 젊은 예술인들의 ‘춤을 보며 좀 쉬자’라는 취지이다. 이러한 취지의 행사에 잘 짜인 안무와 완벽하고 세련된 몸짓은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렇더라도 20대 신진 안무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기회로서 몇 해 해온 ASAC몸짓콘서트가 소중한 기획이라는 점은 재삼 강조될 만하다.

 반면 서울청년예술단×영등포구 〈영등등등등등등등등포〉의 경우는 이와는 좀 다른 결과를 볼 수 있다. ‘청년’ 예술가들에게 나름 과감하게 지원하여 예술에서 새로움을 발굴하자는 취지의 사업이다. 주된 사업 내용은 선발된 젊은 예술가들과 기성 예술가들이 멘티와 멘토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멘토링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이 멘토 역할을 하여 지도와 조언으로 멘티의 실력과 잠재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멘토링은 무조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멘토링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종종 멘티로 하여금 오히려 작업의 방향이 흔들리게끔 하여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사례가 자주 보고 된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멘토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만 기대어 멘티의 개성이나 잠재력을 간과해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멘토링에서 중요한 점으로서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제법 충분한 기간이 주어질 때 비로소 멘티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
 서울청년예술단×영등포구 〈영등등등등등등등등포〉의 경우는 아쉽지만 이러한 멘토링의 단점을 확인해보는 공연이었다. 우선 공연 자체의 수준이 도저히 예술가들의 수준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소위 ‘문학의 밤’에서 보여주던 수준의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모습의 연속이었다. 참가한 젊은 예술가들은 각각 록음악, 연기, 드로잉, 공연 연출, 거리극, 무용, 영상, 글쓰기, 사진, 즉흥잼, 사운드 아트의 다양한 예술 장르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다. 본 공연은 이를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퍼포머로 둔갑하여, 자신들이 기존에 추구하던 예술적 지향을 무대와 신체라는 매체로 번역하는 과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보여준 작품에서는 우선 누가 어떤 장르의 배경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본 공연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녹아내고 있는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양한 배경의 예술적 지식과 잠재력을 가진 이들이, 갑자기 이전까지 거의 경험이 없던 퍼포머가 되니 한 순간에 아마추어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를 과거에 하고 싶었던 것, 그 동안 못해 봤던 것,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을 꺼내든 것이라고 하지만, 보여준 공연에서 어떤 ‘예술적 새로움의 조짐’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고, 무대에서 난무하는 것은 처음 해보는 데서 보이는 미숙함뿐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경험이 예술가 개인에게 앞으로의 작업에 혹 도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관객에게는 ‘전국노래자랑’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아마추어의 풋풋함 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공연이었다. 즉 예술가들이 아마추어로 전락한 본 공연은 관객에게 공감을 얻어내기가 지극히 힘들었다. 이 공연에서 절정은 난삽한 구성이었다. 영등포와 관련된 지역의 특징들에 천착하는 듯한 시작이 중간에 흐지부지하다가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게 끝나는 것에서 난삽한 것 이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아마도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이 작업 가운데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작품에 녹여내지 못한 데서 이러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사실 본 공연에서 유일하게 일관된 것은 멘토 역할을 한 안무가 안은미의 B급 감성이었다. 바로 이 대목은 위에서 지적한 멘토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기대어 멘티의 잠재력은 실종되는 멘토링의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멘토링의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인 “충분한 기간을 확보해 주어야 하는 것”을 간과한 채 〈영등등등등등등등등포〉의 기획단계에서부터 문제들이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
 위의 두 행사는 어떤 식으로 행사가 기획되고 진행되느냐에 따라 유사한 목적이라도 그 결과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최근 들어 대중 예술계에는 ‘다중 채널 네트워크’(줄여서 MCN: Multi Channel Network)와 같은 새로운 생태계들이 탄생하고 있다.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상들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구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청년 예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사실 기획단계부터 평가까지 그들이 의견을 적극 개진하며 참여할 수 있는 환경도 함께 제공해야 할 것이다.

서정록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태국 Mahidol 대학교 국제대학 강사, 국립대만대학교 초빙교수, 런던대학교 SOAS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춤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춤문화 역사 연구를 하고 있다.​ 

2020. 1.
사진제공_김채현, 옥상훈/안산문화재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