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21대 총선이 말하는 민심
새 국회와 함께 풀어야 할 춤계 과제들
김채현_<춤웹진> 편집장

탄핵과 막말 빼면 기억에도 흐릿한 식물국회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집권 여당의 절대 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국회 의석 300석 중 180석을 석권한 것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유례가 드문 압승이다. 이로써, 대한민국 국회가 달라질 거라며 기대 섞인 전망은 많다. 21대 국회가 이 기대에 부응할지 두고 볼 일이다. 대한민국 국회의 변화가 춤에서는 어떤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선거는 유권자의 여망과 판단을 수렴하는 제도이다. 고래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였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 권력은 배분된다. 이번의 절대 압승 또한 향후 4년 동안 대한민국 국회에서 진행될 의회 권력의 기초를 제시하였다. 선거가 끝났으니 여당이든 야당이든 유권자의 여망과 판단, 즉 민심에 기초하여 정치 권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 직후 집권 여당 내에서 선거 결과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반응부터 있었다. 앞으로 압도적 다수당은 국회에서 개헌을 제외한 모든 의안을 자력으로 처리할 수 있고 국회에서 다수당의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그만큼 책임도 전적으로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20대 국회는 국정농단 대통령을 탄핵한 것 말고 내세울 게 없는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하였다. 그것도 역대 최악이라는 식물국회.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는 데 대해 집권 여당은 집권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하 의석과 야당을 탓하곤 하였다. 민주 체제에서 여당과 야당이 합의에 준해 국회를 운영하는 것이 순리이지만, 20대 국회의 의석 분포에 비추어 어느 한쪽이 비틀면 합의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그런 이유나 변명이 아예 통하지 않도록 민심은 집권 여당에 압도적 의석을 몰아주었다. 아무튼 이번 선거에서 민심은 대한민국 국회가 집권 여당의 자력으로라도 우선 식물국회를 파기하고 생산적 국회로 탈바꿈할 것을 엄하게 명하였다.
 2016년 5월 20대 국회가 개원한 지 몇 달 안 되어 국정농단이 밝혀지기 시작하여 대통령 탄핵 등 이후의 과정은 세상이 보아온 대로이다. 국회 바깥의 국정 권력이 급격히 재편성되는 흐름에 상응하여 국정 현안에 대해 20대 국회는 국회 차원의 자성과 대안을 내놓기보다 오히려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갖가지 추태에 휘둘리며 표류하는 한계를 보였다.
 20대 국회에서 야당은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한 견제와 대안이라는 기본은커녕 툭하면 국회 바깥 아스팔트 같은 곳들에다 진을 치고 퇴행하기 일쑤였다. 그뿐인가. 막말 국회의원과 막장 국회라는 호칭이 턱없이 온건할 정도로 국회와 국회의원의 정도와 품위를 훼손하며 사실을 왜곡하는 행태를 버젓이들 자행하였다.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관철할 역량은 아예 부족한 탓인지 그처럼 걸핏하면 정부와 집권 여당의 발목을 잡고 아니면 흠집내는 데 연연하는 행태가 20대 국회의 주특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기 막판의 선거철에 이르러 어느 야당 의원이 한두 달 사이에 여러 정당을 기웃댄 몰염치는 굳이 말할 건도 못 되었다.
 대의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유권자를 한없이 우롱하는 이런 풍토 속에서 국회 역량이 갈수록 졸아들 것은 정한 이치였다. 의원들이 모여 있으니 국회였지, 그건 진정 국회였던가. 그래도 대의 민주주의를 존중하며 참을성을 갖고 기다린 민심이 이번 선거에서 대한민국 국회가 집권 여당 자력으로라도 우선 생산적 국회로 탈바꿈하도록 표심을 모아준 것은 이 때문이다.


새 국회, 춤에서도 촛불혁명 구현해야

2008년 이후 집권한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건은 유무형으로 존재하였다. 2016년 10월 국정농단이 들춰지던 시기에서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체도 드러났다.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20대 국회의 최대 현안이 되었건만 국회에서 그 후속 조치는 지지부진하였다. 블랙리스트 실행 및 작성에 관여한 실무자에 대한 처분은 정부 소관이었을 테지만 그에 대해 국회 차원의 검증이 있었는지 의문이며, 블랙리스트 사태의 재발을 예방하는 입법 조치는 사실상 유야무야해졌다는 것이 문화예술계의 중론이다. 이건 20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용두사미일 것이다.




블랙리스트 징계 0명 항의 문화예술인 국회앞 집회, 2018년11월 ⓒ김채현




 일부 사례라 하더라도, 이런 사실은 20대 국회가 그 초반에 촛불혁명을 겪고서도 몇 해 동안 전반적으로 촛불혁명의 소망과 결기를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 채 우왕좌왕 허송세월하였음을 반증한다. 특히 보수 야당은 대통령 탄핵을 겪은 당사자 정당이었음에도 최소한의 염치나 반성은커녕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도리어 새 정부를 겨냥해서 일베 수준의 흠집내기로써 자기들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연연하였다. 아마도 그런 작태로 말미암아 보수 야당이 이번 선거에서 패닉에 빠질 정도의 궤멸적 참패를 당한 것은 실로 자업자득의 소치였다. 비록 그럴지라도 이번 선거가 야당에 대한 심판이자 코로나 민생위기를 극복하는 데 방점을 찍은 선거였다는 진단은 집권 여당의 당선자들을 향한 뼈아픈 질책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몇 해 시간이 흐른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이제 실제로 새롭게 짜인 21대 국회 판도에 비추어 볼 때 집권 여당부터 민심을 쫓아서, 말하자면, 촛불혁명의 시즌 2를 펼쳐야 옳고 그럴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된 편이다.




촛불시민혁명 ⓒ김채현




촛불시민혁명의 촛불 ⓒ김채현




 상식적으로, 국회의 역할은 입법과 정부 견제에 중점을 둔다. 문화예술과 연관해서 국회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입법 및 정부 견제 활동을 특정하기란 간단치 않다.
 헌법에 명시된 문화예술 활동의 가치와 범위, 그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추상적이면서 포괄적이다. 더욱이 문화예술이 국민의 실생활과 직접 결부되는 정도가 낮고 국회의원 가운데 문화예술에 정통한 비율 또한 매우 낮은 편이어서, 의원들이 의욕을 내지 않으면 문화예술 분야에서 국회가 활동에 적극 나설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특히 춤 분야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경우 국정농단이 들춰지던 와중에 국회에서 강하게 이슈로 부각되었던 데 비하여 그 후속 입법 활동이 사실상 전무한 원인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의원 개별 차원의 연찬(硏鑽)과 동시에 국회가 문화예술 분야 현안에 대해 의욕을 내도록 여론을 환기하는 노력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금 문화예술계 일각에서는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 예술인 고용보험제도에 관해 입법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춤계 현장과 더 가깝게는 한국문화예술위의 모호한 법적 지위를 개선하여 단적으로 한국문화예술위를 쇄신해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하다. 또한 예술 활동 및 협회나 단체에 지원되는 각종 기금과 보조금의 사용을 국회가 국정감사 등을 통해 강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여론도 점증하는 중이다. 또한 국립 단체들을 비롯 공공무용단들의 운영과 경영 측면의 쇄신도 과제로서 지속 제기되고 있는데, 국정감사를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을 촉구할 점도 많다. 생각해 보면 이뿐만이 아닐 것이고, 더욱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 과제가 분출할 것이다.
 국회가 예술에 개입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공공의 차원에서 예술생태계의 민주적이며 합리적인 존속을 위해 입법, 예산 조성, 국정감사 등을 통한 국회의 간여는 당연하다.
 이상의 과제들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전 시대에 해결되지 못한 채 이 시대로 떠넘겨진 것들이다. 이들 해묵은 과제가 의원 개개인의 노력으로 풀려지기란 말처럼 용이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집권 여당이라는 입지가 중요한 것이며, 이번 선거는 집권 여당의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회 권력을 절대 압승으로 보장하였다. 이번 선거 결과를 새 국회는 임기를 끝내는 그날까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현정부도 마찬가지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 그 정부를 탄생시킨 국회는 춤과 예술 현장의 민심과 함께 개혁적 마인드로써 촛불혁명을 완결지어야 할 것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20. 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