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뉴노멀은 새로운 노멀인가
김채현_<춤웹진> 편집장

코로나19 극복에는 격리가 상책으로 꼽힌다. 글로벌 봉쇄와 텅빈 거리... 춤에서도 거리두기, 무관중, 온라인, 랜선 같은 언어들이 전에 없이 떠오르고 집콕, 방콕도 마찬가지다. 만남에서 시작하고 만남으로 마무리되는 그런 원리가 홀로 추는 춤에서마저 정지된다. 만나야 활기가, 생기가 소통되는 터에 그러질 못하니 답답한 것은 물론 삶의 의욕도 흩어지기 일쑤다. 이 위기를 하루속히 다잡을 구원의 천사로서 백신 개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오늘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반응하는 것은 생명(체)의 본능이다. 이런저런 무수한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굳이 학습에 의해서만 길러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본능이라 할 것이다. 본능에 더해 인간은 생명체 가운데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들을 고안해내는 데 가장 뛰어나다. 그 궁극에 호모 사피엔스가 있다. 
 사피엔스다움으로 우리는 상처를 딛고 코로나를 극복할 것이 시간문제일 것으로 믿는다. 때가 오면 공연장은 문을 열고 춤은 무대를 되찾고 객석은 박수로 답할 것이다. 온라인과 랜선, 댄스 필름도 전보다 활발해질 것이다. 이를 비롯 SNS 등 춤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는 추세를 타고 오히려 춤은 매체를 확장하고 형식과 내용이 한결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가 유발하는 변화가 심대해서 앞으로의 연대기는 크로나 이전 / 이후로 구분될 것이라는 예측도 흔하다. 코로나 이후(AC)라는 기원(紀元)이 공공연히 통용되며, 2020년을 기점으로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이 도래한다고 자주 듣게 된다. 예술계에서도 포스트코로나의 새 질서에 대응하여 춤과 예술 생태계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재구축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주문들이 제시된다. 그러면 코로나는 극복된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일까.
 비단 코로나 사태가 아니더라도 춤과 예술 생태계가 4차산업혁명 등으로 인해 변할 것은 기정사실로 예견되어 왔었다. 그런 중에 코로나 사태는 변화의 시점을 앞당기고 변화의 진폭을 폭발적으로 키울 뿐 아니라 사회 및 문명사적 변화와 동시에 변화가 진행되도록 만드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도 결정적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를 생각지도 못한 이전에는 물론 없었고 이제 출현하는 새로운 상황과 현실을 ‘뉴노멀’로 인지하고 그에 적응해야 한다는 갖가지 권고가 무성하다. 
 향후 1, 2년 사이에 코로나는 극복될 것으로 예견된다. 전세계는 한마음으로 이번 코로나 극복으로 사태가 속히 종결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에 찬물을 끼얹기나 하듯이 코로나 같은 팬데믹이 앞으로 주기적으로, 그것도 2, 3년마다 재발할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급기야는 인간 멸종이 운위되며, 그 전조라 할 동식물 멸종은 끊임없이 경고되어 온 대로이다. 
 팬데믹과 더불어 코로나 시대의 대표어로 등장한 뉴노멀(new normal), 그것은 새로운 정상(正常) 상태로 읽히고 새로운 기준, 새로운 일상으로도 풀이된다. 코로나로 뉴노멀의 새로운 일상이 도래할 것은 분명하더라도, 그것이 ‘정상’ 상태로서 새로운 정상이 될지는 실제로 미지수이다. 그리고 지금 오고 있는 것이 뉴노멀이라면 이전까지는 (올드) 노멀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의 뉴노멀은 이전의 (올드) 노멀에 뿌리를 둔다. 그렇다면 코로나 직전까지의 세상이 노멀, 즉 정상 상태에 있었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코로나의 시간들은 이전 세상이 정상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답한다. 이처럼 뉴노멀에는 비정상마저 정상으로 오인하도록 하거나 비정상을 아예 간과하도록 하는 함정이 감춰져 있기 때문에, 그 매혹적인 어감과는 달리 용어로 사용하기에는 신중을 요한다.
 거리두기 단계의 격상이 날마다 거론되는 와중에 코로나에서 무사해야 하고 이전의 일상을 회복해야 하는 지금 당장으로서는 뉴노멀들을 고안해내는 데 치중할 법하다. 유감스럽게도, 짧은 주기로 재발한다고 예견되는 팬데믹들은 앞으로 뉴노멀들의 수명을 갈수록 단축시킬 가능성이 짙다. 그리하여 2021년의 뉴노멀, 그 얼마 후의 다른 뉴노멀, 또 그 얼마 후의 또 다른 뉴노멀의 행렬이 펼쳐지지 말란 보장이 없다.    
 뉴노멀들 중에는 땜질식 뉴노멀도 생겨날 것이고 뉴노멀들 사이에도 옥석이 가려져야 할 것이다. 그래도 팬데믹 같은 재앙을 극복하기에는 뉴노멀만으로는 부족하다. 
 팬데믹 재앙이 짧은 주기로 재발을 거듭할 것이라는 경고 앞에서 문제의 근원, 다시 말해 문명, 국가, 사회 속의 정상과 비정상을 성찰해보아야 한다. 위기 속에서 당장은 위기를 타개하는 데 힘을 모아야겠고, 위기가 진정되면 그 원인을 해소하는 데 나서는 것이 순리이다. 이 시점에서 올해 세계를 휩쓴 위기의 실체를 다시 정리해본다. 그 위기란 어떤 바이러스가 21세기 문명의 질서를 모조리 뒤흔들고 정지시킬 만큼 이 세상이 세계, 국가, 사회, 삶 차원의 비정상을 조장하고 방치한 끝에 자초한 업보였다.       
 길게는 지난 수백년간 지구에서 누적되어온 비정상은 고만고만한 것들이 아니다. 팬데믹이 특정 국가는 물론 계층, 성별을 뛰어넘고 인간과 환경을 엄습한 범지구적 대재앙이기 때문에 성찰의 범위는 다음같이 광범하다. 지구에서 자연은 자연으로서 보존되는가로부터 산업은 기후와 조화를 이루는가, 인간 노동은 존중되는가, 사회는 개개인들의 안전판으로서 제 역할을 해내는가까지, 포괄적으로 말해 현존하는 삶이 각 부문들에서 과연 정상적인지 묻는 데서 성찰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한낱 병원체가 전세계인들에게 갖가지 비정상을 일시에 주지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래서 성찰이 절실해지며, 그래서 성찰은 호소력을 가질 것이다. 

 지금부터의 거대한 재앙은 특정 소수의 역량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개인과 시민 차원에서는 성찰하는 공감이 바탕을 이루는 연대와 협력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 팬데믹의 악순환을 넘어서는 데 있어 개인이 미약해 보이겠지만, 성찰하는 개인은 결코 그렇지 않다. 성찰하는 개인은 이미 개인 이상이며 개인에 머물지 않는다. 여느 예술 분야와 유사한 사정으로 춤도 뉴노멀의 자구책을 구해야 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며 수긍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맴돌기보다 재앙을 성찰하는 움직임으로 비약하는 데서 춤의 창조력은 배가될 것으로 생각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 ​

2021. 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