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늦장 행정
누구를 위한 지원정책인가?
장광열_춤비평가

이리 바라보아도, 저리 둘러보아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의 늦장 행정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 책상에서 회의만 반복하는 예술행정가들에게는 “지원신청에서 결과 발표까지 겨우 3개월 지연된 것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술계 현장에서는, 문예위의 방만한 사업 운용과 준비되지 않은, 반복되고 있는 늦장 행정은 예술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진흥을 저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는 사실(fact)이다.


2021년 지원 대상 사업을 2021년 6월에 발표하는 것이 온당한가?

올해 문예위의 지원 사업 가운데 대한민국공연예술제와 국제교류 부문은 예년에 비해 3개월이나 늦게 지원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업 시작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올해 20주년을 맞은 음악축제와 어린이 청소년들을 상대로 공모까지 진행된 지역의 연극축제, 5월말에 이미 사업이 종료된 20년이 넘은 국제 무용축제가 지원 대상에서 탈락되었다. 그리고 문예위의 늦장 행정으로 인한 폐해는 축제를 마쳤거나 곧 시작할 주최 측과 참여 예술가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문예위의 국제교류 지원 사업을 총괄하는 담당자의 “지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느냐“는 꾸지람(?)을 듣기에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예술가들의 피해와 상실감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총괄 담당자의 말대로 지원심의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게 왜 그렇게 일찍 축제를 개최해 우리에게 피해를 주느냐“는 참여 예술가들의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이 글의 핵심은 지원사업의 결과에 관한 것이 아니다.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문예위 지원사업의 비효율적인 프로세스가 그 중심이다.




7월 한 달 동안 31회의 음악회가 다채로운 레퍼토리와 함께 열리는 ‘더하우스콘서트’ 광경. 올해로 20년째를 맞은 이 축제는 2021년 지원 대상 사업에서 탈락했다. 사업 시작 3주를 남겨 놓은 시점, 30일 넘게 계속 되는 장기 축제의 늦장 지원결과 발표는 대관 취소도, 홍보물 인쇄도, 이미 섭외한 출연자 교체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늦장 행정은 주최 측에서 사업의 규모를 조정할 타이밍조차도 빼앗아 버렸다. 올해로 21회째를 맞은 한 국제 무용축제도 5월 23일에 이미 사업을 종료했으나 지원 선정에서 탈락, 수 천 만원의 제작비를 개인이 떠안게 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예년에 비해 3개월이나 늦게 지원결과를 발표했고, 이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현장 예술가들에게 돌아갔다. ⓒThe House Concert




 문예위 지원사업 운용의 가장 큰 문제는 사업 공모부터 지원결과 발표까지 모든 것들이 너무 늦다는 것이다. 올해의 경우 대한민국공연예술제와 국제교류 부문 사업은 4월에 접수해 6월에 그 결과가 발표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예년에 비해 3개월이나 늦었다. 예술가들은 준비하고 계획한 당해 연도 사업에 대한 지원여부를 그해 6월에야 알 수 있었던 셈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업 공모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문예위가 발표한 늦장 행정의 이유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한 것은 지난해 2월이다. 이미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이 커다란 피해를 본 상황에서 문예위는 또 예술가들에게 타격을 가했다.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지원행정이 아니라 더 큰 피해를 안긴 것이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를 핑계로 중요한 지원사업의 운용을 3개월이나 지연시킨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문예위가 준비되지 않은 지원행정을 운용하고 있음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지원 사업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타이밍이다. 국제 축제나 한 달 동안 지속되는 장기 축제의 경우 적어도 사업 개시 6개월 전에는 지원 여부와 지원 금액을 알아야 계획된 사업을 축소, 확대, 조정할 수 있다.
 올해처럼 사업이 종료된 후에 지원 선정 여부를 알게 되면 제작에 소요된 경비는 오롯이 행사를 준비한 단체에서 떠안게 된다. 최악의 경우 출연자들과 스태프들의 사례비가 지급되지 않거나 계약된 금액보다 적게 지급될 수도 있다.
 사업 시작을 불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축제의 경우도 이미 아티스트들의 출연 섭외나 대관 계약, 홍보물 인쇄 등이 끝난 상태이므로 사업의 규모를 조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문예위의 늦장 행정은 이렇듯 현장 예술가들에게는 직접적인 피해로 그대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같은 비효율적인 지원 시스템 운용이 수십 년째 반복되면서 시정 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원사업은 타이밍이 중요 반복되는 늦장행정 문예위 만의 책임인가?

그렇다. 더 심각한 것은 문예위의 늦장 행정의 폐해가 비단 올해만이 아니었다는데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당해 년도의 지원 사업 결과를 그해에 발표하는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의 예술 축제들 대부분이 하반기에 몰려 열리고 있는 것은 문예위의 지원결과 발표 시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예위가 직접 운영하는 연극 무용 예술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마다 치열한 대관 경쟁을 치러야 하는 아르코예술극장의 경우도 대관 심의 결과가 올해 1월에야 발표되었다. 이 역시 늦어도 너무 늦다. 공연장 대관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술가들은, 수개월 전부터 탈락될지도 모르는 극장에서의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문예위의 방만한 지원행정, 행정 편의 주의적 지원행정, 비효율적 지원행정 운용은, 올해 국제교류 부문의 수십 년 동안 시행해 오던 국제교류 지원사업의 1/2차, 상반기/하반기로 나누어 진행하던 공모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올해 국제교류 부문의 경우 심의위원들의 대대수가 국제교류 사업을 심의하기에는 그 전문성이 현격히 떨어진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문예위는 6개월이나 늦게 심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아예 예정된 지원사업 하나를 취소한 것이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지난해와 올 상반기에 전 세계적으로 중단되다시피 한 국제 교류 사업이 백신접종이 활기를 띠면서 2021년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재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하반기 국제교류 지원 사업 신청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문예위의 처사는 세계 공연예술계의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현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당장 하반기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제 축제에 초청받은 대한민국의 춤 단체와 무용가들은 항공료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늦장 행정에 늘 해오던 사업까지 갑자기 중단하는 우리나라 최고 공공 지원기관의 행정편의주의적 일방적 예술행정, 이를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관계자들은 알고 있을까? 문예위를 관장하는 문화부와 문예위의 책임자는 실패한 정책과 잘못된 정책 운용의 책임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설립, 운영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잘못된 사업 운영과 준비되지 않은 행정, 늦장 행정이, 적폐 청산을 부르짖으며 출범한 현 정부가 오히려 적폐를 양산하면서 한국 공연예술계의 발전을 저해시키고 있는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그리고 심각하게 인지해야 할 것이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 ​ ​ ​​​ ​ 

2021. 7.
사진제공_The House Concert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