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탄소중립 극장 정책은 언제쯤 만날까
김채현_〈춤웹진〉 편집장

“우주에서 보는 지구는 조그맣고 아름다운 행성이다.” 우주 탐사가 진행된 지난 60년 사이 우주비행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구를 찬미하였다. 그들이 우주에서 전송한 사진들에서는 짙은 코발트색 물감 사이에 초록, 황갈색으로 채색된 대륙이 놓이고 그 위에 거대 구름층이 깃털처럼 얹혀 부유하는 모습으로 지구 행성이 제법 매력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거기 망망대해 칠흑(漆黑) 공간 속에 떠 있는 동그란 지구는 그림을 품에 안은 투명 영롱한 보석 같아서 지구가 아름답다는 우주비행사들의 소감에 지구인들은 본능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들어 부쩍 시도되는 단시일 간의 민간인 우주여행에서도 이런 점이 엿보인다. 1인당 무려 수백억원의 탑승료에도 아랑곳없이 지구가 아름다운 행성인 것을 체험 확인하려는 호기심 이상의 숭고한 열망이 지구인들의 마음속을 흐른다.




우주 속의 지구 ⓒthephotoargus.com




비단 우주에서만 지구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생(명)의 터전으로서 지구는 보람된 것이며 지구에서 안식을 취하는 것이 지구인의 보편적 속성인 것은 물론이다. 고래로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무수한 시문과 예술품들에서 지구의 아름다움은 무한정 승화되었고 우주에서 지구를 아득하니 멀리서 목도해볼 때의 숭고한 경외감이 지상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아름답다는 말과 그럴 수 있는 심성은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이 지구인으로서 지상에서 다듬어낸 고유한 발명품 아닌가.

하지만, 과연 지구는 아름다운가? 우주를 유영하며 지구 바깥에서 대하는 지구에서는 아마도 그처럼 영롱한 보석 같은 아름다움이 절대적일 것이다. 반면에, 특히 20세기 말 이후, 정작 지구 안에서 살아가는 실제의 지구는 딴판으로서 지구 안에서 잇따르는 엄청난 징후들은 지구가 아름답다는 명제를 꾸준히 흔드는 중이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대표적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현실 속에서 지구는 아름답기보다는 불안한 것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행성으로서의 지구에 불안한 행성으로서의 지구가 덧칠해지는 오늘이다. 이처럼 지구를 향한 양가적(兩價的) 감정이 우리 시대 21세기 지구인들의 정서를 물들이고 있다. 그래도 지구는 아름다운가?




달에서 본 지구 ⓒseasky.org




팬데믹 이전부터 기후위기로 망가져온 아름다운 지구를 살려내는 행동이 절실한 터에, 지난 9월 천주교 수원교구는 ‘수원교구 탄소중립 생활실천 봉헌’ 캠페인을 개시하였다. 이 탄소중립 캠페인 가운데 햇빛발전소 운동은 공연예술계와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 공간들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보도에 따르면, 이 캠페인은 7가지 사항(쓰레기줄이기·소비·식품·전기전자제품·교통·생활·기후신앙생활)에 걸쳐 탄소중립을 이룰 46가지 세부 실천 사항을 등록하고 앞으로 7년 동안 실천 봉헌할 것을 다짐한다. 이 캠페인을 소개하는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홈페이지(ecosuwon.casuwon.or.kr)를 보면, 철마다 새 옷을 사지 않고 한번 산 옷은 오래 입기, 점심시간에 컴퓨터 전원 끄기, 탄소발자국을 줄일 지역 식료품 구매하기 등등 누구나 생활 현장에서 실천 가능한 제안들이 가득하다.




수원교구의 캠페인 중 탄소발자국 줄이기 안내문




이와 아울러 수원교구장은 “2030년까지 수원교구 222개 본당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여 에너지 자립을 이루고 2040년까지 100%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를 위해 성당마다 유휴 부지를 최대한 활용하고, 에너지협동조합을 구성해 햇빛발전소를 설치하며, 태양광발전소 설치가 어려운 도심지 성당은 지방정부 및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해 지역 햇빛발전소에 적극 참여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수원교구 측은 222개 성당(평균 연간 전기사용량은 12만7천㎾ 정도) 1곳당 100㎾/h 규모 햇빛발전소를 설치해 2030년까지 100% 전력 자급화를 이루면 60~70%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원교구 쪽은 에너지 자립화를 위한 햇빛발전소 건설에만 성당 1곳당 1억5천만원씩 모두 330억원 가량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수원교구청과 222개 성당이 에너지협동조합에 참여해 출자하고 정부의 재생에너지 지원을 통해 필요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라 한다. 또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앞으로 신축될 모든 성당은 에너지 자립 건물 인증을 받도록 하고, 성당 리모델링 때도 에너지자립형으로 바꾸는 것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2040년까지 성당 내 전기 외에 가스와 석유 등의 기타 에너지원과 성당에서 소비되는 모든 물품을 탄소 소요가 적은 것으로 대체해 100% 탄소중립을 이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탄소중립은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산림 등으로 흡수하거나 포집 활용해서 제거하여 그 순수 배출량이 0이 되도록 하는 작업을 말한다. 알다시피, 탄소라는 것은 우주는 물론 생명체의 기본 물질이며 주로 화석 연료 등 탄소 연소로 생기는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실 효과의 주범이라 말해진다.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지구 온난화에서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다. 자료들에 따르면, 화석 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산업화 시대 이후 근 3백년 동안 지구 기온이 1.1℃ 상승한 탓에 현재의 기후 재앙들이 초래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지구 온난화부터 최대한 억지해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지구 기온 상승이 2℃를 넘어설 경우 인간 삶의 터전으로서 지구는 영영 가망이 없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때문에 2015년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범세계적 협의체는 지구 기온 상승 한계치를 1.5℃로 보고 그에 맞춰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최종 시점을 2050년경으로 설정하는 국제적 기준을 도출한 바 있다.

이런 배경에서, 각국은 2050년을 목표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도 2050 탄소중립 계획을 지난해에 천명하고 추진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수원교구의 2040 탄소중립은 교황청이나 정부의 대책보다 10년 앞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으로 잡혀 있어 주목을 끈다. 특히 교구 내 각 성당마다 햇빛발전소를 설치하기 위해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는 데 나서기로 한 대목에서는 강렬한 의지가 두드러진다.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탄소중립이 아직은 태양광발전, 풍력발전처럼 산발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상례인 데 비하여, 교구 내의 전체 성당이 힘을 모아 적극 대처하는 것은 더 각별해 보인다.




국내 최대 태양광발전소, 전남 영암 ⓒ광주일보




춤계는 물론 공연예술계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탄소 배출과 직결될 것이다. 성당처럼 공연장도 거의 매일 에너지를 사용할 것이고, 공연장을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더라도 에너지 소비 규모가 작지 않을 것이다. 탄소중립 시대에 직면하여 공연예술계 구성원이라면 대개들 탄소중립을 잠시라도 생각해보았음 직하다. 과문의 탓인지, 필자로서는 공연예술계의 탄소중립 대책으로서 조직적으로 구체화된 방안을 접해본 바 없다. 지난해 나온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대책도 아직은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신유망 저탄소산업 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 전환, 제도화 추진 등 기본 추진 전략 및 부문별 전략을 제시하는 원론에 머물러 있고, 정부 차원의 공연예술계 탄소중립 대책도 알려진 바 없는 줄로 안다.

옥내 공연장은 에너지로 가동된다. 누구든, 관람차 또는 공연차 공연장을 수시로 출입하는 입장에서는 탄소 배출이라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구에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혹시 나도, 우리도 지구 온난화의 공모자가 아닌가 하는 자책감도 생겨날 법하다. 탄소중립이 사회적 미덕으로 부각될 2030년대 언젠가 탄소중립을 소홀히 하는 공연장뿐 아니라 박물관, 화랑, 갤러리 등의 공공 공간을 상대로 관람 또는 대관을 사양하고 외면하는 그런 사태가 닥치지 않으리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러한 공간을 운영하는 주체들에게 탄소중립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하겠다.

범사회적으로 탄소중립이 더는 미룰 과제가 아니더라도 공연예술인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바는 아주 제한적일 것이다. 아무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도 탄소중립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싶으며, 두 기관은 적극 방침을 표명하고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대개의 공연장들이 도심에 위치해 있어 태양광발전 설비 설치 공간 확보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부닥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게다가 설치 재원 또한 만만치 않은 과제일 것 같아서 공연장 탄소 중립을 위한 기금 모금 운동이 일어나야 할지 모른다. 이런 난점들에 대해 수원교구가 세운 에너지협동조합 출자, 지역 햇빛발전소 참여 등의 방안은 얼마간의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탄소중립까지 실현해야 하는 이 힘든 문명을 후손들에게는 넘기지 않으려면 늦기 전에 힘과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1. 10.
사진제공_thephotoargus, seasky, 광주일보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