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새 정부 문화정책
지난 정부 때문이라는 신조어 그리고 청와대 브랜드
김채현_〈춤웹진〉 편집장

지난 정부 때문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남짓 흐른 6월부터 현 정부의 여당 관계자들이 이 표현을 자주 발설하기 시작하여 갑자기 신조어(?)가 되는 중이다. 지난 정부 때문에, 즉 지난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은 때문에 현 윤석열 정부가 일하기 힘들다는 뜻이겠다. 일리가 없지 않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어디서건 민주국가에서 현 정부는 지난 정부를 승계해야 하고 원리상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성과는 물론 한계나 문제점을 떠안고 다시 시작해야 하므로, 지난 정부 때문에 힘든 점이 없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현 정부는 정권 교체를 강력하게 내세워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를 얻었다. 부동산 정책의 대실패와 위선적인 내로남불 등등 지난 정부의 실정(失政)은 대통령 선거기간 내내 정권 교체의 명분으로 앞세워졌다. 세상이 알듯이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지난 정부의 실정을 훤히 다 안다는 듯이 외치는 말들이 넘치고 넘쳤다. 그렇게 말들을 쏟아내며 선거에서 승리하여 막상 집권하자마자 현 정부 여당 관계자들은 ‘지난 정부 때문에’를 입버릇처럼 되뇌인다. 마치 지난 정부의 실정을 미처 몰랐다는 식의 태도이다. 집권 여당이 정권 교체의 명분으로 앞세운 것이 지난 정부의 실정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지난 정부의 실정을 몰랐다 한다면 논리로 성립하지도 않는다. 정권 교체 명분이란 말이나 지난 정부 때문이란 말이나 서로 연결되면 모두 몰염치한 언어로서 그 본색을 드러낸다.

지난 정부보다 더 나은 정치를 다짐하면서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앞세웠던 주체가 현 집권 여당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 때문에 집권 초부터 일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현 정부 내내 지난 정부 때문에 힘들어서 아무리 잘해도 지난 정부를 뛰어넘기는 힘들 것 아닌가. 집권 여당은 사사건건 이 말을 할수록 더 나은 정치를 다짐하며 내세운 정권 교체의 목적을 손바닥 뒤집듯이 스스로 부정하는 것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비록 집권 여당 대표가 지난 정부 탓만 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긴 했어도 그 말에 진정성은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목하 떨어지는 국정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하는 말이려니 하고 그만 접을 수도 있으련만, 그 발설이 잦을수록 현 정부의 무능을 감추려는 레토릭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만 커간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국가에서 범세계적으로 현 정부는 지난 정부를 승계하는 정부이므로 원리상 지난 정부의 결과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직 인수위 절차를 두고 있고 집권 초기에는 지난 정부의 실적을 파악해서 그것을 평가한 바탕 위에 새 정부의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또 집권하고 보니 발견될 크고 작은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하고 나면 실제 정부는 현 정부만 있을 뿐이며, 현 정부는 자신이 승계하는 지난 정부의 모든 것 가운데 취사선택할 권한을 갖는다. 지난 정부의 문제 또한 일단은 현 정부의 문제로 승계될 것이므로 현 정부의 권한과 대안을 통해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할 것이고, 지난 정부를 굳이 탓해야 할 일은 당당히 법을 따르면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집권 초기 그러니까 현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쯤 되는 지난 6월에는 정부 각 부처에서 지난 정부의 실적과 현상을 중심으로 분석한 백서가 정부 모든 부처에서 나왔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런 다음에 올 7, 8월경에는 현 정부의 계획을 명시한 청사진이 나와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런 백서에 근거해 지난 정부 때문이라 한다면 그나마 객관성이 있을 것이고 정치적 레토릭으로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 정부의 실정에 대해 선거운동 기간에는 두루뭉술 심지어는 근거가 희박하게 말할 자유가 있었지만, 집권 후에는 구체적 근거를 수반해야 설득력이 있다. 집권 후에 지난 정부 때문을 남발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둔사로 들리기 마련이고 이제는 그 효험이 그다지 영험한 것 같지도 않다. 아무튼 혹시 그런 백서가 나왔는지 몰라도 과문의 탓인지 필자는 접한 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당의 윤석열 후보가 제공한 선거공보(A4 규격, 모두 20쪽)에서 문화 분야 공약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공약(公約)이 슬그머니 공약(空約·공수표)으로 무산되기가 예사인 터에, 선거공보에서 문화 분야 공약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무정견(無定見)으로 단정하기보다는 공수표 남발을 자제한 것이라고 여겨 오히려 쿨하게 넘길 법도 하다. 그러다 지난 7월 하순 문화체육관광부가 보도자료로 밝힌 새 정부 업무계획에서 새 정부의 문화정책이 대략 제시되었다. 여기서 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세계 일류 문화 매력 국가’를 기치로 앞세우고, 새 정부의 5대 핵심과제로 살아 숨 쉬는 청와대, 케이-콘텐츠가 이끄는 우리 경제의 도약, 자유의 가치와 창의가 넘치는 창작환경 조성, 문화의 공정한 접근 기회 보장, 문화가 여는 지역 균형 시대를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새 정부 문화정책 구호로 주목을 끄는 세계 일류 문화 매력 국가는 어떤 국가일까. 보도자료는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세계가 우리 콘텐츠에 주목하고 노하우를 배우려는 문화 매력 국가 외에 더 이상의 문구를 제시하지 않아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5대 핵심과제(청와대의 시각적 브랜드화, 케이콘텐츠 확장, 파격적 창작 환경 조성, 문화 접근 기회 확장, 문화의 지역 균형) 가운데 어떤 것은 제대로 추진되면 문화 매력 국가 조성에 기여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중에서 시각적 브랜드화에 초점이 맞춰진 청와대 건은 이번 정부에서 해방 후 첫 대통령 이래 74년 만에 윤석열 당선자가 실행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의 핵심과제에 유례없이 따라서 이례적으로 등장하였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청와대의 시각적 브랜드화가 세계 일류 문화 매력 국가로 가는 핵심과제에 해당된다고 문화체육관광부는 보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를 5대 핵심과제의 하나로 제시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구상은 한 마디로 번지수도 맞지 않는 그야말로 생경한 발상 말고는 별것도 아니라 생각된다. 이와는 별도로, 청와대를 보존하는 일은 청와대의 내력에 비춰 그 자체로는 누가 봐도 엄청 중요해서 거듭 신중을 요하는 사업이다.

이런 구상을 5대 핵심과제 가운데 맨앞자리에 턱 배치하는 그 발상, 역시 생경하지 않은가. 다시 생각한다, 청와대의 시각적 브랜드화가 대한민국이 세계 일류 문화 매력 국가로 가는 핵심과제에 해당할까. 게다가 그 브랜드의 시각적 내용은 무엇인가? 보도자료에 따르면, 원형 보존의 원칙 아래 청와대 본관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관저에 미술품을 설치하며 영빈관을 근현대 미술품 전시장으로 재구성하고 야외공간은 조각공원으로 조성하는 등이다.

청와대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그 자체가 이미 브랜드화된 원전(原典)이다. 여기다 시각적이든 무엇이든 어떤 내용을 덧붙여야 브랜드가 될 것이라는 보도자료에서의 판단은 청와대의 의의와 역사적 브랜드의 내면을 존중하기는커녕 전시에 급급하는 기획적 소치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청와대를 여기저기 덧칠해서 소중한 원전을 변질 훼손시킬 가능성이 크게 우려된다. 대한민국 정부 수반의 역대 통치 공간을 브랜드화의 미명에 혹하여 성급하게 00뮤지엄, 또는 00랜드나 00가든 수준으로 격하 변질 퇴락시키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00뮤지엄, 00랜드, 00가든 등의 공간을 낮춰보는 엄숙주의자도 편향된 고전주의자도 아니다. 이 자리에서는 그런 공간의 요소로 청와대의 격이 심히 훼손될 것을 경계하는 것이고, 청와대 보존과 브랜드화 작업은 원점에서부터 철저히 공론화되어야 한다.

이번 보도자료는 현시점에서 새 정부가 새 문화정책의 틀을 확정하였음을 시사한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새 정부의 문화정책을 도출하는 작업이 얼마나 공론화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겠으나 설령 어떤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입안되었다 할지라도 5페이지 정도의 대략적 보도자료를 두고 새 정부의 문화정책 백서라 할 수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새 정부의 문화정책을 외부로 밝히는 아마도 첫 자료로서도 함량 미달이다. 이 보도자료(케이-콘텐츠로 한국경제 선도, 청와대는 문화예술 랜드마크로, 7월 21일치 보도자료)는 문화체육관광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새 정부가 어떤 경로를 거쳐 관련 백서를 내놓을지 당분간 주시해볼 점이지만, 지난 정부의 문화정책의 실적과 현상을 분석하고 새 정부의 계획을 명시하여 지난 정부 때문을 운운할 필요도 없는 백서가 나와야 할 것이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

2022. 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