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아트컴퍼니 예기 〈역사 속의 그녀 기생〉
전통 컨텐츠 개발을 통한 춤 대중화 작업
이보휘_<춤웹진> 기자

 

 

 

 지난 12월 4일과 5일 수원SK아트리움에서 ‘아트컴퍼니 예기’의 신작 <역사 속의 그녀 기생>(안무 안영화) 쇼케이스가 열렸다. 2014 경기문화재단 공연장 상주육성단체 지원사업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이번 쇼케이스를 거쳐 내년에 정식 공연으로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쇼케이스다 보니 공연시간도 커튼콜을 포함해 40분 남짓으로 짧았고, 무료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작품의 기승전결은 비교적 명확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기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시대 기생은 신분은 낮아도 악가무(樂歌舞) 뿐만 아니라 시와 글에 능한 교양인으로 인정받았지만, 1910년부터 시작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저 술손님을 상대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하등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정치적 활동의 결과였다.
 공연은 로비에서부터 시작됐다. 극장 로비에는 수원박물관이 제공한 일제강점기 시대 기생들의 사진이 전시되었고, 한쪽에는 다도와 한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작품은 “나는 조선의 기생이었습니다”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됐다. 나레이션을 맡은 김미옥 배우의 목소리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배우가 퇴장하고 자연스럽게 ‘춘앵무’가 이어졌고, "고울사! 달빛 아래 걸음이여 비단 옷소매 바람에 일렁이네, 꽃 앞의 자태 참으로 사랑스러우니 군왕께서도 다정을 맡기고 계시네"라는 창사와 함께 들려온 나레이션은 조선시대 기생의 모습을 상상케 했다.

 



 이어 기생학교에서 교육받던 이야기와 당시 모습의 사진이 영상으로 비쳐졌고, 자연스럽게 검무가 추어졌다. 2명의 무용수가 검무를 추는 동안 무대 뒤 영상에서는 당시 기생들이 검무 의상을 입고 있는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이어진 나레이션에는 일제강점기, 힘들었던 기생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어지러움 속에 독립만세를 외치는 기생도 있지만 급속으로 변하는 신문화에 그들도 받아들였지”라는 대사 속에는 교양인으로서 기생의 삶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홀대 받는 기생의 삶을 선택한 그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계량한복을 입고 나와 부르는 “오빠는 풍각쟁이야”는 신나는 노래임에도 앞에서 탄탄하게 이어진 스토리 때문인지 씁쓸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공연은 점점 절정을 향해갔고, 기생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김향화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김향화는 3·1운동 당시 수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며, 안무자는 그녀의 슬픔을 창작무용으로 풀어냈다. 작품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나레이션으로 끝이 났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정체성을 상실한 기생의 아픔을 담아낸 이 나레이션은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작품을 지켜본 춤비평가 김예림은 “우선 예기라는 컨텐츠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에 호기심이 갔고, 이즈음 컨템포러리 아트의 화두인 ‘융합’을 사실 한국무용하는 분들이 어려워하는데 안영화 안무자는 연극, 라이브연주, 영상, 정가, 나레이션 등 여러 장르를 한데 묶으려고 했던 시도를 높게 산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물론 작품 내용상 관기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춘앵무>의 일부도 있었고 <검무>의 일부도 있었는데, 전통춤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좀 더 예기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춤들이 들어갔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보완되었으면 하는 부분도 지적했다. 또한 “서울에서 행해지는 창작 춤의 잣대로 이 작품을 본다면 지나치게 대중성이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역 관객들의 특성을 봤을 땐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역의 관객들은 대중성이나 보편성이 떨어지면 굉장히 낯설어 하는데 그것을 감안해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 같다. 쇼케이스다 보니 완성도를 논하기는 힘들 것 같고, 시도 자체는 굉장히 흥미로웠다”라며 지역 관객들을 위한 레퍼토리로서의 가능성을 지적했다.

 



 ‘아트컴퍼니 예기’는 2010년 안영화무용단으로 시작했으며, 2011년 수원예기보존회로 명칭을 바꿔 활동하다가 컨텐츠 제작에 중점을 두고자 2014년부터 ‘아트컴퍼니 예기’라는 단체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상태이다.
 사실 화려한 무대 배경과 조명, 테크니컬한 움직임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단조로운 공연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안무가 안영화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마저도 의도된 연출이며, 철저한 노력 끝에 만들어진 공연으로 향후 레퍼토리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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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안무가 안영화

상주단체 통해 춤과 친숙한 관객들로 만들겠다



 ‘아트컴퍼니 예기’의 대표인 안영화는 경기도립무용단 단원을 역임했으며, 수원출신으로 수원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오면서 이를 컨텐츠화 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녀가 안무한 작품으로는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2011), <기생-화젯거리>(2012), 스토리텔링 퍼포먼스 <정조 트라우마>(2013) 등이 있다.

이보휘 이틀 동안 공연 준비하느라 힘드셨을텐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체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영화 수원이 역사도시 이다보니 수원의 역사에 관한 작품을 하나씩 해야겠다는 생각에 처음에 수원예기보존회라는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 예술, 테크닉, 역사, 기생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의미로 ‘아트컴퍼니 예기’로 명칭을 변경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경기문화재단 공연장상주육성단체로 지원을 받으면서 작년에는 수원에 조선 정조 시대에 ‘무예보통지’라는 무예교본이 있어서 거기에 나오는 무술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었고, 시민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대중적이면서 관광 상품화 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다가가 공연을 관람하는 문화, 티켓을 유료화 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의 그녀 기생>은 어떤 작품인가요?
전통을 어떻게 쉽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지금 시대에는 ‘기능’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능적으로 잘 하시는 분들은 너무 많지만 일반 관객들은 얼마나 잘 추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수원 역사의 일부분을 쉽게 이야기하고, 쉽게 표현 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통해 수원의 관객들이 전통예술을 좋아하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기생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수원의 역사를 공부하면서부터입니다. 아마 내가 옛날에 태어났으면 관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생들의 춤을 추고, 그 춤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보았고, 일제강점기 때 기생의 이미지가 퇴락됐다고 한다면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당시 시대적 풍경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또 사람들이 기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아닌 다른 이미지들을 알려주고 싶었고, 기생을 통해 일본 식민지 시대의 문화가 아직까지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지를 춤을 통해 전하고 싶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작품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된 것 같습니다. 제 옆에 앉아 계셨던 분은 공연이 끝날 때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작품을 만들면서 어디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는지요? 작품 들어가기 전에 책이든, 동영상 자료든, 관련 전문가든 수 백 번, 수 천 번 보고 만납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이미지들로 작품을 만듭니다. 사실 저는 관객의 감성을 터치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화려하고,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는 공연보다는 관객들이 공연을 보면서 가슴에 스며드는 그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합니다. 공연을 할 때 주로 객석에 있으면서 관객들을 보는데, 관객들이 내가 원하는 감동을 받았다고 느낄 때 너무 행복합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첫 번째로 아쉬운 것은 항상 연습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 저는 작품을 만들 때 꼭 무용공연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음악이어도 좋고, 연기여도 좋고, 전혀 다른 그 무엇이라도 좋은데 이 모든 것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사실 너무 힘듭니다. 모든 요소를 조화롭게 버무릴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지만 또 그만큼 재미있습니다.

내년에 공연될 완성된 <역사 속의 그녀 기생>이 벌써부터 기대 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사람들이 역사성이 있는 것은 고루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대중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반대로 사람들이 전통에 관심을 갖고 흥미를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 공연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또 외부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충분한 돈을 지급하고 연습을 할 수 있는 환경, 그런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예술가가 수원에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재능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같이 작업하자고 끌어들이곤 합니다. 그 친구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고 싶은데 사실 현실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2015. 01.
사진제공_아트컴퍼니 예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