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연속 기사 · 투잡(3)
어느 갓길
김채현_춤비평가

생계 유지의 긴급성

〈춤웹진〉 지난 호에서 거론되었듯이, 국내에서 투잡은 다음의 요인들에 의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1)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고용형태 다변화, 2) 주52시간제가 도입된 2018년 이후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소득 저하, 3) 코로나 19 장기화 등. 투잡의 동기 가운데 생계 보조와 아울러 실직에 대비한 보험 활동이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간혹 접하는 사실로서, 투잡의 동기 중에는 본업 이외에 자신이 원하는 일로써 삶을 더 충실하게 하고 싶은 욕구도 있는 것 같다. 즐거운 투잡이라 칭할 수 있는 이런 투잡은 본업의 연장선에 있거나 아니면 본업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질적인 것 등 다양하다. 취미 차원을 비롯하여 자기 실현 및 자기 개발, 공익의 자원 봉사로서 목적 의식이 분명하고 그 의의가 작지 않다면 웬만한 비용이나 수입 금전의 규모에 얽매이지도 않을 투잡이다. 어떤 면 낭만적으로 느껴질 투잡이다.

2021년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일반 직장인의 퇴직 나이는 평균 49.3세로서, 이 또한 당겨지는 추세라 한다. 평생직장 관념이 희미해지고 고용의 불안정성이 높아만 가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투잡은 범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는 추세다. 2021년도에 직장인의 70%가 넘게 부캐 즉 투잡을 할 용의가 있다는 국내 통계(사람인 사이트)가 있었고, 불과 1년 후인 2022년도의 또 다른 통계(알바몬 사이트)에서는 그 비율이 90%를 넘어섰다. 코로나 19 사태가 수그러들어도 투잡 활동은 생각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몇 해 사이 디지털 플랫폼과 앱 그리고 SNS가 보편화되면서 투잡, 부캐, N잡이 음성적으로 수행될 만한 환경이 뚜렷이 조성되고 있다. 이 같은 형태의 부업 대부분은 통계청 조사에 잡히지도 않을 것이다.

낮에는 아날로그 본업, 퇴근 후에는 온택트 시대답게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재택 부업. 학력이 높을수록 N잡러가 될 가능성은 높다. 아무튼 투잡, 부캐, N잡 활동은 성행할 뿐더러 당연시되고 그런 활동이 많을수록 오히려 유능한 N잡러로 인정하는 풍조마저 있다. 투잡을 부끄러이 여기는 것은 과거의 일이 되고 있다.


투잡을 위한 역량 강화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전문무용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무용인들은 공연 1건 출연을 기준으로 적정한 출연료 액수를 레퍼토리 공연은 57만원, 신작 공연은 90만원으로 응답하였다. 2017년도의 일이다. 여기에 프로젝트별 연습료로 46만원이 추가될 터인데(시간당으로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한다), 대체로 며칠 이상의 정기 연습이 병행될 경우 적용되는 듯하다. 그 실태조사는 무용수, 안무가, 교육자, 무용연관 직업 종사자 가운데 전국의 무용인 1427명(공공무용단 재직자 300명 포함)을 표본으로 하였으므로 신뢰도가 높다 하겠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조사라서 그 사이 변동이 있었을 테고, 유감스럽게도 후속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5년간의 물가상승률을 20% 정도로 추산하면 이제는 건당 레퍼토리 공연은 68만원, 신작 공연은 108만원, 연습료 55만원 선이다. 지난 호에 소개되었듯이, 무용인의 연간 평균 예술활동 개인 수입은 634만원(2021년 기준)이었다. 이 예술활동 개인 수입을 적정 출연료로 나눠 보면 무용수 1인당 연간 5~8편가량의 공연에 출연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도의 최저생계비로 1인 가구 125만원, 2인 가구 210만원, 4인가구 324만원을 책정한다. 식료품 구입, 주거, 교통통신비, 의료, 교육, 피복 및 생활용품 구입, 교양오락, 경조사, 저축 및 보험, 광열수도료 등에 걸쳐 모두 372개 항목의 필수 비용을 산정한 것이다. 대개는 우리나라 전체 중위소득 60% 수준에서 가족 구성원 수를 기준으로 정하는데, 중위소득(올해 1인 가구 209만원, 2인 가구 345만원, 4인 가구 540만원)의 60% 금액을 최저생계비로 간주한다. 최저생계비는 빈곤을 벗어나 생활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저 비용을 의미하며, 기초생활 수급자 급여, 개인 회생을 위한 변제금 산정 등 공공 차원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할라치면 개인별 / 가구별 최저생계비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올해 산정해볼 수 있는 무용수의 적정한 출연료는 건당 레퍼토리 공연이 68만원, 신작 공연이 108만원, 연습료 55만원 선이다. 그런데, 연간 평균 예술활동 개인 수입 634만원(2021년 기준)을 보건복지부의 최저생계비(연간 금액으로 환산하면 올해 1인 가구 1500만원, 2인 가구 2520만원, 4인가구 3888만원)와 비교해보자. 예술활동 수입이 턱없이 적어서 어느 누가 봐도 특히 현장 무용인(그리고 현장 예술인 일반)에게 투잡이 절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 앞에 놓인 명세서는 그러하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2017년도 전문무용수 실태조사에서 무용수들은 경제적 우선 현안을 생활비 마련(41.6%), 무용 활동 경비 마련(19%), 무용 이외 자기 개발(12.3%), 노후대비책(9%), 무용 관련 재교육비 마련(8%)의 순으로 답하였다. 또 해당 조사에서 현장 은퇴 후 관심사로서 무용수들은 생계 유지(36%), 노후 보장(29%), 무용 이외 다른 일(20%)을 꼽았다. 참고로 이 조사에서 무용수들은 심리적 스트레스로서 생계 부담(47%)이 무대 출연 압박(15%)보다 높다고 답하였고, 사회 기여 활동 의향(81%)이 높은 데 비하여 사회적 평가(47%)나 경제적 보상 만족도(38%)는 낮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생계 유지를 위한 대책이 1순위이며, 투잡 확보는 미룰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다.

무용인들이 투잡을 택하는 이유는 물론 무용 활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무용인들의 투잡은 1) 각자 나름 전문성을 발휘하는 무용계 내의 투잡과 2) 전문성과는 무관한 일반적 투잡으로 대별된다. 무용인들이 택하는 투잡은 무엇이 있을까. 아직은 수소문을 쫓아야 해서 조리가 없을지라도, 그 투잡들을 대충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강사(필라테스, 요가, 방과후 예술학교, 생활예술, 입시, 연기지도 등), 치료사, 레스토랑 서빙, 식료품 손질, 쇼핑몰 운영, 판매원, 조사원, 텔레마케터, 공사 현장 요원, 택배, 대리운전, 보험모집인, 모델 출연, 주말 단기 알바, 소셜 크리에이터... 최근에 떠오르는 주식 투자를 얼마나 투잡으로 삼는지 불분명하긴 해도 그 비중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위에 소개된 투잡들 가운데 1)의 범주에 속하는 투잡(무용계 내의 투잡)이 무용계 내에 얼마나 있을지 고려해보면, 결국 무용계를 벗어나 투잡을 확보하고 무용인들이 택할 투잡이 일반인들의 투잡과 많이 겹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 되고 있다. 물론 무용계 내에서의 투잡이 오늘날 줄어가기보다는 늘어나는 추세를 상정해볼 수 있다. 그래도 무용계뿐 아니라 예술계 내의 투잡이 한정되어 있고 그 수익도 제한적일 듯하다. 생계, 실업 대책, 노후 보장을 위한 대비책으로 세상 속에서 무용계 바깥에서 투잡, 부캐, N잡을 수행할 역량을 키우는 것은 점차 필수불가결해지고 있다.


그의 대반전

그는 방송댄스로 춤에 입문하였다. 2001년 경, 중학교 때였다. 중학교 방송댄스 동아리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어울리며 처음 춤을 접하게 된다. 대개는 방송댄스에 입문하는 동기로 댄스 가수의 영향을 들곤 하는데, 이런 사례들과는 달리 그에게 댄스 가수의 영향은 없었다. 다만 당시에 힙합 주제 만화들을 본 기억은 있다. 그는 인문계 고교에 진학해서도 방송댄스를 지속하였다. 교육청 문화 행사에 많이 참여하였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학업에 지장이 없는 한 방송댄스 활동을 용인해주는 분위기였다. 그가 다닌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이었고, 10명 정도의 동아리 팀원은 남녀가 각 절반 정도였다 한다.



  

김수용 글 그림 〈힙합〉 제1권(1999) ⓒ 스캔 김채현



  

김수용 글 그림 〈비포 힙합〉 제1권(2004) ⓒ스캔 김채현



중고교 시절 그와 같이 활동한 방송댄스 팀원 중에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사람은 없었다. 반면에, 그는 자기 스스로 대학에 현대무용 전공으로 진학하였다. 대학 진학 때 집안과의 갈등이 없진 않았다. 대학에 진학하니 마침 방송댄스 동아리가 있었고 1, 2학년 때 참여하였다. 이 동아리에 무용학과 학생으로는 자기 이외에 선배 한 사람이 있었을 만큼 대학의 방송댄스 동아리와 무용학과는 무관하였다. 그러나 자기가 재학한 대학의 방송댄스 동아리는 이미 80년대에 결성되어 역사가 깊었고 지금도 이어진다고 한다.

그는 대학 때 학과와 교수진의 무대 공연에도 열심히 참가하였다. 병역의무 차 군 입대 직전인 대학 2학년 때 그는 한평생 춤으로 먹고살기로 작정한다. 재학시에 혹시나 하여 예술강사 자격증 취득을 염두에 두기도 하였으나 자신과 맞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교수진과 동료들을 향해 춤을 그만두리라고 선언하였다. 그리하여 그들과 연락은 끊기다시피 하였다. 졸업 후 반년 동안 그는 집에서 칩거하며 앞으로 살아갈 방도를 궁리해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초등학교 때 읽었던 컴퓨터 프로그램이 불현듯 떠올려졌다. 그때까지 그가 경험한 컴퓨터 관련 학습이라곤 대학 때 동영상 제작 과목을 단편적으로 수강한 것뿐이었다. 이것이다! 중고교 때 잘한 학과목이 수학, 과학이었으니까 초등학교 때 읽은 그것이 정말 자기에게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과 더불어.

그래서 우선 공사판부터 찾아갔다. 컴퓨터 학원 등록금도 있어야 하고, 집을 떠나 대도시에서 기거해야 하고, 그래도 집에는 도움을 청하지 말아야 하고, 해서 우선 근 1년 동안 학비를 벌어야 했던 때문이다. 체력이 되므로 공사판에 뛰어들고 하역 작업이 널린 항만들도 찾아가 세칭 노가다라 하는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여 준비한 학자금을 그는 객지에서 학원 수강 경비로 투척하였다. 컴퓨터 언어 기초 및 응용 과정의 반년 수강료로 학원에 5백만원 정도 납입하고 아침 9시 ~ 오후 6시 오전엔 이론, 오후엔 실습 위주 강좌를 열씸 들으며 매진하였다. 그 다음 학기에는 학원 수강 국비 지원 혜택도 받았다.

학원 수료 후, 그는 VR 프로그램에서 인간 동작을 분석 입력하는 직무로 취업하였다. 그리고 두어 해 후 직장을 옮겨 공공 기관의 복잡한 앱 제작 및 관리를 대행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 기간에 그는 모두 7편의 공연에 객원 출연하였다.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내던 대선배 무용인의 공연에 춤으로 복귀하였었다. 대학 졸업 시에 춤을 그만둔다는 선언이 몇 해 사이에 무너진 것이다. 최근 1년 여 그는 또 다른 훨씬 큰 직장으로 일터를 옮기고 적응해야 했던 터여서 출연할 겨를이 없었다고 밝혔다. 당분간 출연이 유보된 편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의 역량은 그에게 있어 일테면 고속도로에서 요긴한 갓길(shoulder)에 비유됨 직하다. 고속도로에서 이런저런 상황에 대비하여 한 차선 정도의 여윳길이 필요하듯이,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갓길 덕분에 그는 춤으로 귀환하는 대반전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탄 대반전이 아닐 수 없다.



편집자 알림) 〈춤웹진〉에서는 건강한 춤 생태계의 조성과 관심을 진작하고 아울러 대안을 환기하기 위하여 춤계의 ‘투잡’ 현상을 연속 기사로 공론화할 예정입니다. 이에 따라 투잡 사례들을 널리 모으고 있습니다. 사실에 근거해서 작성되고 익명으로 접수된 투잡 사례가 기사에 참조·반영될 경우 작성인과 관계인, 관련 단체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익명으로 처리됩니다. 사례를 제공할 사람의 요청이 있을 경우 협의에 따라 취재 면담도 가능하며 취재원의 신원은 보호됩니다.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 사례 접수처: 춤웹진 공식 이메일 dancewebzine@naver.com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3. 3.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