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국립무용원’ 설립, 어디까지 왔나?
국립무용원, 춤 전공인들만의 공간 아니다
장광열_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

국립무용원 건립을 위한 대토론회가 4월 27일 오후3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이 공동 주최·주관하고 (사)대한무용협회 현대무용협회, 발레협회, 무용역사기록학회 등 18개 춤 관련 협 단체가 후원하는 모양새로 마련되었다. 토론에 앞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무용인 1,500여명이 참여한 결의대회도 진행되었다.





4월 27일 대한민국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립무용원 설립을 위한 토론회 광경. 국립무용원건립추진단의 구자훈 단장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무용예술 전용극장을 포함한 국제교류, 종합 정보 서비스센터의 기능을 담은 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제안된 것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이다.

독일 무용예술 발전의 주요 거점으로 2개의 극장과 6개의 스튜디오를 갖춘 뒤셀도르프 탄츠하우스의 운영 실태가 취재 보도되었고, 유럽의 댄스하우스 설립을 주도한 뒤셀도르프 탄츠하우스의 예술감독인 Bertram Muller를 초청(주관 한국춤정책연구소), 탄츠하우스 설립과 운영에 관한 사례와 함께 한국에서 유사한 기관이 설립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은지,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인지 등을 듣기도 했다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출범한 이듬해 2006년 김현자 무용위원장 주도로 〈춤공장 조성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기초 조사연구〉(책임 연구원 장광열 한국춤정책연구소장)가 이루어졌고, 2007년 문화관광부의 무용 중기 발전계획에 ‘미래의 무용예술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방안으로 ‘무용 종합 정보교류센터’(가칭 춤공장) 설립이 담겨졌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08년 무용전용 극장을 포함한 무용종합정보센터의 기능을 담은 공간의 설립 부지로 서울특별시가 화곡동과 성북동을 제안했으나 근접성과 협소성을 이유로 새로운 대안 공간을 찾는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무산되었다.

2017년 국립무용원 건립을 위한 국제포럼(코디네이터 최해리)이 (사)한국무용협회 주최로 개최되었고, 이듬해 2018년 국립무용원 건립을 위한 추진단(단장 구자훈)이 발족했다. 그해 7월 추진단은 프레스센터에서 국립무용원 건립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고 국립무용센터의 건립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2019년 국립무용원 건립 추진단은 〈국립무용원 건립 추진을 위한 기초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 자료집에는 공청회 당시 발제문과 추진단이 부산 경남, 충청, 인천, 광주 전남, 강원 경기 지역에서 개최한 간담회 내용 등이 실렸다. 제작비는 구자훈위원장의 후원금을 포함한 추진위원단의 성금 등으로 충당했다.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국립무용원 건립 타당성 조사연구가 이루어졌다. 사단법인 지방행정발전연구원이 시행한 이 조사 연구에는 국립무용원 설립 추진단 실행위원인 김경숙 이종호 장광열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립 무용원 건립으로 670억 원 이상의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관련 기관의 명칭으로 ‘춤공장’ ‘댄스하우스’ ‘무용센터‘ ’무용원‘ 등 다양한 명칭들이 제안되었었다.





국립무용원 설립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기 직전 토론회장의 모습과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무용가들.



필자는 ‘국립무용원’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전부터 ‘국립댄스하우스’란 이름으로 춤 전용극장을 포함한 무용종합정보센터, 춤 국제교류의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관련 기관 설립을 주장했었다.

롤 모델은 세계 최대의 무용박람회 탄츠 메세가 열리는 중심 기관인 독일 뒤셀도르프의 탄츠하우스였다. 2개의 극장과 6개의 스튜디오를 갖추고 있는 이곳은 매주 66개의 무용클래스(매월 이용자는 3천여 명), 해외 단체의 춤 공연이 연간 20회 이상 열리고 인근 숙소를 연계해 국제 협업 작업을 연계해 운영하고 있다. 당시 전차기지에 공간 제안을 건의했고, 시 정부에서 건립비를 지원했고 현재도 운영비의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운영비 30%는 클래스 수강비와 티켓 판매 등 자체수입으로 충당하고 있다.



국립헬싱키댄스하우스 내부. 문화재단을 운영하는 무용 애호가가 부지를 기부했고, 건립비용 250억원은 중앙정부와 시정부가 반반씩 부담했다. 1명의 운영 매니저와 4개의 무용관련 기관 협력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헬싱키댄스하우스는 수 십 년 동안 핀란드 무용가들의 숙원 사업이었으나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2년 전에 전면 개관했다. 총 건립비 500억원이 소요되었다.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무용을 사랑하는 독지가가 250억원 상당의 부지를 기증했고, 정부와 헬싱키 시에서 건립비 250억원을 지원했다. 현재 이 공간은 한 명의 매니저가 선임되어 있고, 4개의 무용관련 단체가 협력해 운영하고 있다.

홍콩의 구룡반도 예술공원 지구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조성되고 있는 홍콩국립댄스하우스는 내년에 개관 된다. 3년 전 무용과 연극 전용극장을 예술공원 지구에 건립한데 이은 홍콩 정부의 야심찬 무용예술 진흥정책의 일환이다.

중앙 정부 또는 지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국립 무용극장의 성격을 갖춘 유럽의 48개 공간은 EDN(European Dancehouse Network)에 가입되어 있다. 2009년 5월에 창립된 유럽댄스하우스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국립 무용센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 기관이 내걸고 있는 모토는 “국경을 초월한 무용예술 창작의 새로운 체계와 비전”이다.

2000년 대한민국의 컨템포러리댄스를 위주로 한 대형 유럽 춤 시장 진출 프로젝트였던
Kore-A-Moves(7개 춤 단체의 유럽 11개국 13개 극장 30일 투어)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EDN과의 협력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각 지역에 걸쳐 모두 19개의 국립무용단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 국립무용단은 해당 지역의 안무센터, 무용센터로서의 역할도 함께 수용하고 있다.

EDN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나라의 경우도 이탈리아는 국립무용재단, 오스트리아는 빈 무용원, 미국은 국립무용박물관, 캐나다는 더 댄스센터, 스코틀랜드는 에든버러 댄스베이스 국립무용센터란 이름으로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에 걸쳐 266개의 공공 문예회관이 설립되어 있으나 일 년에 무용공연을 한 번도 안하는 공연장이 20%나 된다. 군소 도시의 경우 문예회관이 유일한 공연장임을 감안하면 50개가 넘는 지역의 주민들은 결국 일 년에 무용공연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공연장 관계자들이 무용 공연을 하지 않는 이유로 꼽는 세 가지, “관객 모으기가 힘들다” “무용공연은 어렵다” “무용 공연을 초청하려 해도 어디로 연락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종합정보서비스센터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국립무용원이 설립된다면 한 번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수억 원 씩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제 무용축제의 경우 외국팀을 불러 서울에서만 공연을 시키고 돌려보낸다. 지역에 있는 무용가들과 주민들은 외국 무용단의 내한 공연을 보기가 쉽지 않다.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아닌가? 국립무용원 건립은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지역민들과 서울에 편중된 문화예술의 불균형을 해결 할 수 공간이 될 것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공연과 창작 활동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 중 최승희와 윤이상은 북쪽에서의 이력도 화려하다. 그러나 작곡가 윤이상은 고향인 통영을 중심으로, 윤이상국제음악제와 윤이상 극장 등을 통해 현재도 그의 음악유산이 활용되고 있다.

무용가 최승희의 경우는 어떤가? 낙타 문제를 다루어 사회적 문제를 담아냈던 〈마리아 콤플렉스〉(안무 박인숙), 남북 분단을 소재로 했던 창작 춤 〈비무장 지대에 서서〉(안무 임학선) 등 무용가들의 현실참여적인 작품은 어떻게 기록, 보존되고 있을까?

남북통일을 위해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는 최승희의 춤 문화유산 등을 연구, 보급하는 아카이브의 기능도 국립무용원이 수행할 기능 중 하나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 년에 200건의 외국 단체 내한공연이 이루어졌었다. 지금 대한민국 무용계에서는 국제 무용제란 타이틀을 달고 열리고 있는 국제무용축제만도 20개가 넘는다. 매달 해외에서 공연을 갖고 있는 춤 단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제대로 돌아보면 거품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의 무용가들이 일급 공연장에서, 양질의 관객들 앞에서, 해당 국가의 언론의 조망을 받으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공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유명 공연장은 진입조차 못하는, 네트워킹 부재로 더 많은 인근 지역에서의 공연을 성사시키지 못한 채 일회성의 방문 공연으로 그치고 있는 대한민국 무용예술계의 국제교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국제교류 요충지로서의 기능도 국립무용원은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국립무용원 타당성 조사결과에 나타난 국립무용원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요약하면 다음의 4가지이다.
 1)무용전용극장: 창작, 제작, 유통의 공간
 2)무용종합정보센터의 기능 : 무용 프로그램 확산 서울 중심에서 대한민국 전역으로
 3)무용예술교육의 요충지 :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극장, 커뮤니티댄스 등)
 4) 국제교류의 플랫폼 : 정보제공, 네크워킹 강화,전략적 춤시장 진출, 국제협업
여기에 ‘춤 문화유산의 보존과 발전 기능: 무용가들의 기록 보존과 연구’를 더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국립무용원이 설립된다면 그곳은 무용 전공자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1) 무용예술을 통한 국민복지 실현: 장년층 인구, 다문화가정, 장애인, 소외 계층
 2) 국가 이미지 고양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
 3) 무용예술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
 4) 서울시민 만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향한 춤 프로그램 보급의 요충지가 될 것이다.



국립헬싱키댄스하우스 안에 있는 무용전용 극장 내부



춤 선진국이라는 여타 나라와 비교해 보았을 때 우리나라는 무용예술을 둘러싼 지원‧교육‧창작‧공연 여건 등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비교했을 때는 우위에 있다. 문제는 보이는 외형적인 것에 비해 운용에서의 질(質)이 뒷받침 되지 못하고 정작 무용예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 탄력적으로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변화된 춤 환경을 반영한 적절한 지원 시스템, 서울 중심이 아닌 전국적인 관점에서의 무용예술 발전을 포괄하는 정책,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들의 삶의 질과 연계된 된 무용 프로그램 운용체계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아젠다들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운용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의 부재가 가장 큰 핸디캡이다.  

이제는 변화된 대한민국의 춤 환경을 고려한, 자율성을 추구하는 무용계의 움직임을 지원할 수 있는, 무용 예술가와 국민들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방안이 실현되어야 한다. 새로운 형태의 체계적인 국제교류를 위한 양방향 접근법이 필요하며, 문화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되어야 한다.  

관련해 무용예술의 고유성을 추동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 기관의 설립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문화적 협력과 작품의 보급 처이면서 동시에 지역사회의 예술을 연계하는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발원지, ‘국립 무용원’(영문표기로 Korea National Dance House 제안)의 건립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국립 무용원’(Korea National Dance House)의 설립으로 대한민국은 좁게는 한반도, 넓게는 아시아의 춤 문화, 더 크게는 전 세계 춤 문화의 중요한 발신지가 될 수 있다

국립무용원의 성격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창작,공연, 교육, 연구,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등 무용예술 관련 종합적 활동이 펼쳐지는 공간이자 열린 공동체” 가 되어야 한다.

미국의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사는 무용예술에만 지원을 한다. 가장 열악한 예술 장르를 위한 차별화 된 기업의 예술지원을 시행하며, 역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선진 외국의 문화정책은 경쟁력 약한 예술장르일수록 공공 지원을 더욱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 1년에 무용공연 건수가 3천 건 넘을 만큼 성장했지만, 춤 전용극장 하나 없는 곳, 이제는 대한민국 정부가 화답할 차례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춤을 출 수 있는, 춤을 볼 수 있는, 춤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장광열

​춤비평가.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5년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를 위해 설립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대표, 한국춤정책연구소장, 서울과 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무용과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23. 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