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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가 본 춤 〈용호상박〉
봄과 함께 찾아온 새로운 안무 형식
손인영_NOW무용단 예술감독

 예년에 비해 푸근했던 겨울의 끝자락에 오랜만에 아르코 대극장을 찾았다. 봄이 시작되면서 무용계 원로들의 춤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오로지 춤 하나로 한평생을 사신 분들(국수호, 김매자, 배정혜)의 공연, 그 이름만큼이나 기대되는 공연들이다. 다들 칠순을 바라보시지만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게 정열적으로 춤 작업을 하고 계시니 중견에 접어든 무용가로서 원로들의 열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모두 1980년대 창작무용가 1세대로서 한국창작무용계를 뜨겁게 달구던 분들이다. 이들이 벌써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니 격세지감에 헛헛한 마음마저 든다.
 한국무용계는 요즘 새로운 지평을 바라보고 있다. 대안과 방향을 상실하고 좌초지경에 놓여있던 한국무용계에 창작을 지원하는 새로운 기금이 형성되어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고, 소박하고 텁텁한 들판의 춤들이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는 반면, 국립국악원은 정재무를 고품격의 의식적인 국무로 재정립하고 있다. 전통춤은 무형문화제의 자물쇠를 풀고 자유로운 가운데 단아한 교방무들이 새롭게 창작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국춤의 형식적인 면에 있어 획기적인 대안을 ‘국수호 춤 50주년’에서 발견하였다. 새로운 춤의 형식은 바로 <용호상박>(안무_국수호)이다.

 


 용호상박은 3월 5-7일 동안 벌어진 ‘국수호 춤 50주년, 춤의 귀환’ 무대에서 신작으로 소개되었다. 이 작품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춤의 전체적인 안무형식 때문이다. ‘용호상박’은 이백의 시에 나온다고 한다. 주제에서 용과 범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호기심을 끈다. 이 춤을 주의 깊게 본 이유는 기존 춤의 주제를 그대로 차용하면서 움직임을 독특하게 만들던 전통적인 작품 창작의 방식을 살짝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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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상박>이 주목받는 몇 가지 이유

 이 작품의 특이점을 몇 가지 나열해 보면, 가무악의 형식을 차용하면서 주제와 내용이 음악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 삼국지의 적벽대전(赤璧大戰)을 희화화하였는데 남성적이고 활기찬 춤사위와 ‘적벽가’의 걸걸하고 힘이 있는 판소리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판소리 ‘적벽가’의 풍자적인 부분을 춤으로 잘 표현하였다는 점, 4명의 고수들이 내는 남성적인 힘과 소리는 호방한 남성춤과 잘 어우러져 여성무 일색의 교방춤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 등이다.
 춤의 움직임과 주제 또는 부수적인 소재들을 새롭게 창안하는 것은 그 동안 많이 있어왔고 또 전통을 현대화하는데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의 한국춤의 형식, 즉 기악 위주의 음악에 춤을 얹는 안무방식에서 벗어나 판소리와 전통춤이 만난 <용호상박>은 상당히 신선하였다. 한국춤의 안무형식은 탈춤과 같이 드라마가 있거나, 교방춤과 같이 감정과 농현의 울림으로 춤의 형식을 잡거나, 학춤과 같이 자연의 모습에서 춤을 끌어오거나, 움직임 그 자체가 주는 미감이 춤의 형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가·무·악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은유적인 풍속화를 보는 듯한 춤의 미감을 보여주었다.
 판소리는 요즘 창작춤의 음악으로 자주 쓰이기도 하는데 <용호상박>에서는 전통춤과 판소리를 융합시켰다. 판소리는 드라마가 강하기 때문에 춤이 드라마에 끌려가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드라마의 사실적 표현보다 춤을 은유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마치 움직이는 풍속화를 보는 듯하였다. 특히, 중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판소리의 내용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춤 움직임을 추상적이면서 풍자적으로 은근하게 드러낸 점이 독특했다. 적당한 거리감과 크고 작은 동작들이 어우러지면서 마치 몸으로 대화를 하는 듯, 눈과 눈이 만나고 감정과 움직임이 교차하면서도 지나친 감정의 솔직한 표현을 느슨하게 함으로써 격이 있는 풍속화가 되었다.




 호방한 들판의 춤들이 사라지는 이즈음 무대에서는 주로 화사한 교방춤들이 무대를 이끄는데 <용호상박>은 남성춤이라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남무는 <학춤>이나 <한량무> 등이 자주 추어지는데 남무가 많지 않는 한국춤계에서 무대화된 남무는 또 다른 수확이다.
 또한 판소리공연에서 고수가 주로 한 사람인데 반해, 이번 공연에서는 4사람의 고수가 장단과 소리를 냄으로써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고 있다. 음악 공연에서는 이런 형식이 자주 보이는지 알 수 없으나 춤판에서는 처음 시도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에서는 또한 판소리 창자와 고수가 주고받는 소극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군무로 확대시킴으로써 솔로춤 위주의 전통춤과는 차별성을 두었다. 특히, 한국춤에서 듀엣은 남녀 사랑가 위주나 한국 창작춤에서 남자들의 듀엣이 보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남성 듀엣은 흔치 않기에 <용호상박>은 그런 점에서 가치가 있다.
 현대무용에서 가끔 두 남자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 작품들을 보면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보다 숨겨진 내면의 울컥거림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감 잔잔하게 젖어드는 미감을 느끼게 한다.


 <용호상박>도 용과 범이 싸우는 듯 하면서도 적당하게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흐뭇함이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서 판소리의 풍자성을 움직임으로 풀어낸 부분 또한 재미를 주었다. 무엇을 말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고 작고 소박한 움직임 속에서 두 사람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드러냄으로서 샤막 안에서 움직이는 영상을 보든 듯한 묘한 감흥이 있었다.
 용과 범이 큰 동작으로 싸우는 와중에도 몸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대화를 하는 듯이 싸우다가 용이 벌꺼덕 뒤로 나자빠지는 장면은 들판의 민속춤에서 보이는 직접적인 통쾌함 보다 미적 은유가 드러나는 풍류였다. 그것은 마치 학춤이 가진 은유적 표현과 닮아 있었다. <동래학춤>이나 <양산 사찰 학춤>은 학의 움직임을 몸으로 상세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학의 움직임을 연상하게 하는 고난도의 은유적 표현으로 인해 춤의 품격이 드러난다.
 춤의 형식이나 음악의 독특함 그리고 움직임의 은유적인 풍류뿐 아니라 대청마루에서 추는 춤을 보는 듯한 현실감 있는 무대가 새로운 볼거리였으며, 창호지 문이 열렸다 닫혔다하는 와중에 보이는 움직이는 풍경화는 현대와 전통이 만나는 초현실적인 미의식을 느끼게 하였다.
 또한 통상적으로 이런 대청마루의 춤에서 나올 법한 조선시대 의상을 탈피한 것 또한 과감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대격차가 많은 국수호와 이정윤 두 무용수의 멋과 맛은 작품의 품격을 더욱 격상시켰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한참 물이 오른 젊은 무용수의 기를 능가하는 원로의 열정에 놀라울 뿐이다.




이제는 기방의 춤이 무대예술로 품격화 되는 시기

 들판의 춤이 기방에서 예술적인 춤으로 승화되어 오늘날 전래된다면, 이제 기방의 춤이 무대예술로 품격화 되는 시기이다. 춤의 답습에서 벗어나 춤의 형식적인 변화를 꾀할 만큼의 시대적 변화와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답습은 늘 보아오던 것이기에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기존의 것과 상당히 다른 형식의 춤을 만나게 되면 대부분 어색할 수도 있는데 <용호상박>은 새로운 안무형식임에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는 급격한 서구문화의 이입이 없었다면 아마도 <용호상박>과 같이 자연스럽게 춤의 유연한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변동은 필수적이다. 어떤 방식으로 문화의 융합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문화변동이 일어난다. 불교문화, 유교문화, 서구문화의 강력한 문화유입 속에서도 한국의 춤은 늘 휘청거리면서도 기층문화와의 융합을 꾀하면서 변화되어 왔다. 서구와의 문화융합은 벌써 100년의 세월을 흘려보냈으나 아직도 실험중이다. 실험에 인색하지 않을 때 창조는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2014. 04.
사진제공_한용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