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순주의 춤 〈남녘 못 달그림자 곱기도 하여라〉
요절한 청년의 정신을 그리다
권옥희_춤비평가

 효명이 누구인가. 22(1830년)살에 요절한 왕자, 생전 이름은 '영'. 궁중무용의 창사와 가사를 직접 짓고 전체 레퍼토리를 선정, 기획하였으며 조선조 말까지 전해지는 53종의 궁중정재 중 26종의 정재를 예제하고 재창작한 조선의 문화인물.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휘둘려 무기력증과 두통을 앓던 부왕의 명으로 순조 27년(1827년) 2월18일부터 30년(1830년)5월 6일 급서하기 까지 약 3년 3개월 동안 대리청정을 하게 된 영민하고 효심이 깊었던 세자. 햇빛을 의미하는 효명의 생전 이름 '영'. 이는 효명보다 1세기 전 춤을 사랑한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를 일컬었던 '태양왕'을 연상케한다. 춤을 사랑하고 잘 만들었으며 정치적 메시지와 정책을 궁정춤으로 표방하는 무용정치를 펼쳤던 두 남자, 햇빛과 태양이라!
 춤과 시를 사랑한, '짧은 생을 다녀간 꽃다운 청년' 효명을 모티브로 김순주(대구시립국악단 수석)는 <남녘 못 달그림자 곱기도 하여라>(12월 5일,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다소 긴 제목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효명이 만든 '춘앵무'와 당시 효명의 정치적 부대낌을 교차 편집하며 풀어낸 김순주의 창작춤은 전통춤이 주는 지루함은 덜어내면서 전통의 가치를 재조명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무대 중앙에 천장에서 내려뜨려진 큰 한삼이 걸려있다. 궁중무에 대한 춤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궁중연희에서 한삼은 중요한 의상 소품이다. 왕의 안전에서 추어지는 춤은 무희들의 손과 발, 이가 드러나 보이면 안된다. 때문에 손에는 한삼을 끼고 창사를 할 때는 한삼 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를 해야 했다. 
 흰색 의상을 입은 세자빈(김정미)의 솔로, 춘앵무의 창사 빈정월하곡이 마치 구음처럼 들린다. 권력투쟁의 한 가운데 선 효명세자(박민우)의 처지를 추는 듯한 춤의 자태와 기량이 아름답고 빼어나다. 세자빈의 움직임을 따라 천장에서 큰 네모 틀이 순차적으로 무대 안쪽에서 객석 쪽으로(5개) 내려온다. 마치 세자빈을 가둘 것처럼. 매우 극적이면서 감각적이다. 정치적 상황에 처해져 있는 효명과 그를 지켜보는 세자빈의 심경이 잘 드러나는 장이었다. 무대 장치로 인해 춤이 돋보이고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케 하는, 중첩된 이미지가 잘 살아났다. 

 효명과 세자빈의 춤과 함께 20여명의 군무진이 같이 추는 장.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의미하는 검은색 의상을(폭력과 권력은 대체로 검다) 입은 남성들의 각진 군무와 그에 대항하는 효명의 춤. 이어 세자빈과 효명의 춤. 달그림자 아래 추는 춤일 수도, 혹은 한쌍의 꾀꼬리를 의미하기도 하는 노란색 의상의(춘앵무의 의상 색) 효명과 세자빈의 춤이 아름답고 절절했다. '춘앵무'의 창가 가사를 춤에 실은 듯.

 전통악기 박을 거듭 치고 난 뒤, 화문석을 들고 춤추듯 걸어 나온 무용수들이 다섯 장의 화문석을 무대에 깐다. 이어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색 옷을 입고 중앙(김순주)과 사방 네 곳에 깔린 화문석 위에서 추는 춘앵무. 춘앵무를 추고 있는 주위로 흰색 무용복에 손에 짧은 한삼을 낀 무희들이 객석을 향해 한 팔로 머리를 괴고 비스듬히 눕는다. 방자한 자태로 마치 '춘앵무'를 보고 있는 관객을 감상하는 듯, 혹은 춘앵무를 보는 관객을 통해 춘앵무를 보는 것 같기도 한 무용수의 배치가 다분히 철학적이고 도발적이다. 비스듬히 누워 연희되고 있는 '춘앵무'에 마치 추임새를 넣듯 한 팔을 들고 놓고를 반복하는 무희들. 마지막, 시작할 때 무대에 걸렸던 한삼이 천장에서 바닥으로 스르륵 떨어진다. 깜깜한 무대, 떨어진 한삼만을 비추는 조명. 처연하고 아름다운 장이었다. 김순주가 말하고자 하는 우리춤의 위치와 전통의 의미, 아름다움이 함께 읽히는 무대였다.


 

 

 효명과 세자빈의 춤이 이어질 때 마치 환영처럼 춘앵무 의상을 입은 무희(김순주)가 무대 한 쪽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조명의 효과라든가, 효명이 처음 등장할 때 화문석을 마치 칼처럼 들고 나오게 한 안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 좋은 연출이었다. 효명을 조명하는 작품이지만 춤을 잘 추는 김정미(세자비)를 전지적 관점을 가진 인물로 설정하여 작품을 풀어낸 구성 또한 좋았다. 반면 서막의 오케스트라박스를 이용한 북의 군무(두드림)는 전체 작품이 주는 격과 맞지 않는 아쉬운 장이었다. 오히려 모던함을 입힌 전통음악으로 풀어냈더라면 좀 더 격조 있지 않았을까.
 대구 한국무용의(계명대 장유경교수 계열) 특징 중 하나, 현대적이고 세련된 형식미를 들 수 있다. 그 세련미는 춤을 풀어내는 안무의 구성과 무대미술, 음악 등에서도 나타나지만 의상도 한 몫을 한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모던한 원피스와 투피스 의상(영화 '매트렉스' 에서 레오가 입은 검정색 원피스를 떠올리면 된다)이 그것이다. 한국무용의상이라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고정관념을 깬 모던하고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의상으로, 이번 무대도 무희들이 입은 흰색에 가까운 원피스와 색동의 한삼, 효명과 세자비가 입은 노란색 투피스, 검은 세력을 의미하는 무사들이 입은 검정색 원피스가 등장, 춘앵무의 전통의상과 함께 인상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효명이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라는 말은 그만두자. 지금 중요한 것은 효명세자의 정신이다. 요절한 효명이었기에 그 안타까움을 춤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하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루이 14세는 알지만 효명은 모르고 있었던 이들에게 효명의 존재를 일깨워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공연이었다. 전통의 가치를 되짚어 보고, 전통유산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춤으로 관객들과 소통하였다는 점은 김순주가 거둔 또 다른 성과이다.

  곱기도 하구나. 
  달 아래 걸어가는 그 모습
  비단 옷 소매는 춤을 추듯
  바람에 가벼이 날리노라.

 효명이 지은 '춘앵전' 속의 가사다. 섬세한 감성을 지닌 아름다운 청년이었으리라.
 선거전이 한창이다. 문화와 예술을 중시하고 예악으로 하는 교화정치가 필요한 때이다.

2012.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