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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대로 써내려간 마스단자 이야기
양병현_안무가

마스단자(MASDANZA)는 북대서양 스페인령의 카나리아 제도에서 1996년에 시작한 현대춤축제로서 올해는 10월 8~23일 열렸고 안무경연대회도 함께 열린다. 나는 안무경연대회에 참가한 후 투어에도 함께 하였다.

자,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난 글의 형식이 정직하지도 능숙하지도 않을 것이니 주의하시길. 글재주가 없어서 내년에는 실력을 늘릴 겸 무용 작품을 소설로 만들기로 했다. 사설이 많을 것이다.

솔로 작품 〈꽃 마음〉으로 마스단자에 가게 되었다. 작품 〈꽃 마음〉은 해가 뜨기를 기다리던 꽃의, 해가 뜨고 저물 때까지 이야기이다. 마스단자 참가 선정 소식을 듣고 안도했다. 작년에 단체 ‘초록고래’ 창단한 후 지원서를 작성하고 제출했지만, 기대와 달리 모두 탈락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작품을 사랑하지만, 작품을 선보일 기회조차 없어서 단체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었다. 다행히 올해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조금씩 생겼고, 마스단자에 출전할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마스단자에는 테크니션을 동원할 수도 있고 혼자 갈 수도 있다. 단, 테크니션의 비행기 티켓은 지원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단체 멤버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함께 경험하고 싶은 마음들이 들어서 함께 가기로 했다. 미리 조명큐시트나 요청 사항을 문서화해서 보낼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외국 공연이라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기에 멤버와 함께 가는 것 든든했다. 테크니션은 가서 꽤 많은 역할을 수행하는데, 특히 안무자 및 무용수가 바쁠 때 거의 모든 소통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영어 능력은 필수이다. 우리는 출국을 기다리며 영어와 작품을 꾸준히 준비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출국이 쉽지 않았다. 이번에 일본 요코하마댄스컬렉션에 본선에 나가게 되었데, 입국 제한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다행히 스페인은 제한이 없었고, 마음 편히 준비하려 했는데 항공사에서 전화가 왔다. 한 달 주기로 입국 제한과 격리국가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 환승 국가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뿐이었다. 하필 출국이 주말이어서 대처할 방법 또한 없었다. 코로나 사태로 출국 전에 ‘백신접종증명서’와 ‘음성판정확인서’를 영문 버전으로 발급받아야 했다. 특히 음성판정확인서 영문 버전은 선별진료소에서 발급받을 수 없다. 대학병원에 가면 국문 버전을 발급할 수 있으나 영문 버전은 발급이 불가하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공항에서 검사받으면 즉각 확인서를 받을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따라서 여러 확인서를 받을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선발진료소에 문의를 했고, 그중 동작구보건소에서 메일로 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아 운좋게 발급받았다. 우리는 주말에 출발하기에 확인서를 받기가 더 쉽지 않았다. 지금 시기에 외국을 나가게 된다면 주말은 피해서 가기를 추천한다. 빠뜨린 서류가 있으면 입국이 불가하기에 몇 번이나 체크하며 정신없이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에 도착했는데 정말 놀랍게 텅 비어있었다.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느껴졌고, 기분이 묘했다. 이런 시기에 외국에 가게 되었으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새벽 비행기지만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우린 저녁 7시쯤 공항에 도착했고, 사람이 너무 없어서 탑승 수속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시간이 너무 많았지만, 코로나라 면세점도 일찍 닫는 것 같았다.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식당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음식을 샀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구석에 갔다. 우리는 댄스 필름을 촬영하고 핸드폰 유심을 변경하는 등 여유를 즐겼다. 꽤 긴 시간 대기했지만 설렘이 있어서 지루하진 않았다. 보딩 타임이 되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직항이 없어서 암스테르담, 마드리드를 거쳐서 스페인의 그란카나리아로 가야 했다. 환승시간 포함, 20시간 정도 소요됐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에 할 초록고래의 올해 신작 작업 〈바람소근〉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이동했다. 환승할 때 3~4시간 정도 텀이 있었는데 심사받고 게이트 넘버를 찾고 이동하니 생각보다 여유롭진 않았다.

그란카나리아에 착륙, 캐리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무용수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찾고 나갔더니 마스단자 관계자 분들이 푯말을 들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푯말과 함께 사진 찍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차 밖으로 너무나 여유로운 모습들이 보였다. 도시의 분위기는 굉장히 여유롭고 따뜻했다. 그란카나리아는 ‘영원한 봄’이라고 불리며 사계절 내내 봄 날씨 같다고 한다. 정말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고 치안도 잘 되어 있고 사람들도 너무 친절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관계자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올라가서 짐을 풀고 코로나 검사장으로 이동했다. 대만팀, 멕시코팀과 함께 이동했고, 멕시코팀과 대화를 나눴다. 미숙한 실력으로 대화를 나눴지만 하다 보니 익숙해지며 자신감이 생겼다.

마스단자는 세계 각지 안무가가 참가하는 페스티벌이다. 참가하는 동안 다른 팀들과 함께 같은 호텔에서 머물게 되는데 공연을 하는 것보다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교류의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조식 먹을 때뿐 아니라 극장에서 다른 팀들과 지속해서 마주치며 대화가 오고간다. 다른 팀들도 각 나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예술가들로, 그 나라의 페스티벌이나 문화 등에 관해서 얘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서로의 춤을 공유하기도 했다.

첫날, 마스단자의 스태프가 길을 거닐며 참가자들에게 극장 주변을 소개해줬다. 출연진 및 스태프는 후문을 이용했는데 후문과 정문의 경치가 완전히 달랐다. 정문은 굉장히 클래식하고 역사가 묻어있는 모습이라면, 후문은 실용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주변 거리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날씨 때문인지 굉장히 여유롭고 따뜻했다. 거리에서 사람들은 핸드폰을 하지 않았고 벤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서로 인사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예전에 잃어버렸던 정서를 다시 느끼는 기분이었다. 이 섬은 관광지라든지 명소가 많은 곳은 아니었지만, 잃어가고 있던 풋풋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줬다. 마치 고향 같았다.




곳곳의 마스단자 현수막




축제 기간은 10월 20~22일이었다. 영원한 봄의 도시라 그런지 매일 따뜻했고, 비가 오지 않았다. 나는 21일 공연이어서 19일에 리허설을 진행하고 20일에 리허설룸을 신청했다. 17일에 도착한 우리는 17, 18일에 자유시간을 가지며 섬을 구경했다. 프리 기간에 도시를 그저 걸어 다녔고, 현지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서 나에게 그 도시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눕거나 앉아서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거나 경치를 구경하는 듯했다. 넓은 광장 같은 느낌이었는데 만남의 광장으로 꾸며두지 않아도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도시 곳곳에 마스단자 현수막이 굉장히 많이 걸려있었는데 마스단자가 굉장히 큰 축제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현지에 있는 예술분야 종사자가 아닌 대중들이 공연에 관심을 많다는 것이었다.

식당에 가면 메뉴판이 대부분 스페인어로 적혀있는데 거의 모든 식당이 QR코드가 있어서 스캔하면 영어로 정보들이 나왔다. 음식은 간이 짜거나 싱겁지 않았고, 쌀이 주식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주로 먹던 음식들이었다. 음식들이 입맛에 잘 맞았던 게 기억난다.




극장




19일에 리허설을 진행하는데 극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친절했다. 대기 공간으로 무대 바로 뒤에 작게 댄스플로어가 있는 공간이 있는데 앞 팀의 리허설이 끝나기 전까지 워밍업을 할 수 있었다. 앞 팀이 끝나고 리허설을 시작하는데 60~90분 정도 리허설을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여유로웠다. 조명감독과 대화하며 먼저 조명을 하나씩 구성해나갔다. 조명감독은 수동적이지 않고 작품을 이해하려 하며 의견들을 내주었다. 상당히 넓은 대극장이었는데 천장이 옛날 유럽의 극장모습 그대로였다. 화려한 장식들로 이뤄져 있었다.




리허설룸




20일에 극장 3층에 위치한 리허설룸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곳은 유광의 검정 플로어였는데 처음 보는 바닥이라 인상 깊었다. 그리고 창문이 넓게 있어서 탁 트인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고, 햇빛이 바닥에 비춰 반사됐다. 리허설룸은 예약 후 사용하지 않는 팀도 있어서 취소되는 타임마다 스태프에게서 연락을 받았고, 그때마다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20일, 첫 공연이 시작됐다. 참가팀들에게 초대권을 제공해줘서 관람할 수 있었다. 일반 관객석과 참가팀의 자리는 분리돼 있었다. 참가팀의 자리는 사이드에 따로 마련돼 있었다. 경연은 솔로 부문부터 3팀, 코레오 부문 3팀으로 구성돼 있었다. 다른 나라의 팀들 모두 정말 감명 깊었다. 문화가 달라서인지 모든 팀들이 다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극장 앞에서 퍼포머들을 기다렸다. 그들이 극장 앞으로 하나둘 나왔을 때 디렉터들과 관객들은 자연스레 모여들어 작품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저녁 8시에 시작해서 9시 30분~10시쯤에 끝이 났지만 여전히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밤의 거리에서도 위화감이 없었다.




양병현 〈꽃 마음〉




둘째날, 〈꽃 마음〉 공연 날이었다. 공연 두 시간 전부터 리허설룸이 사용가능했다. 여유롭게 야외 공원에서 연습하고 식사하며 휴식했다. 6시부터 극장에 들어서서 몸을 풀었다. 리허설룸과 극장 무대는 거리가 좀 있었고, 공연 전에 1층에서 미리 대기해야 했다. 내 앞 순서 작품이 끝이 나고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이 들렸다. 내 차례가 되고 무대에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공연을 하는 동안 관객들은 숨죽이고 봐주었다. 끝나고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오는데 솔로로 대극장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을 때 감동이 밀려왔다.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을 진행하고 환복 후에 극장 앞을 찾아갔다. 운 좋게도 많은 관객들이 공연을 좋게 관람해주셔서 일반 관객들에게서 질문과 관람평을 듣고 디렉터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La Cicer 해변




마지막 날은 도시가 너무 아름다웠지만 공연이 너무 보고 싶었다. 평소에 공연을 이렇게 필사적으로 보러 다니진 않았는데 너무 좋은 공연들이어서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공연 막이 내리고 극장 옆 바닷길을 따라 쭉 걸었던 기억이 있다. 특별히 꾸며져 있지 않아서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졌고 마치 여기가 내 일상인 것처럼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다음 날 경연 결과발표가 났다. 아쉽게도 솔로 부문에서 수상은 못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다른 모든 팀들이 서로 존경을 표했다. 우린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 얘기를 나누고 근처 식당에서 마주하게 되면 또 같이 얘기를 나누고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교환했다. 밤에 시상식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수상은 없었지만 Batarita 디렉터의 초이스로 2023년에 헝가리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정말 감사했다. 나에게 뜻깊은 작품이었기에 한 번 더 공연할 수 있게 되어 더욱더 기뻤다.

그란 카나리아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하루의 프리기간이 있었다. 프리기간 동안 주변의 La Cicer해변으로 갔는데 정말 광활한 바다에 짙은 초록색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파도가 세서 인도의 난간 위까지 파도가 넘어왔다. 사람들은 대체로 해수욕을 하지 않고 태닝을 하거나 앉아 있었다. 바다에 들어가 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파도가 너무 세서 몇 번을 뒤집혔다. 그저 바라보기에 너무 아름다운 바다였다.

우리는 그란카나리아에서 LA GOMERA, LA PALMA, EL HIERRO, LANZAROTE, FUERTEVENTURA, 다섯 섬을 돌아다니며 투어를 진행했다. 투어는 몇 팀을 선정해 의사를 물어보고 진행된다. 감사하게도 우리도 투어에 선정되어 참여하기로 했다. 첫 번째 섬에서 공연이 끝나고 다같이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짧은 기간에도 정이 많이 들어서 투어를 가지 않는 팀들과 작별을 하는 게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LA GOMERA_극장




LA GOMERA는 배를 타고 이동했는데 야외 테라스에서 마드리드의 팀들과 댄스필름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LA GOMERA에서 함께 바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공연장은 화이트큐브였는데 창문이 있어서 햇볕이 드는 특이한 구조였다. 소형 극장이어서 관객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웠고 관객들의 숨 쉬는 소리까지도 들렸다. 첫날의 공연이 끝나고 다같이 식사를 하고 숙소로 가는 길에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이동했다.




LA PALMA_솟구치는 화산




두 번째 섬 LA PALMA는 너무 인상적이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최근에 이 섬에서 화산이 폭발해 도시 전체를 화산재가 덮고 있었다. 활기를 잃은 이 도시의 사람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건물 위 지붕들에도, 바닥에도, 건물의 갈라진 틈들에도 화산재가 덮여있었다. 도착한 날 밤에 차를 타고 화산을 보게 됐는데 꽤 떨어진 거리에서도 화산이 솟구치며 폭발적인 힘이 느껴졌다. 화산은 솟구치는 동시에 흘러내리며 조금씩 지면을 녹이는 모습이 보였다. 공연 날 공연을 하고 도시의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적어서 남겨두었다. 극장 밖을 나왔는데 어린 친구들이 많이 보러왔었다. 요즘 K-Pop의 영향 때문인지 나와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아 갔다. 작품이 마음속에 스며 들었다는 관객들이 있었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




EL HIERRO




EL HIERRO로 이동했는데 정말 아름다운 시골마을이었다. 광장에서는 합창이 울려 펴졌다. 편의점도 없을 정도로 시골이었는데 공연 전에 마을을 걸어 다니며 마을 사람들과 인사하고 대화를 나눴다. 관객들의 연령층은 40대로 보였다. 평소 공연 때와 다른 반응들이 오갔는데 굉장히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마드리드팀의 친구가 생일이어서 멕시코팀과 별을 보러 갔는데 하늘에 정말 꽉 찬 별을 봤다. 함께 노래를 들으며 별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선물해줬다. 별을 보러가는 길에 멧돼지를 봤지만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LANZAROTE




LANZAROTE섬은 호텔의 바로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는데 바다가 수심이 낮아서 아이들이 안쪽의 바다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있는 동안에 머리가 많이 길어서 스페인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공연에 들어갔다. 대극장이었는데 사람들이 꽉 찼었다. 난 첫번째 공연 순서로 시작을 열었지만, 관객들이 마음을 열고 관람해주어서 감사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장과 관객들이 찾아와 과분한 찬사를 보내주었다. 우리는 바다 앞으로 이동해서 함께 식사하고 새벽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숙소로 돌아가 바로 앞바다에서 삼십분쯤 넋 놓고 바라보았다. 끝날 즈음이 되니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는 게 느껴지며 아쉬움이 밀려왔다.




마지막날, 참가자들과 함께




마지막 섬으로 이동했는데 마찬가지로 오션뷰에 4성급 호텔이었다. 로비에는 나비가 날아다녔고 최고로 아름다운 경치였다. 바다 한가운데 작은 가게가 있었는데 모두 거기모여 선탠하고 술을 마시며 즐겼다. 서로 격려하며 마지막 공연을 했다. 공연이 끝이 났고 다같이 식사를 하고 자리를 뜨기가 아쉬워서 밤이 늦도록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꿈같은 모든 일정이 끝이 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여태까지 경험한 순간들이 믿어지지 않았다. 외국에 대한 로망이 없었는데 외국에 살면서 평생 이렇게 투어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단자에 참여하는 동안의 시간을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섬들과 사람들, 아직도 다른 안무자들과 무용수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마스단자에 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다 뒤로 제쳐두고 참여할 것이다. 정말 좋은 정서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양병현

2020년 초록고래 창단. 춤을 댄스 필름이 아닌 대사가 있는 단편 영화로 옮기거나 소설화하는 작업 등을 하며 활동 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엔 자연과 정령들을 소재로 작품을 풀어나가고 있다. 상상에서 출발해서 몸을 여는 ‘양병현 메소드’를 모색 중이다. 대표작: 2015 〈멘도롱 선샤인〉(2015) 등.​

2021.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