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Sidi Larbi cherkaoui & Demian Jalet 〈Babel (words)〉
문화적 균열에 대한 생기 충만한 해법 내놓은 식성좋은 악동들
이지현_춤비평가

 2013 MODAFE(한국현대무용협회 주최, 회장 한선숙)가 ‘Dance, Life’를 주제로 5월 춤축제를 스타트하였다. 현대무용은 다른 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편이며, 현재진행형의 속성과 무엇으로 규정될 수 없는 다양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현재형으로서의 컨템포러리 댄스 축제는 주로 최근의 동향과 흐름을 담아내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주제를 갖고 콜렉팅하기가 쉽지 않은 특징을 갖고 있다. 이번의 ‘춤, 삶’이라는 주제는 어찌보면 컨템포러리성과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간극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삶이라는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 현대춤의 뿌리에서 다시 지금의 진행형 춤들을 돌아보자는 심기일전 쉼표이자 컨템포러리를 ‘삶’이라는 뚜렷한 하나의 관점을 갖고 바라보자고 하는 선명한 의지로 보여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 현대무용의 역사는 개인성에 대한 존중, 다양성과 창의성을 배양했다기 보다는 외래적인 것의 수입성과 그로 인한 형식성 편중, 게다가 현대춤의 자유로움을 통제하고야 말게 되는 어떤 보수성으로 몇가지 난점을 갖고 있다. 창의성과 그것의 바탕이 되는 존중되어야 할 개인성은 예술적 동력이 없는 보수성 앞에서는 너무나 나약해져 한국의 컨템포러리 댄스는 열기도, 생기도 잃은 채 출세와 돈벌이의 빛좋은 수단이 되거나 그것을 가리기 위해 모호한 추상성과 그것과 파트너인 무겁고, 우울한 정조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탈피해오지 못하고 있었다.
 올해로 32회째를 맞는 모다페는 자기 통찰력이 담긴 주제 선정을 통해 그간을 돌아보고, 삶과 현대춤이 만나는 실체가 있음을 <Babel (words)>(Eastman/ Sidi Larbi cherkaoui & Demian Jalet 공동안무작)을 개막작으로 선정함으로써 보여주었다. 1시간 50분-열광적인 커튼 콜이 10분이상 이어져 2시간에 육박하는 이 작품은 Eastman이 2010년 브뤼셀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Sidi와 Demian의 10년간의 협업의 결실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Foi>(2003작, 9.11사건을 주제로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정치적인 재앙속에서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작품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 개시일에 초연됨), <Myth>(2007작, 인간심리에 초점을 맞춰 일곱가지 죄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일곱개의 덕목을 연옥에 갇힌 인간들로 형상화하여 진정한 구원으로 무엇으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질문의 작품) 이은 3부작의 완결편이다. 그러므로 <Babel>에는 특히 Sidi의 3부작을 관통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절망속에서 낙관을 길어 올리기


 벨기에 출신의, 30대의 이 두 안무가는 이전 작에서 실험해 온 음악구성의 방식(Patrizia Bovi를 중심으로 중세유럽의 음악과 동양의 고대음악을 풍부하게 사용)과 무대장치(Zero Degree와 Sutra에서 함께 작업한 Antony Gormley)등 전작에서 협업을 통해 쌓여있는 안정적 측면들을 활용하여 <Babel>을 춤과 극의 적절한 융합과 시각, 청각적 요소들이 짜임새있게 잘 어울어져 있는 안정적인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Foi>와 <Myth>를 더불어 관통하는 주제는 인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사회정치적인 것에서 심리적인 것을 거쳐 <Babel>에 와서는 문화적인 문제들을 상당한 거시적인 시각으로 접근함으로써 종교적인 시각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의 역사를,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작품의 실마리로 설정한다. 인간이 신의 힘을 넘보며 세운 바벨탑과 그로 인한 신의 노여움으로 다른 땅과 다른 언어로 나뉘어 살게 된 인류의 운명! 그 차이를 13개국에서 모인 13명의 무용수들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그들의 언어와 인종적 차이를 뚜렷하게 시, 청각화 시켰으며 안토니의 거대한 알루미늄 프레임을 사용함으로써 아와 타의 구별을 공간적으로 시각화 시켰다.
 거대담론과 거시적인 접근, 그리고 무대를 압도하는 음악의 시간적 깊이와 무대를 끊임없이 분할하거나 통합하고 이전시키고 설정하는 사각 프레임의 장관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절대 무거워 지거나 어두워 지지 않는다. 전반부의 대부분은 상황을 설명하는 대사와 각각의 언어들이 제 잘난척을 하는 언어를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중심으로 이어진다(차이만을 바라볼 때 그것은 경쟁과 시기, 정복욕과 지배욕을 낳는다).
 미래를 포착하고 다루는 방식으로 여성로봇의 설정과 그 로봇으로 인해 빚어지는 인간과 기계의 다름이 공상과학 만화 영화처럼 다루어지는데 두 일본남성이 여성로봇을 익숙하게 다루지 못하여 생기는 코믹한 상황이라든지, 교양 풍부한 프랑스 남자가 프레임을 지나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야수성을 드러내 성적 욕망으로 여성로봇에 접근하다가 큰코다치는 설정은 춤과 대사를 동원하여 아주 쉽고 코믹하게 풀어나가는데 그런 방식에서 소년적인 취향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 치기어림은 작품 곳곳에 감추거나 아닌 척하지 않고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것에서 생기는 경쾌함이 이 작품의 신선도를 높여주고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3부작의 주제의식을 책임 있게 소화해 내고 무대 위에서 해법으로써의 결론을 제시하는 방법은 문화적 차이와 거기서 생겨나는 인간사이의 벽들이 언어의 소통이 아니라 몸의 감각과 신경을 동원하여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표현하는 것에 답이 있음을 상당한 깊이의 신경생리학 리서치와 성실한 설명으로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소년적 취향에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안정감을 주었다.


 



 특히 종결부로 넘어가면서 이전까지의 대사와 에피소드를 멈추고 무대 위를 춤과 프레임의 회전을 통해 에너지 충만한 것으로 만들면서 인류문화의 바탕에 근원적인 에너지인 제의적, 초월적 힘을 창출하는 장면은 내가 여태까지 보아 온 서양의 현대춤 중에서는 단연 뛰어난 것이었다. 무대 후면에 상단부에 설치된 뮤지션들은 타악기, 관악기, 현악기를 갖추면서도 그 중에서도 인간의 목소리를 통해 불려지는 구음과 같은 음악들은 이 작품의 뿌리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으며 일본의 대고로부터 시작되는 강렬한 비트의 시작은 <Babel>의 마지막이자 3부작의 마지막이 되는 것에 아쉬움이 없을 만한 힘을 보여주었다. 프레임이 순전히 무용수들의 작동으로 회전을 시작하고 그 속도를 높여가면서 자연스럽게 무용수들의 그 사이를 달리고 뛰면서 프레임을 돌리는 순번을 바꿔나가 속도가 높아진다. 그렇게 높아진 속도감을 몸으로 그대로 이어 받아 무용수들은 앉은 자세에서 바닥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동작을 두팔을 하늘로 뻗어가며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엑스타시를 향해 집단적 힘을 집약시켜 나간다. 앞의 에피소드에서 차이를 해학적으로 드러냈다면 후반에는 언어를 넘어서는 통합의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차이를 극복하는 상태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대조적으로 형상화시켜 보여주고 있다. 앞부분의 웃음과 뒷부분의 통합에서 생기는 고양감이 이 작품을 단단하게 균형적으로 만들고, 절망을 뚫고 나오는 낙관의 힘이 되어 관객을 매력적으로 흥분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물론 <Babel>은 안무가들의 치기어림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동안 시간은 너무 많이 흘러가 버렸으며, 한시도 쉬지 않고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 처럼 쉴 새없이 그들의 수다를 들어야 하는 것처럼 산만하고 나열적이거나 일반적인 장면들도 많이 있다. 어떤 장면은 너무나 관습적인 장면이어서 젊은 안무가의 고민이 녹아있는 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도 있다. 그러나 이 두 안무가는 상당한 무대장악력으로 음악과 연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대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치밀한 계산과 노련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종횡무진 함께 또 따로 각자의 안무작업 뿐 아니라 오페라, 영화, 뮤직비디오, 써커스(태양의 써커스와 마이클 잭슨의 One) 등 경계를 넘나드는 거대한 식성을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른 장르와 접촉하고 협업한다.


 



 그들의 무대가 다른 무대와 다른 점은 공연장에서 열기를 만들고 관객을 데우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단순히 비트강한 음악을 틀고 단순한 2박에 맞추어 고양시키는 기계적 엑스타시가 아니라 문명에 대한 풍자와 우리의 모습을 만화처럼 거부감없이 보여주는 것을 통해 폐부를 찌르면서 웃음으로 버무리는 과정과 마지막 고양을 향해 무대위의 공연자들이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 무대에서 쏟아 놓는 ‘존재의 던짐’속에서 관객의 피의 온도는 서서히 올라간다. 그것은 아마도 인류의 문화적 축적물속에서 그 지점들을 찾아 파고들고 끌어내오는 그들의 연구력과 안무력의 초점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산만할 정도의 빡빡한 공연 일정과 레파토리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이 초인적 활동력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지 정말 궁금해 진다. 어쨌든 자신의 몸을 근거로 끝없이 춤추며 끝없이 부딪히고 끝없이 만들어 내는 전통적 의미의 몸을 아낄 줄 모르는 ‘쟁이’들이 기존 컨템포러리 댄스를 균열시켜 자신만의 영토를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었다. 

2013. 06.
사진제공_MODAFE201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