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중남미는 무용교류 파트너로 이상적
앞으로는 장기적 ․ 체계적 접근 있어야
이종호_본회 공동대표 / CID-UNESCO 한국본부 회장

 지난 6월 1일부터 18일까지 중남미 3개국 6개 도시에서 진행된 <2012 한국무용 특집(Korean Dance Express)>은 향후 이 지역과의 무용교류 방향과 전략을 한층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해 준 행사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공동주관으로 쿠바(아바나, 삐나르 델 리오), 콜롬비아(깔리, 빨미라), 에콰도르(과야낄, 꾸엔까)에서 전통춤, 현대무용, 비보이와 힙합무용수, 그리고 스태프 등 총 24명 규모의 무용단이 10여회의 공연을 펼친 이번 행사는 가는 곳마다 열광적인 기립박수와 공연 후 쇄도하는 현지 관객들의 사인 및 사진촬영 요청 등으로 무용을 포함한 한국문화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충분히 실감시켰다.
 그리고 이 같은 환대는 자연스레 차후 각종 축제와 행사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으로 이어졌다. 첫 방문국인 쿠바에서는 세계적인 도시춤축제 아바나 비에하(Encuentro Internacional de Danza en Paisajes Urbanos “Habana Vieja: Ciudad en Movimiento")의 이사벨 부스또스 총감독이 지난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한국팀이 올해 불참한 데 대해 아쉬운 감정을 토로하면서 내년에는 반드시 참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이사벨 부스토스 감독은 CID 한국본부에 내년 4월에 열리는 제18회 축제에 3개 한국 무용단을 보내달라는 공식 초청장을 보내왔다.
 콜롬비아에서는 한국팀을 초청했던 깔리 발레축제의 글로리아 까스뜨로 마르띠네스 감독이 내년에 발레 작품을 포함해 다시 방문해 줄 것을 제안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발레에 대한 궁금증을 나타냈다. 중남미 발레계 최고위급 인물에 속하는 까스뜨로 여사는 최근 각종 경연대회를 제패하고 있는 한국 발레의 국제적 위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에콰도르인들은 더욱 뜨거운 열기로 한국의 춤을 받아들였다. 한국팀은 과야낄시에서 열린 제10회 프라그멘토스 데 후니오(Fragmentos de Junio) 무용축제의 개막공연을 단독으로 맡는 등 두 차례 공연을 가졌다. 두 공연을 모두 관람한 한 민속무용축제 책임자는 “내년부터 무조건 한국무용단을 보내달라”고 부탁해왔다. 남미 일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그는 에콰도르는 물론 인접 국가들에 한국무용을 알리는 전도사가 되겠다고 자처하면서 공항에까지 나와 출연자 전원에게 선물을 안겨주고 갔다. 역시 공항에 환송 나온 케이팝 동호회 회원들은 “뉴스를 보니 꾸엔까에서는 한국춤 워크숍을 했던데 왜 과야낄에서는 안했느냐”며 내년에는 공연과 함께 반드시 강습을 병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지막 방문지인 꾸엔까에서는 더욱 성황이었다. 8백석 규모의 극장에 1천2백여명이 몰려왔고, 이중 2백여명이 공연이 끝난 뒤 무대로 올라오는 바람에 극장측이 장내정리에 애를 먹기도 했다. 원주민 문화와 스페인 식민시대의 유적을 함께 잘 보존하고 있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꾸엔까는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도시답게 단발성 행사보다는 한국과의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문화교류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엄청난 호응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선은 최근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의 강력한 영향력을 생각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이 비보이가 섞이긴 했어도 전통춤과 현대무용 등 본질적으로는 비대중적 예술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때마다 사인과 사진촬영 요청이 쇄도한 것은 상당 부분 이른바 한류의 영향으로 보아야 할 것같다. 출연자는 물론 무대 스태프까지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때마다 그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한 나라 대중문화의 위력이 그 나라의 고급문화 혹은 문화 전반에 대한 호감을 유발하는 전형적인 경우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봉사활동도 한국의 이미지를 고양시키고 있었다. 에콰도르의 경우 드라마와 케이팝 등의 영향을 받아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350명 정도였으나 금년 들어 5백명선에 도달했다고 한다.
 둘째는 최근 10여 년 사이 부쩍 높아진 한국무용의 국제적 위상이다. 발레와 현대무용에서 한국인 무용수들의 기량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최근 빠리 오페라 발레 정단원으로 승격한 박세은이나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서희, 마린스끼의 김기민 등 발레는 물론이고, 현대무용에서도 많은 무용수들이 탁월한 기량으로 세계 각지의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무용수들의 기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창작력도 최근에는 대폭 향상됐다. 허물없는 개인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한국 안무가들의 영상자료를 건네주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외국의 지인들도 이제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아울러 한국의 비보이들이 세계 최정상급이라는 것은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이번 순회공연에 참가했던 조성국(라스트포원 대표)과 오세빈, 이성민이 그런 예이다. 이처럼 한국은 현재 순수예술무용, 대중무용 할 것 없이 전 장르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셋째는 프로그램 구성에서도 약간의 효과를 보았다. 이번 순회공연에서는 일반적인 국제축제 관행과 달리 전통춤, 현대무용, 비보이 등 같은 무대에 함께 서기 어려운 이질적인 춤들을 혼합해 프로그램을 짰다. 국제 관례에 비추어 다소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한국문화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이 지역에 한국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일조하리라는 믿음에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꾸엔까 아우스뜨로 국제무용제의 예술감독인 마르띤 산체스 빠레데스도 ‘이질적인 춤들을 한 무대에 응축시키고 또 풀어내는 놀라운 연출력’이라는 말로 평가해주었다. 혹시 같은 무대들에 다시 설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좀더 압축된 프로그램을 보여줄 생각이다.
 그들의 환대에 고마워하면서 자연스레 무용교류 파트너로서의 중남미에 대해 생각할 시간들을 갖게 됐다. 예전부터 이 지역의 무용단들을 서울로 초청하거나 공동제작을 진행하면서 조금씩 느껴온 터이지만, 중남미는 한국의 파트너가 되기에 매력적인 조건을 지니고 있다. 우선 원주민의 전통과 스페인 식민통치에서 생겨난 혼합문화 등 다양한 민속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전통예술에 강한 우리와는 교류할 일이 많아 보인다. 살사와 삼바, 메렝게 등에서 보듯 이들은 춤과 음악에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유럽의 영향을 받아 발레에도 강해서, 미국과 서유럽의 주요 발레단에는 중남미 출신이 즐비하다. 훌리오 보까, 호르헤 돈(조르주 동), 호세 까레뇨 등 전설적인 무용가들을 비롯해 중견, 신인급에 이르기까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신흥 발레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과 공유할 부분이 적지 않을 터이다. 현대무용의 경우, 우리와 마찬가지로 구미에서 배워다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우리와 공동 관심사가 많다. 중남미 주요국들의 경우를 보면 현대무용의 도입 시기, 그리고 구미식 현대무용의 자기화, 현지화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우리와 흡사하다는 점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아울러 현재의 창작능력을 거칠게 비교해본다면 완성도나 세련미에서 우리가 다소 앞서간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한국문화의 세계무대 진출과 국제교류를 통한 개방성 증진을 도모하려는 현재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이나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 비추어 볼 때 이 지역은 여러모로 궁합이 잘 맞는 상대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중남미에서 무용을 포함한 한국 공연예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아직 한국의 공연예술이 충분히 소개된 상태는 아니다. 정부 행사 외에 일부 예술가들의 개별적, 산발적 진출이 있어 왔지만 대륙의 특성과 국가별 취향 등을 고려한 정책적 접근은 사실상 없었다. 현지인들과의 개인적 인연으로 성사된 공연들이 종종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결국 개별적인 관계로 끝날 뿐, 한국 공연예술의 전반적인 진출이나 교류로 격상되지는 못한다. 최근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주도로 중남미에 대한 공연예술 진출이 다소 활성화되고 있는데, 아직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초기 단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보자면 이제 본격적인 시작을 앞둔 시점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향후 본격적 문화교류를 위해서는 중남미대륙 전반과 각 국가의 역사적, 문화적 특성을 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듯, 중남미라 해도 나라별로 경제, 문화수준이 다르고 인종도 다르다.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코스타리카에는 백인이 많지만 멕시코, 과테말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에는 인디오가 많이 산다. 그런가하면 니카라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베네수엘라, 파라과이에는 메스띠소(인디오와 백인의 혼혈)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왔던 흑인들의 후손은 쿠바,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공화국, 콜롬비아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끝으로 한 가지. 나가는 데에만 몰두하지 말고 부르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약소국의 열등감 때문에 저 높은 세계의 장벽을 뛰어넘는 일이 민족의 염원이던 시절에 우리는 더 이상 살고 있지 않다. 좀 먹고살게 됐다고 우리 것만 내세우다 보면 한 순간 졸부로 전락한다. 부디 불러주고 베풀어줄 줄도 아시기를. 

2012.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