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해외 기획_ 한국 프랑스 공동제작 뤽 페통 〈Light Bird〉

 

 

 

 

프랑스의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이 안무한 <라이트 버드(Light Bird)>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작품이다. 5월 5-13일 파리 샤이요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2014년 안무가가 내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한 두 명의 한국인 무용수가 출연했다. 초연 공연의 이모저모를 생생한 파리 현지취재와 출연 무용수 이선아의 작업기, 재독 안무가 김윤정의 관람기를 곁들여 소개한다. (편집자 주)




■ 뤽 페통 〈Light Bird〉(1) 파리현지 취재

여백과 절제, 인간과 학이 함께 만드는 춤

 


장지영_국민일보 문화부 기자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이상향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불멸을 상징하는 학이다.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함을 가진 학은 ‘동래학춤’ 등 다양한 학춤의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간과 학이 실제로 같은 무대에 등장해서 춤을 추는 작품이 프랑스에서 공연되었다. 지난 5월 5~13일 프랑스 파리의 주요극장 가운데 하나인 국립 샤이요 극장에서 선보인,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이 안무한 이 작품에는 무용수 4명, 색소폰 연주자 1명 그리고 학 6마리가 출연한다. 

 

 



 우선 막이 열리면 시공을 초월한 듯한 무대가 펼쳐진다. 사각형 프로시니엄 무대의 3면은 검은 막이, 객석을 향한 쪽에는 미세한 그물망이 처져 있다. 학이 객석으로 뛰어들거나 무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첫 장면은 한국 무용수 이선아의 춤으로 시작된다. 이선아는 그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솔로춤 안무가 겸 무용수로 활약해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컴퍼니 작업에 참가했다. <저 밖으로(Out There)> <파동> <터치> 등 그의 작품들을 보면 손끝부터 발끝까지 활용해 섬세한 움직임을 만들고 전달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 왔다. 이미 10년 가까이 무대에 서 온 만큼 노련한 그는 이 작품에서도 팔다리를 이용해 학을 연상시키는 듯한 섬세한 움직임으로 무대를 수놓았다. 무대 위를 걸을 때 바닥이 마치 사막처럼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로 무대 위 전체에 깔린 염소 가죽 때문인데, 중간중간에 공기가 들어가 있어 무용수가 가죽을 밟으면 공기가 옆으로 분산되면서 마치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이선아에 이어 또 다른 한국 무용수 박유라와 벨기에 무용수 질 노엘 그리고 페통이 차례차례 무대로 들어온다. 이선아와 함께 지난해 페통의 오디션에 합격한 박유라는 아직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박유라의 움직임은 느리고 고요하지만 힘이 있다. 그리고 이들 4명의 무용수가 어울어져 추는 춤은 진중하면서도 이상향을 갈구하는 절실함이 느껴진다.  

 무용수들 모두 무대에 나와 춤을 추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무대 옆의 막이 열리고 학 4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거나 뛰어 들어온다. 객석에서는 아름답고 우아한 학의 자태에 놀라움과 경탄의 감탄사들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학이 등장한 뒤 처음에는 학에 온통 시선이 가는 바람에 무용수들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좀 더 시간이 흐른 뒤 학이 나뭇가지를 잡거나 모이를 눈에 보이지 않게 손에 쥔 무용수들에게 다가와 함께 어울리는 장면도 펼쳐진다.
 학 4마리가 다시 무대 밖으로 나간 뒤 무용수들만의 시간에 이어 후반부에 또 다른 학 2마리가 나온다. 전반부의 학 4마리가 태어난지 1년 된 것이라 호기심과 생기에 가득차 움직이는데 비해 후반부의 학 2마리는 태어난지 2년 되어서인지 움직임이 부산스럽지 않고 고고하다.
 무대 위에는 4명의 무용수와 6마리의 학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번 작품의 전체 음악을 담당했던 자비에르 로셀이 무대 위에서 직접 색소폰을 연주한다. 페통과 오랫동안 작업을 함께 해온 로셀이 직접 작곡한 음악은 전반적으로 평화롭고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간에 국악도 잠깐 들린다. 무대 위에서 색소폰을 직접 연주하는 로셀은 무대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도 한다. 로셀의 음악과 함께 필립 베르토메의 은은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조명은 작품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무용수의 움직임을 돋보이게 만든다. 

 

 



 이번 작품을 기획하고 안무한 페통은 프랑스의 중견 안무가이면서 어린 시절부터 새를 좋아했던 아마추어 조류학자다. 그는 지난 2004년 처음으로 살아있는 새들과 무용수의 춤을 만드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듬해 찌르레기, 까마귀 등 여러 종류의 새들과 무용수들이 함께 출연한 <새들의 비밀>을 초연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 작품으로 프랑스와 여러 극장과 페스티벌에 초청됐는데, 2008년 아비뇽 페스티벌과 샤이요 극장에서도 공연한 바 있다. 그리고 2012년엔 연극 <햄릿>에서 물에 빠져 목숨을 잃는 오필리아 이야기를 백조들과 함께 풀어낸 <스완>으로 당시 프랑스 무용계의 주요 작품상을 받는 대성공을 거뒀다.
 <라이트 버드>는 그의 ‘새와 인간의 무용’ 연작 세 번째 작품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학의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 아미앵 및 리옹 동물원의 협조를 받아 2년 전 학의 부화 단계부터 작업이 시작됐으며 투어 공연을 마친 뒤에는 동물원에 다시 학을 돌려보낼 예정이다. 동물원의 최종 목표는 학을 자연에 살도록 하는 것이다.
 프랑스 국립 서커스&마임학교에서 무용 테크닉을 습득한 페통은 미국의 얼윈 니콜라이, 호세 리몽, 트리샤 브라운 그리고 독일의 수잔 링케와 작업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 특히 뉴욕에서 진보적인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며 즉흥 등 몸의 움직임에 관련된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반복한 것은 이후 안무가로 활동할 때 큰 자산이 됐다.
 1985년 안무가로 데뷔한 그는 1994년 자신의 무용단인 르 게테르 뤽 페통 컴퍼니를 설립한 뒤 프랑스 무용계에서 남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춤과 무술을 결합시키거나 새를 비롯해 동물과 함께 작업하는 등 기존의 무용계 관행과 거리가 있는 그의 작품들은 매번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의 안무는 가볍고 우아한 춤사위를 바탕으로 섬세한 감정들을 전달한다. 

 

 



 이번 <라이트 버드> 역시 전체적인 미장센이나 무용수들의 몸짓이 아름답고 신비롭다. 동양적인 여백과 절제의 미학도 엿보인다. 안무가 페통은 “학과 무용수가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며 몸으로 대화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불멸을 상징하는 학과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무대를 공유하는 것은 현실의 단절, 일종의 유보된 시간을 준다”면서 “매일매일 변화하는 새들과 함께 춤을 추려면 무용수와 뮤지션이 즉흥적인 방식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의 불가분한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라이트 버드>를 비롯해 페통의 ‘새와 인간의 무용’ 연작은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새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무용수들이 새들의 움직임에 따른 즉흥에 능숙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이트 버드>를 보면 서로 다른 배경과 세대의 무용수들이 아예 종(種)이 다른 학과 어울려 각각의 존재를 느끼며 소통하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다만 이 작품은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인간과 새의 교감 장면이 없어서 다소 아쉬움을 준다. 르 게테르 뤽 페통 컴퍼니 관계자에 따르면 학이 워낙 예민한 동물이라서 무용수가 머리를 쓰다듬거나 목을 안는 등의 행위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실제로 무용수 이선아는 “학이 정말 예민해서 음악의 변화나 무용수들의 감정 상태에 다르게 반응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페통의 <새들의 비밀>이나 <스완>에선 새가 무용수에게 다가오고 안기기도 했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 새와 인간이 교감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이지만 이번 작품에선 어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내년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두 나라가 준비 중인 ‘한불 상호 교류의 해’ 행사의 하나로 마련됐다. 공연예술 분야에서 양국의 다양한 작품이 2015-2016시즌 상대 국가에서 공연될 예정인데, 이 작품은 합작으로 만들어져 의미를 더한다.  

 다만 올해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 지역 도시 투어 공연은 프랑스만의 버전이고 내년 2월 공연부터 국악 작곡가 원일의 음악이 추가된 한국과의 정식 합작 버전이 무대에 오르게 된다. 서울에서는 내년 4월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LG아트센터 관계자는 “학의 운반이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비록 올해 공연이 정식 한불 합작 버전은 아니지만 양국간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졌다. 페통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이선아와 박유라를 뽑았으며, 이번 파리 공연에도 원일이 제공한 국악 음원을 중간에 사용했다. 그리고 무용수들의 의상 역시 일부는 한국의 전통적인 마고자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이번 작품은 파리 초연 전부터 프랑스 무용계의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초연 이후 평단의 반응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대와 함께 이선아의 춤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 ‘르 몽드’는 “학을 기르는 등 2년간의 준비작업에서 나온 춤은 우아하다”고 평가했고, 또 다른 주요 일간지 ‘레 제호’는 “무용수와 학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눈부시다”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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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뤽 페통 〈Light Bird〉 (2) 무용수 이선아의 작업일기

'개성'과 '다름', 그 안에서의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

 

 

 무용수로 오디션에 응하다

 

 2014년 2월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의 신작 〈Light Bird〉에 함께 할 무용수 오디션이 있었다. 마침 한국에 있다가 오랜만에 들른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곧 오디션이 있을거라는 정보를 접한 나는 뤽 페통이라는 안무가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작은 새들과 무용수들과의 조화가 시적이고 아름다웠던 작품 〈Confidence des oiseaux〉이었다. 

 

 



 평소 직접 안무하고 춤추는 솔로춤을 해왔던 나는 이전까진 단체와의 작업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새와의 작업’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꼈고 오디션에 참가하게 됐다. 그리고 한예종 창작과에 재학 중이던 박유라와 내가 뽑혔다.  

 오디션을 마친 나는 프랑스에서 솔로 공연 및 프랑스 무용단에 내 작품 〈Wave〉를 전수하기 위해 파리로 출국했다. 그리고 얼마 뒤 페통으로부터 내가 새와 어울리는지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설레는 맘으로 페통을 찾아간 나는 몇 차례 새를 만나 춤을 추었다. 그리고 페통은 내가 프랑스에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새와 시간을 보내며 함께 작업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안무가와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됐는데, 그때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분이 생각난다.

선아 : "제가 뽑힌 건가요? 왜 저를 뽑으셨는지 궁금해요. "
페통 : "왜냐하면 당신은 특별하기(unique) 때문이에요. 남들이 가지지 않은 걸 갖고 있어요."
선아 :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려면 아직 7-8개월이나 남았는데요, 한국에 돌아가서 제가 어떤 점을 보완시켜 오면 좋을까요? 예를 들어 발레를 좀 더 배우면 작업에 도움이 될까요?"
페통 : "변해서 오지 마세요. 발레를 배울 필요도 없고요. 하늘에 떠 있는 별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그냥 아름다운 것들을 보세요. 만약 정말 뭔가 배우고 싶다면, 한국무용을 조금 배워도 좋겠네요."
 나는 이 대화를 마치고 늦은 밤 산책을 하며 페통의 말대로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봤다. 그리고 별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오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안무가인 것에 참 감사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참고로 내가 배운 한국무용은 대학교 1,2학년 때 배운 게 전부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백화점 문화센터의 살풀이 춤 수업을 신청했는데,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할머니들이었다. 하지만 평균 10-20년 배우신 분들이라 전문가 못지않았다. 젊은 처자가 왔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들이 앞다퉈 가르쳐주셨고, 살풀이 외에도 여러 한국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일흔 남짓한 할머니들의 한국무용이야말로 진짜(?) 한국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배운 것이 몸에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들의 열정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내 몸에 한국적인 것을 담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간이 귀하게 느껴졌다.




 학과의 만남 그리고 친해지기 위한 과정

 

 프랑스에서 <라이트 버드>와 관련한 내 작업은 주로 오전엔 춤을 추고, 오후에는 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새들은 리옹에 있는 동물원에서 부화 및 성장 과정을 보내고, 어느 정도 자란 후 아미앙(Amiens)에 있는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연습이 있는 날이면 주로 조련사 두 명이 새를 극장으로 옮겨와 작업을 했고, 때로는 안무가와 함께 동물원으로 가기도 했다.
 페통은 새를 두고 ‘인간(human being)’ 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나도 어색하긴 했지만 학에게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한국 동요도 불러주고, 같이 뛰어다니기도 했다. 어떤 날은 새들 사이에서 안무가와 기공을 하기도 했다. 동물원 안에서 기공이라니... 동물원에 온 사람들이 동물이 아니라 우리를 구경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다양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내가 언제 또 동물원 안에서 동물들과 가깝게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장난감이나 다양한 소품을 이용하며 새의 관심을 끌고 그야말로 새들과 친해지기 위한 많은 시도를 했다.




 그러나 사실 학과 친해지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학은 그리 순한 동물도 아니고, 강아지처럼 주인이나 조련사를 따르고 복종하는 성격도 아니다. 신비로운 이미지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고 고고한 외모에 걸맞게 예민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공격적인 면도 있으며 한마디로 정말 까칠하기까지 하다.  

 오랫동안 새와 함께 해온 페통의 모습을 참고하며 나도 나름대로 새와 친해지려고 했지만 처음엔 쉽지 않았다. 학은 사람처럼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각각의 행동과 반응 역시 다르다. 그 때문에 어느 학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다르게 대해야 했다. 조련사들은 우리가 새들과 함께 할 때면 무대 뒤에서 상황을 보고 노트를 해두었다. 그리고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조련사의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때는 둘씩 짝을 지어 "내가 새라면?" 이라는 상황극까지 해가며 새를 이해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작품에 함께 하는 학은 모두 6마리다. 태어난지 2년이 된 어른 새 <사랑>과 <아따나스> 그리고 태어난지 1년이 채 안돼 아직은 아기새라 부르는 <코코>, <만주>, <아실>, <리아오>다. 새들은 현재 아미앙 동물원에서 지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곳에서 지내게 될 예정이다. 알에서 부화하는 것부터 모든 성장을 함께 한 이 프로젝트는 준비과정에만 2년 이상 걸렸다. 그야말로 인내심과의 싸움이었다. 

 

 




 안무가의 작업 방식 그리고 무용수들


 

 〈Light Bird〉의 안무가는 페통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이기도 한 마를린 이글레시아스 브루커(Marilen Iglesias)도 참여했다. 이번 작품에 페통이 무용수로 출연하게 되면서 이글리지어스가 밖에서 작품을 봐야하는 역할이 중요했다. 무용수로는 나와 박유라, 벨기에에서 온 질 노엘(Gilles Noel) 그리고 페통까지 모두 4명이 출연했다. 

 

 



 다양한 연령대가 한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을 컨셉트로 한 이 작품에서 안무가가 무용수에게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바로 '다름'이었다. 안무가는 특별한 인격을 가진 무용수가 새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남자 무용수를 찾기까지 3번의 오디션이 있었다고 한다. 안무가가 원했던 무용수는 테크닉적으로 아주 좋은 무용수도, 좋은 학교를 졸업한 무용수도 아닌, 다른 느낌을 가진 무용수를 찾고 싶었다고 한다. 남자 무용수 질(Gilles)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조금 설명해 본다면 약간 "타잔"같다고 해야할까?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어떤 스타일에 물들어있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Try to be together, but still be what you are…"  


 안무가는 내게 어떤 상황을 주고 내가 그것을 춤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더 잘 표현될 수 있도록 믿고 신뢰해주었다. 새 6마리를 보고 있다 보면 신기할 만큼이나 각자 또렷한 개성을 지녔는데, 우리가 새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만큼, 안무가는 무용수들이 갖고 있는 특성과 우리의 '다름'을 찾아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겼고, 그 안에서 '함께'라는 조화를 이루어 나갔다.
 페통은 작품에 참여한 무용수가 갖고 있는 개성을 잘 관찰하고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작품의 첫 장면으로 시작되는 내 솔로장면을 찾아내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안무가가 학의 상징 및 전설 등 학에 대한 조사를 해오라고 숙제로 내주었고, 원하는 음악도 몇 개 가지고 오게 했다. 조사해온 내용을 안무가에게 전달하고 느낌을 나누고, 그 대화 중에 느낀 느낌을 내가 갖고 온 음악을 가지고 즉흥으로 춤을 추었다. 바로 이게 작품의 솔로 장면으로 발전되었다.
 무용수 넷이서 같은 움직임으로 춤을 추는 그룹 장면 속에서도 안무가는 각자의 느낌을 담아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많은 반복과 연습을 통해 조화를 이루었다. 나중에 프로그램을 보고 조금 놀랬던 것이, 안무가 소개 밑에 보면 '스튜디오에서 함께 움직임을 연구한 사람'이라 쓰여 있고 거기에 무용수들 이름 하나하나가 기재되어 있으며, 그 밑에 다시 '무용수'라는 소개에 다시 세 명의 무용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이것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정직하다"였다. 나는 사실 이런 프로그램 소개를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안무가가 대부분의 움직임을 무용수로부터 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에 무용수는 그저 댄서로 소개되고 끝나는 경우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Light Bird〉 초연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다. 많은 시도를 통해 다양한 재료들을 쌓아오긴 했지만 작품의 방향성이 정확하지 않아 힘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남은 한 달 동안 장면장면들이 섬세하게 연결고리를 찾고 다듬어지게 됐다. 우리의 작업과정이 결국 작품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는 게 정말 흥미로웠다.  

 파리 국립샤이요극장에서 초연을 마친 우리는 올가을 다시 만날 것이다. 10월부터 프랑스 투어를 시작하고 2016년 4월에는 서울 LG아트센터에서도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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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뤽 페통 〈Light Bird〉 (3) 안무가 김윤정의 관람기 

새와 인간, 고요함과 비움의 미학

 



 공연의 첫 씬은 이선아씨의 가녀린 팔의 섬세한 움직임으로 시작된다. 이선아 특유의 섬세한 팔 동작이 학의 예민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연상케 했다. 무대는 전체에 깔린 흰 바닥 사이사이 들어가 있는 공기가 사뿐히 밟으면 푹 꺼지면서 다른 쪽이 너울거리는 파도 같은 느낌이 참 인상적이었다. 볼록렌즈처럼 살짝살짝 들어가 있는 공기들의 너울거림이 좋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 바닥 재질이 보기와는 다르게 염소 가죽이라는데 실험을 많이 해 그런 효과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미니멀 하지만 효과가 확실한 무대가 전체적인 작품과 조화를 이룬다.
 그 다음에 출연한 박유라의 움직임은 한국적인 호흡으로 무개감과 가벼움이 진중하게 느껴지는 춤사위가 고요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작품 전반 중간쯤 휘리릭 날아 들어온 네 마리의 학들은 무대 위에 등장할거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놀라운 한 순간이었다. 그 화려한 날갯짓과 움직임, 우아한 걸음걸이는 어찌나 아름답고 섬세한지 무대 위의 댄서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조명을 받아 더욱 고고하게 보이는 학들의 향연이 순간 주객이 전도되는 반전이 느껴졌고 어느 순간 그 학들 중 한마리가 아주 고요하고도 그윽하게 관객 쪽을 응시 할 때는 내가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의 눈에 비춰지는 내가 대상이 된 느낌으로 동물의 관찰을 받고 있는 듯한 아주 묘한 순간이었다. 

 

 



 전체적으로 비움과 고요함이 절제되어 표현되었지만 어떤 소통의 의미는 좀 아쉬웠다. 그런데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힘을 쏟는 것은 어쩌면 인간만의 욕망일수 있겠다. 그냥 그 자체로 소통이 되는 자연과 동물들에 비하면 말이다.  

 관객으로서 내가 바란 소통은 새들과 인간의 어우러짐 또는 함께 하는 춤이라기보다는 이 학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그 어떤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학이 워낙 예민한 새라서 컨택이 불가능하고 함께하는 과정이 무지 까다롭고 어려웠다고 한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통이나 주고받는 영향, 또는 거기서 파생되는 어떤 것은 꼭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 거 같다. 

 

 



 그러나 프랑스 안무가가 보고 느끼는 동양적인 학춤의 재해석으로서 그런 우아한 학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전체적인 고요함과 비움의 미학이 좋았다. 안무자까지 네 명의 출연자가 나오는 이작품속에 이선아 박유라씨와 각각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진지하게 작업에 임하며 또 스스로 질문을 갖고 노력하는 자세들이 인상적이었다. 

2015.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