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3 팔무전
계통별 전통춤 모음
김영희_우리춤연구가

 ‘2013 팔무전(八舞傳)’이 지난 5월 30~31일에 한국문화의집(KOUS)에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최하고 진옥섭(코우스 예술감독)의 기획 연출로 올려졌다. 2008년에 시작된 팔무전(八舞傳)의 다섯 번째 춤판이다. 처음에는 민속춤 중심으로 레파토리가 꾸며지다가, 2010년에 <춘앵전>, 2011년에 <무산향>이 들어가면서 궁중무로 전통춤 계통의 폭을 넓혔고, 2011년에는 남무(男舞)를 중심으로, 올해는 여무(女舞)로 판을 만들었다.
 이번 ‘2013 팔무전(八舞傳)’은 전통춤의 각 계통을 모두 갖추었으니, 궁중무, 교방춤, 마당춤, 사찰의식무, 무속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간 교방춤 중심의 민속춤 중심으로 짜여지던 프로그램에서 전통춤의 계통들을 다 모아 명실상부한 팔무가 되었고, 이제야 팔무전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 춤판은 김영숙(정재연구회 예술감독)의 <춘앵전>이었다. 김영숙은 일찍이 궁중무와 일무에 자리를 잡고 정재연구회를 통해 궁중무의 공연과 보급을 꾸준히 해왔다. 김영숙의 <춘앵전> 의상에서 눈에 띤 것은 2010년 팔무전부터 사용한 화관이다. 원통형이고 꼭대기에는 붉은 꽃이 놓여져 있다. <춘앵전>의 화관은 기녀와 무동이 다른데, 이 화관은 조선조 진찬에서 사용했었고, 『리조복식도감』을 참고하여 재현했다고 한다. 정재 전반을 꾀고 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고, 연륜 있는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춘앵전의 백미라는 화전태(花前態)는 춤 전반에 연하게 퍼져있었고, 춤은 유유히 흘러갔다.
 다음으로 황희연(생태문화나눔 대표)이 박병천류 <진도북춤>을 추었다. 진도북춤은 원래 남성들이 추었던 농악춤의 하나로, 근래 서울에서는 주로 여성춤꾼들이 많이 춘다. 이번 ‘팔무전’에 황희연의 <진도북춤>이 초대된 것은 그녀가 박병천류 진도북춤의 멋에 교방춤 계통의 여성춤꾼의 매력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두 가지 멋을 탁월하게 펼치기 때문일 것이다. 북채로 양북을 거침없이 울리며 어르다가 굿거리로 넘어가자, 파르르 손끝이 떨렸다. 이어서 깊고도 섬세한 숨으로 춤가락을 내놓았다.
 한동희스님(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 영산재 전수조교)이 사찰의식무인 <나비춤>과 <바라춤>을 이어서 추었다. 하염없이 들려있는 양 팔은 삼라만상을 바라보고 있고, 양 손에 들린 꽃은 세상의 이치를 설법하는 듯했다. 무심히 좌로 우로 천천히 돌다가 손을 모아 꽃을 치며 파동을 일으킬 때는 일각일각(一覺一覺) 깨우침이 일어나는 듯 했다. “우어~ 우어~ 아으으~” 하는 범패 소리와 함께 한동희 스님의 춤을 보며 텅 비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속춤 계통으로 <신태무>가 추어졌다. 이 춤을 춘 김동연은 동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였던 고 김석출(1922~2005)의 둘째 따님이다. 처음에는 부채를 들고 굿가락을 넘나들며 춤추다가, 울긋불긋한 신태집을 들고 현란하게 춤을 추었다. 신태집은 저승의 망자가 굿판에 왔을 때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오구굿에 쓰이는 무구(巫具)이다. 그래서 신태집을 들고 춤추는 행위는 망자를 위로하는 것이며, 가족들의 머리 위에서 흔들 때는 망자와 가족이 만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동해안별신굿의 그 현란한 굿가락을 넘나들며, 발은 앞꿈치와 뒷꿈치를 번갈아 가며 놀리고, 손은 두텁게 툭툭 떨어지며 미끄러졌다. 영락없는 경상도 춤이다. 전통춤 무대에 오랜만에 동해안별신굿의 춤이 춤판에 올려졌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왕에 악과 무가 있으니, 무가(巫歌) 한 대목 불렀어도 아무도 탓하지 않았을 것을.
 김정녀의 <살풀이춤>은 이매방류로, 그녀는 이매방 선생의 오랜 제자이며, 이 종목의 전수조교이다. 김정녀는 이매방류 <살풀이춤>을 절제된 감정으로 담담하게 추었다. 고단한 세상사를 잊고 춤에만 몰입하여 풀어내는 춤사위가 흰 치마저고리에 그려졌고, 수건을 다루는 동작들은 과장되지 않고 여유가 보인다. 기품 있는 살풀이춤이었다.
 <살풀이춤>에 이어 이애주(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예능보유자)는 한영숙류 <승무>를 추었다. 이애주의 승무를 보면 다른 춤꾼에서는 볼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이 보인다. 염불과 타령에서는 장엄한 모습으로 불심을 정성스럽게 받들어 춤추다가, 굿거리로 넘어가면 장단부터 세속의 느낌이 든다. 드디어 북치는 대목에서 다양한 북가락보다는 인간적 번민을 쏟아붓는 듯하고, 당악에서 그 번민이 최고조에 달한다. 그리고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이러한 흐름이 보이는 것은 <승무>를 그저 춤사위를 펼쳐내는 것이 아니라, 춤꾼에게 <승무>의 의미와 전개가 명확히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애주가 <승무>를 마친 후의 후련함은 남다르다.
 그리고 근래 전통춤 무대에서 꼭 추어지는 <태평무>가 이현자(중요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 전수조교)에 의해 추어졌다. 이현자가 춤추므로써 태평무 전수조교 3인이 모두 팔무전에 서게 된 셈인데, 그녀는 <태평무>를 묵직하게 추어냈다. 발디딤은 도당굿가락 사이에서 영락없이 짚어졌고, 한삼은 넓고 둥글게 뿌려졌다.
 마지막으로 유지화의 <부포춤>이 있었다. 유지화는 전북무형문화재 7-2호 정읍농악의 상쇠이며, 예능보유자이다. 젊은 시절 여러 여성농악단에서 활동하였고, 여성농악단이 없어진 후에는 자신이 농악단을 만들기도 하고, 여기저기 불려다녔다. 판굿에서 상쇠로서 각 치배들을 몰아칠 때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작고 날랜 몸으로 을자진을 만들며 부포를 날렸고, 양 팔을 들썩이며 부포를 쳐올릴 때는 어린아이 같았다.
 이번 공연의 또 한 가지 즐거움은 한국 최고의 계통별 악사들이 반주했다는 점이다. 원장현 음악감독을 필두로 민속악 반주단이 연주했고, <춘앵전>을 위해 김한승 집박 외에 국립국악원 정악단 악사들이 연주했다. 또 <나비춤>을 위해 구해스님이 소리했고, <신태무>를 위해 김용택 김정희 등의 동해안별신굿 화랭이들이 반주했다. 이렇게 팔무를 위해 최고의 악사들이 즐비했던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팔무전’은 언제나 각 춤 종목에서 최고의 춤꾼들이 출연했으니, 때마다 세간에 회자되었다. 또 젊은 춤꾼들의 전통춤판인 ‘팔일(八佾)’이 함께 진행되면서, 전통춤 공연을 활성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문득 팔무전이 팔무의 전(展)이 아니라 팔무의 전(傳)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팔무전’은 2010년을 전후한 한국 전통춤의 인물전이기도 한 셈이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여덟 춤꾼들의 춤의 각축(角逐)일 뿐만이 아니라, 각 춤에 이르기까지 여덟 춤꾼들의 인물전이기도 했던 것이다.

2013.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