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현희 〈스쳐 지나가는…〉
꿈과 기억으로 변혁하다
권옥희_춤비평가

 춤은 세상의 모든 것에서 나온다. 어느 순간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 마음속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잔을 비우듯 몸의 움직임으로 깨끗이 비워내면 춤이 된다. 자신의 감정을, 영혼을 세상 사물에 따라 비우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고 감성에 형식을 부여할 줄 알아야함은 물론이다.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작품 <스쳐 지나가는…>(7월 12일, 대구오페라하우스). 먼저 'Passing by'. 안무가는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에 대하여 천착하고 있다. 7시 45분이라는 공연시작 시간,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서 걸어 다니고 있는 무용수들은 장현희 작품의 특징이다. 의외의 형식과 낯선 이미지 등의 춤의 어휘를 사용함은 상투어를 피하려는 그녀의 열망으로 읽힌다. 자막이 뜨자 무용수들이 걸음을 멈춘다. 이윽고 시작되는 공연은 움직임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던 무용수들이 멈춤으로써 시작된다. 시작과 마침, 이어짐과 끊어짐에 의미가 없다.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마도 '가장 먼저 되어야 할 것을' 내려놓고 '지나간 것들'과 마주하는 자아일지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본질인 자아.


 



 바흐의 <요한 수난곡 중 'O Grosse Lieb'>이 흐르면서 무대에 풀어지는 13명의 군무. 이전에 보던 춤이 아니다. 달라졌다. 무대 가운데 14개의 봉이 가로로 나란히 세워져 있고, 그 봉과 봉 사이에 서 있는 무용수들. 조명으로 연결되는 6명의 또 다른 군무, 춤이 낯설고 낯선 만큼 날카롭고 깨끗하며 단정하다. 허공을 비껴 가르는 움직임이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비껴 그어질 금을 가슴에 품은 것처럼 투명하고 팽팽하다.
 검정의상을 입은 12명의 무용수가 일제히 한 곳을 응시하며 서 있는가하면 몸을 뒤집어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무대를 가로질러 봉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무대를 상, 하수로 길게 쓰지 않고 호리존과 객석 쪽을 번갈아 이동하며 쓰는 동선으로 인해 무대에 부피감이 생겼다. 'say nothing' 과 '돌아가지 않는 발자국' 'smog'의 장이 경계 없이 흐른다.


 



 무용수들이 봉 사이, 무대 한쪽에 한 줄로 서있다. 무용수들을 어떤 방식으로 줄지어 놓았든지 안무자가 의도하는 것을 그대로 느끼기는 어렵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연쇄이기보다는 연쇄로 되지 않는 데 대해 안무자가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는 것. 감정이 배제된 기계적인 동작이 많다. 팔을 내어 뿌리는 동시에 다리를 뻗어들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무표정하게 들여놓는 동작에서 감정적 친화력이나 그것들의 은밀한 부조화의 질서 같은 것을 확인한다.
 이어지는 장 'humanity'. 누군가 움직이다 서면 다른 이들이 움직이고 이어 멈춤과 움직임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의 선은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드러난다. 7개의 조명판이 무대 가운데로 스윽 내려오니 바닥 가까이 내려온 조명아래의 움직임이 마치 춤의 도가니를 연상케 한다. 'humanity'의 역설로 보인다.

 마지막 'inter play'장, 바흐의 'Herr unser Herrscher' 에 녹아든 군더더기 없는 군무진의 춤. 전구가 노출된 27개의 조명. 한 팔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몸을 돌아 다른 쪽 팔 동작으로 정리되는 춤. 자신의 내적 감정을 너무 분명하게 나타내지 않으려는 듯, 논리적 전개를 뒤엎는 움직임들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때, '철커덕' 천장에서 쇠사슬이 무대바닥으로 떨어진다. 이전 세계와의 단절, 다른 세계로의 전환을 위한 장치로 경계 없이 이어지던 춤에 윤곽이 생긴다. 이윽고 처음 무대를 열 때처럼 무용수들은 걷다가 멈춰 서 객석을 오래 바라본다.


 



 우연한 감정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는, 다소 난해하게 풀어놓은 춤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모호하고 의미가 굴절되어 보일 위험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의 주제와 배열방식을 일관성 있게 끌고 간점. 군더더기 없는 무대와 조명, 무엇보다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고 짧게 툭 던지는 춤의 언어로 작가의 의도가 비교적 잘 드러난 무대였다. 또한 작품 전체가 가지고 있던 냉소적 분위기는 그녀의 내면에 조심스러워 말하지 못하는 깊음이 있으리라는 가정을 해본다. 'jangproject'에서 오랜 시간 같이 작업해온 권효원 서해영 김수지의 성장이 눈에 띄었다.

 춤이 가진 아름다운 세계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현실에서 벽에 부닥치고 실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현희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꿈과 기억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자신의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 자신의 춤을 변혁시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아는 듯, 그녀는 춤이 가진 힘으로 자신의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2013. 09.
*춤웹진